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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줌 May 16. 2024

똑똑한 딸들이 이혼하는 이유

틀린 답안을 수정할 기회






이렇게 말하면 좀 멋쩍긴 하지만 나는 머리가 좋은 편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IQ 129의 똑똑한 아이였다. 당연히 교과 공부도 잘했고 선생님과 부모님으로부터 '똑소리 난다', '쟤는 야무져서 알아서 잘할 거야' 같은 말을 들으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학교든 학원이든 어느 조직에 들어가면 늘 그 안에서 눈에 띄는 아이였다. 굳이 친구를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옆 자리 아이들이 모르는 것을 물어왔고, 나는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해 주며 친해졌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었다. 집에 힘든 일이 있을 때나 내가 몸이 좀 불편할 때에도 학교에서 나는 공부를 잘한다는 사실만으로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주변으로부터 '네 결정이라면 믿을 수 있지' 하는 신뢰를 한 몸에 받다.


그런데 똑똑한 아이니까 뭐든 알아서 잘하겠지 하는 믿음에는 하필 중대한 문제에서 큰 부작용이 나타났다. 


바로 결혼문제였다. 교제기간이 짧았지만, 부모님은 '매사 신중하고 야무진 우리 딸이 선택한 사람이니 믿어도 되겠지' 하셨다. 친구들도 '너는 분명 좋은 사람 만나 잘 살 거야' 하며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어쩌면 부모님도 친구들도 왠지 모를 싸한 느낌을 에이 아닐 거야 하며 누르고 말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사랑에 빠져 행복해하는 내 얼굴을 보고 달리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믿고 축복을 빌어줄 수밖에.


나 자신을 포함한 모두가 간과한 사실이 있었음을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공부를 잘했다고 해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정보와 지혜를 터득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실생활이나 연애는 남들보다 훨씬 늦고 경험이 부족해 잘 몰랐다. 연애 다운 연애도 늦게 시작했고, 2년 이상 긴 시간 한 사람과 관계를 탄탄하게 만들어간 경험도 없었다.


똑똑한 딸자식을 둔 부모님들께 딸내미를 너무 믿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공부 잘하고 착하다면 더더욱. 어쩌면 엉뚱한 사람에게 진심을 쏟고 있는지도 모르니. 조금 더 신중하게 다른 핑계를 대서라도 한 3년 이상 긴 시간을 지켜보는 것이 안전할 것 같다. 딸이 나이가 많고 예비 사위의 인상이 아무리 서글서글해도 말이다. 서둘러서 좋은 일은 세상에 많지 않다는 말은 진리다.


잘못된 사람과 결혼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받아들이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왜냐면 항상 잘해왔으니까. '어? 뭐지? 이 예상치 못한 상황은?' 한마디로 뇌정지. 관계는 점점 악화되고 빨리 내 선택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수정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첫 반응은 '이게 진짜일리 없어. 내가 사랑한 그 남자가 이런 사람일리 없어' 하며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머릿속에서 이미 이상화되어 있는 그 사람의 허상과 현실에서 내게 막 대하는 저 남자가 분리된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너무 힘들어서 그러지 원래 이런 사람 아니었는데' 하며 이해하고 감싸려고 한다.


그런데 틀렸다. 원래 그런 사람이다. 내가 잘못 본 게 맞다. 빨리 내 선택이 틀렸고 내 결정이 실수였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바탕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실수와 실패를 많이 안 해본 알파걸 똑순이들에게는 그 과정이 낯설고 어려운 것이다. 정말 경험부족이다.


거기에 K-장녀 특유의 책임감과 아이에 대한 미안함까지 합세하면 버텨낼 재간이 없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잘못된 답을 수정해야 하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도저히 밖으로 뱉을 수가 없다. 그 후폭풍을 어떻게 감당하느냐 말이다. 사춘기 시절에도 사고 한 번 안 친 내가 이혼하겠다는 말을 부모님께 어떻게 할 수 있겠나. 몇 달을 전전긍긍하며 못 자고 고민했는지 모르겠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고 누구나 크고 작은 실수를 한다. 그 당연한 사실을 나는 스스로에게 허용하지 않았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모범생 코스를 밟던 내가 너무 큰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참 어려웠던 것 같다.


