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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니버서리 May 23. 2024

이혼 뒤의 삶을 대하는 자세

행복의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결혼 전 연애할 때를 생각해 보자. 소개팅이든 자연스러운 만남이든 남녀가 만나 썸을 타다 연애를 시작한다. 얼마간 두 사람을 에워싸는 설렘과 흥분의 시간이 지나면 관계는 안정기에 접어든다.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수년이 흘러 오래된 연인에게 권태기가 찾아오고 이내 이별을 맞는다.


헤어짐을 결심하기까지 몇 번의 눈물과 몇 차례의 다툼이 지나간다. 하지만 일단 한쪽이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이 사실을 전하면 두 사람의 관계는 완전히 달라진다. 그렇게 연인 간의 이별은 정확한 '마침표'로 존재한다.


함께 찍은 사진들을 지우고 주고받은 선물들을 정리한다. 커플 미니미(!)도 푼다. 마지막으로 그의 전화번호를 휴대폰에서 삭제한다. 이런 일련의 행위들은 그 사람을 내 인생에서 '제거하는' 일종의 의식(ritual)이다. 그와 관련된 물건들을 내 가방과 내 방에서 찾아내어 비닐봉지에 넣고 집 밖으로 내다 버리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그동안 우리 머리와 마음속에 살고 있던 그라는 존재에게 '이제 그만 방을 빼달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예전에 큰 인기를 끌었던 미드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 시즌6에서 샬롯은 어렵게 가진 아이를 자연유산으로 떠나보낸다. 사람들에게 괜찮다며 웃어 보이지만 그녀는 마음속에서 아이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를 눈치챈 친구들이 주술사(?)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는 그녀 앞에서 풍선을 불고 끝에 끈을 매달아 그녀의 손에 쥐어 준다.


"이 풍선이 하늘로 간 아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준비가 되면 손을 놓아주세요."


그녀는 '뭐, 까짓것' 하며 풍선을 건네받지만, 1초 2초...... 10초가 지나도 풍선을 잡은 손을 놓지 못한다. 그러다 마침내 그녀가 결심한 듯 표정이 달라지며 줄을 놓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풍선을 바라본다. 풍선을 놓아주는 '의식'을 통해 비로소 그녀의 정신과 마음속에서 아이에 대한 집착과 미련을 떠나보낸 것이다. 이렇게 실제로 그 사람과 관련이 있는 물건을 정리하는 행동 자체가 이별을 겪은 사람으로 하여금 너무 오래 우울과 슬픔에 빠지지 않고 관계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게 도와준다.








이혼은 바로 이 지점에서 연인 간의 이별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끝!' 쾅쾅쾅하고 마침표를 찍을 수가 없다. 이혼의 가장 고약한 점이다. 고통을 주는 상대를 완벽하게 차단할 수 없는 상태. 그의 전화번호를 삭제하고 카톡을 차단하고 그가 모르는 곳으로 떠나버리고 싶다. 하지만 이혼 중이라면 그러면 안 된다. 특히 둘 사이에 아이가 있다면 양육비와 면접교섭이라는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기에 싫어도 연락을 끊을 수 없다.


연애하다 이별했을 때는 상대방을 깔끔하게 차단할 수 있다. 하지만 이혼할 때는 전남편을 원천봉쇄할 방법이 없다. 나도 이사한 주소를 알리지 않았지만, 그는 알아내서 찾아왔었다. 법적으로 아이의 부모이기 때문에 아이의 등본을 발급할 수가 있고 그러면 너무 쉽게 이사한 곳의 주소가 노출된다.


폭언과 고성, 욕설과 같이 끔찍한 기억을 지우고 싶지만 오히려 기록하고 증거를 남겨야 한다. 이혼 소송 중 가장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운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본능적으로 아픈 기억 잊어버리는 회피반응이 나타나는데, 그 본능에 역행해야 한다. 변호사와 사무장이 '녹취하세요!' '카톡을 남기세요!' '서류를 떼세요!' 하며 법적으로 권리를 지키기 위해 해야 하는 실무적인 피드백을 보낸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숨어버리고 싶다. 하지만 그러면 앞으로 나와 아이의 생활이 걸려 있는 문제를 포기하는 것이 된다. 이를 악물고 괴로운 진실과 마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 나의 이혼 선배 민하는 이렇게 조언했다. "언니, 감정은 사라지고 결과만 남아. 그냥 일한다 생각하고 해야 덜 괴로워." 그렇다. 내 일이 아닌 듯 이혼전문 로펌의 직원이 된 듯이 자아를 분리하는 기술을 터득하게 된다. 피할 수 없으므로 괴로움에 빠지지 않기 위해 찾아내는 고육지책이다. 실제로 효과가 있다.








나는 최고의 이혼을 했다. 후회가 남지 않는 이혼 말이다. 이혼을 막아보려고 모든 노력을 다 했고, 결심 뒤에는 아이를 지키고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모든 애를 다 썼다.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다. 엥꼬. 그래서 나의 이혼은 최고의 이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후회가 없는 이혼을 해도 고통은 따른다.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고 신고까지 해서 법적으로 남남이 되어도 연애할 때와 같은 확실한 '마침표'는 영원찍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혼 소송을 마쳤어도 우리는 '무관'하지 않다. 양육비를 둘러싸고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가 있다. 양육비가 제때 들어오지 않으면 문자를 보내 그가 혹시 잊지 않았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 독촉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좋을 리 없지만 감정보다는 업무처럼 대한다.


아이를 둘러싸고 양육자와 비양육자의 관계도 있다. 전남편이 아이를 보고 싶으면 연락이 온다. 가급적 일정을 맞추어 배려한다. 반대로 아이가 아빠를 찾는 경우에는 내가 연락을 해준다. 두 번이나 거절당했지만 아이가 말하면 나는 또 시도할 것이다. 면접교섭은 아이의 권리이고 두 사람의 시간이므로 존중하고 싶다.


결국 이혼은 이별과 이렇게나 다르다. 마침표를 찍지 못한 채 쉼표만 여러 번 찍힌 채로 남겨진 문장 같다. 명확한 마감이 되지 않은 미완성의 초고처럼 볼 때마다 씁쓸한 기분을 안겨준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 자체로 수용해야지. 영원히 맺어지지 않는 그 하나의 문장에 발목 잡혀 다음 문장을 쓰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그 문장은 거기 그대로 두고 일단 '엔터'를 쳐서 문단을 바꾸어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더 좋은 문장이, 멋진 문단이, 끝내주는 한 편의 글이 나올 수도 있다. 그 멈춰버린 문장은 이다음에 다시 돌아보아도 늦지 않다. 나중에 돌아와서 그것을 삭제할 수도 있고 새롭게 재창조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맺지 못한 하나의 문장에 너무 오래 잡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얼른 다음으로 넘어가자.


마침표를 찍지는 못했어도 나는 그가 없는 인생을 시작해야 하고 아이를 길러야 한다. 아직 완전히 종결되지 않았다고 거기에 매어 있어선 곤란하다. 그 상태로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불행의 시간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어도, '행복의 시대'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1탄이 끝나야 2탄이 나오는 시리즈 영화가 아니다. 앞 단계는 그대로 남아 있는 채로, 나와 아이의 시간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이혼 뒤의 삶을 대하는 바람직한 자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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