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25
알베르게에 체크인을 하고 구글맵에 디아를 바로 검색했다. 아스토르가는 디아가 있을만한 도시의 크기였다. 다행히 디아가 있었지만 영업종료로 떴다. 에? 금요일인데 왜 영업을 안 하지? 어쩔 수 없이 동네의 다른 마트를 검색해 찾아 나섰다. 15분에 걸려 갔지만 여기도 닫혀있는 것이다. 이때부터 이상하다 싶었다. 마트 앞에서 현지인을 붙잡아 물어보았다. 오늘이 야고보 축일이라 큰 홀리데이임으로 모든 마트가 문을 닫았을 것이라 말했다. 이런.
산티아고는 성 야고보의 스페인식 발음이다. 때문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걷는 길은 야고보 사도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길이다. 말하자면 ‘Camino de Santiago’는 ‘야고보의 길’인 것이다. 오늘은 성 야고보 사도 축일이다. 스페인에서는 야고보를 수호성인으로 보고 있어 오늘이 큰 축제일이다.
이대로 장을 못 보는 것일까. 포기할 수 없었다. 구글맵에 들어가 열린 스토어를 하나하나 클릭해 보았다. 작은 슈퍼를 하나 발견했다. 여기도 안 열려있으면 진짜 어쩔 수 없단 마음으로 찾아 나섰다. 열려있었다!
마을을 한 바퀴 다 돌아 찾아 나선 슈퍼는 오래된 보이는 물건들을 팔았다. 때문에 사고 싶은 물건이 딱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레온에서 사 온 짜파게티로 저녁을 해결하고 간식만 사서 나가려는 찰나 와인 코너에 리오하주에서 재배한 포도로 만들었다는 와인 광고가 눈에 띄었다. 리오하주는 산티아고 순례길 초반에 포도농장이 펼쳐져있던 주였다. 지나온 길이 생각나기도 하고 그 지방을 걸으며 와인맛도 궁금했기에 한 병을 사서 알베르게로 돌아갔다. 마침 체크인할 때 보던 알베르게의 주방 뷰도 무척이나 맘이 들었던 참이었다.
이런 뷰면 와인 한 병 거뜬하지. 동네를 다 돌아 겨우 찾은 슈퍼에서 맘에 드는 와인 한 병을 사게 되니 너무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나는 왜 알베르게에 당연히 와인오프너가 있을 거라 생각했을까…
알베르게의 주방을 샅샅이 뒤져도 오프너는 보이지 않았다. 지나온 다른 알베르게에 있었기 때문에 여기도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자원봉사자분께 물어봐도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이걸 어쩐다. 내일 가지고 가기에는 너무 큰 짐이 되고 버리기엔 아깝고 안 마시자니 맛이 너무 궁금했다. 그렇게 코르크마개를 조금씩 쪼개서 빼내기 시작했다.
나이프로 살살 긁어내자 가루처럼 나왔다. 일행과 번갈아가며 조금씩 파내려 갔다. 2/3 정도만 파내고 마개를 와인 안으로 넣을 작전이었다. 1cm를 파는데 15분 정도가 걸렸다. 1cm씩만 번갈아 파도 30분이 지났다. 2cm쯤 파고 밑으로 밀어 넣어봤지만 꿈쩍을 안 했다. 다시 1cm를 더 팠다.
네이버에 와인오프너 없이 따는 법을 검색하니 우리가 하고 있는 방법이 나왔다. 대신 오프너를 와인 안으로 밀어 넣을 때 와인이 폭발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3cm 정도 팠다. 아래로 밀어 넣는 걸 시도해 볼 만했다. 주방을 둘러보니 반으로 갈라진 나무젓가락이 있었다. 나무젓가락을 이용해 조금씩 아래로 밀어 넣었다. 혹시나 터질 것을 대비해 몸을 뒤로 뺐다. 그렇게 살살 밀어 넣자 드디어 들어갔고 병에서 액체가 흘러나왔다.
거의 1시간 동안 와인을 딴 것 같다. 마개가 퐁 하고 안으로 떨어지자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와인 딴 게 이렇게 기쁠 일이라니!
이미 실온에 오래 있던 와인은 많이 미지근해져 있었다. 얼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일행의 말에 냉동고를 열었더니 글쎄 또 얼음이 있네? 이 주방은 와인오프너 말고는 모든 게 다 있었다. 얼음 한 조각을 넣어 와인을 따르고 경치를 바라보며 한 모금 마셨다. 음. 솔직히 잘 모르겠더라. 그냥 와인 맛이었다. 그래도 괜찮다. 추억 한 장이 또 생겼으니.
와인을 마시는 모든 날에 오늘의 아스토르가가 생각날 것이다.
<오늘의 기록>
이동 도시 San Matin del camino 5:19 -> Astorga 11:22)
거리 27.8 km (공식 24.6km)
걸음 41.850
내일도 부엔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