대학입시에서 답안을 밀려 썼으면, 얼른 손을 들어 새 OMR카드를 받아 빛의 속도로 다시 작성하면 된다. 시간이 부족해 결국 제출을 못했어도 1년 뒤에 다시 기회가 있다. 당장에는 통곡을 하겠지만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있고 지나고 보면 재수의 시간은 인생에서 큰 마이너스도 아니다. 우리 학교에도 재수생, 삼수생들이 많았다. 20대 초반에야 그 1, 2년이 크게 보이지,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재수를 함께한 친구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되고 기다림과 재도전의 시간 동안 성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하필 결혼이라는 섹터(?)에서 실수를 했다. 대폭망. '엇 3번인데 2번에 찍어버렸네?' 하며 화이트로 찍 긋고 다시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마킹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 결혼은 복구가 안 된다. 평생 '애 딸린 이혼녀', '싱글맘' 이런 딱지를 달고 살아야 한다.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가 쓰인 17세기 미국도 아니고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간통의 알파벳 'A(adultery)'가 이혼의 '이()' 자로만 바뀌었지 본질은 같다. '낙인'이다.


나라는 사람을 보기 전에 '이혼했대'라는 말로 편견의 대상이 되기 쉽다. 이제는 그러거나 말거나 내 삶을 살자는 주의가 되었지만, 여전히 내 어깨를 짓누르는 공기가 무거운 것은 사실이다. 누구보다 사람을 좋아하고 그들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의 욕구는 그대로이기 때문인 것 같다. 어쩌면 더 잘 지낼 수 있었을 많은 사람들이 내가 이혼했다는 사실을 건너 건너 듣고 지레 짐작하여 거리를 두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 적잖이 쓸쓸해진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것이 현실인 것을. 그리고 진짜 괜찮은 사람들은 이혼을 했던 삼혼, 사혼을 했든 '사람 그 자체'를 보고 판단을 다. 나라는 사람과 직접 얼굴 보며 대화해 보고 오래 보면 처음에는 선입견이 있었더라도 머지않아 해소되리라고 믿는다. 이혼한 사람이 감수해야 할 일종의 멍에 같다.


그래도 한 가지는 말해두고 싶다. 이혼한 사람들이 전생에 무슨 대단히 악독한 죄를 저질러서 현생에서 이런 죗값(?)을 치르는 것 아닌데, 그 결과로 감당해야 하는 사회적 시선이 너무 가혹하다. 


재수생들이 반드시 합격생들보다 노력이 부족했다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누구보다 최선을 다한 학생이라도 하필 수능 날 컨디션이 안 좋아 재수를 할 수도 있고, 좋은 학교를 가기 위해 1년  투자수도 다.


이혼도 반드시 좋은 배우자를 골라 맞춰나가기 위한 노력이 부족해서 겪는 것은 아니다. 경우처럼 스스로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한 끝에 내린 결정이자 행복한 삶을 위한 결단일  있다.


결국 혼은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다.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부정행위도 아니다. 그러니 우리 그만 이혼을 '죄악시'하는 시선은 걷어내자. 그렇게 보지 않아도 충분히 아프니까.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

ㅡ법정스님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

진정한 인연과 스쳐가는 인연은

구분해서 인연을 맺어야 한다

진정한 인연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좋은 인연을 맺도록 노력하고

스쳐가는 인연이라면

무심코 지나쳐 버려야 한다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헤프게 인연을 맺어 놓으면

쓸만한 인연을 만나지 못하는 대신에

어설픈 인연만 만나게 되어

그들에 의해 삶이 침해되는 고통을 받아야 한다


인연을 맺음에 너무 헤퍼서는 안 된다

옷깃을 한번 스친 사람들까지 인연을 맺으려 하는 것은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접촉하고 살아가는 우리지만

인간적인 필요에서 접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주위에서 몇몇 사람에 불과하고

그들만이라도 진실한 인연을 맺어놓으면

좋은 삶을 마련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진실은,

진실된 사람에게만 투자하여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좋은 일로 결실을 맺는다

아무에게나 진실을 투자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상대방에게 내가 쥔 화투패를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다름없는 어리석음이다


우리는 인연을 맺음으로써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피해도 많이 당하는데

대부분의 피해는

진실 없는 사람에게 진실을 쏟아부은 대가로 받는 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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