신은 업무 처리하는 중입니다
이 세상을 만든 신은 어느 순간부터 생겨나 자신도 모르게 세상을 만들었다. 그는 지금 사람들이 믿는 여러 종교의 신들 중 그 누구도 자신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다. 예수도, 부처도, 성주신도, 초승달도, 알라도, 모두 신이니까. 신은 자신의 이름이고 앞서 열거한 것들은 별명인 셈이다. 그러나 누군가 신에게 당신은 신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는 그것 또한 받아들일 수 있다. 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이건 너무한데.” 신은 중얼거렸다.
신이 자신이 만든 것에 대해 큰 관심이 있다는 전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거대한 오해이다. 신이 평소에 무엇을 보고 듣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눈코입을 가진 인간의 형태가 아닐 수도 있으니까. 그는 공기에 흩어져 있을 수도 있다. 지금 당신이 빨아들이는 그 공기가 바로 신일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신이 우리 안에 있다는 말은 정답이다. 그렇다 면 공기를 통해서는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신은 오감을 초월한 게 아닐까. 느낌을 초월하는 느낌, 그건 어떤 느낌일까? 뱅뱅 돌아 원점으로 돌아가는 질문 위에 서 있는 한 우리는 평생 신을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건 피차일반이야. 나도 너희들을 영원히 이해할 수 없어.” 신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다음 메일로 넘어가는 화살표 버튼을 클릭했다.
신은 고요한 강에 재미 삼아 돌을 던진다. 그는 움푹 패이는 수면을 기점 으로 파동이 동그랗게 퍼져 나가는 시간이 인간의 삶에서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 알까? 그에게 일렁이는 찰나로 보이는 것이 화가의 딱 절반이었다는 것을 알까.
“이건 그에게 전해 줘야겠군.” 신은 메일을 인쇄해 봉투에 깔끔하게 넣었다.
신이여! 대체 언제쯤입니까?
“곧이야, 곧. 네 친구가 여기에 돌아오고 나서부터 종일 떼를 쓰고 있거든.”
성악설, 성선설, 성무선악설. 하등 쓸모없다. 인간의 본능이 악한지 선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건 인간이 인간을 얼마나 혐오해야 할지 판단할 때 쓰이는 기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집중할 재미난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상상이다. 인간의 본능은 상상이다. 모든 건 상상에서 시작된다. 선행도 악행도 모두! 선과 악 이전에 상상이 있다. 우리가 호흡하고 행동하기 직전에 상상이 있다. 우리가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발밑에 상상이 있다. 아무리 메마른 사람일지라도 일말의 상상력을 품고 살아가고 상상력을 잃은 사람은 현실 앞에서 시들어간다. 상상이야말로 우리의 본능이요, 목적이다.
“간만에 새로운걸.” 그는 목록의 맨 아래에 있는 메일의 제목을 클릭했다.
우리의 삶을 열 글자로 간추리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가장 흡사하군.” 신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