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1월경이었다. 내가 괴로워하면서도 아이를 이유로 이혼을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있을 때, '그'가 한걸음에 달려와주었다. 대체 그 남자가 누구냐고? 나보다 여섯 살 어리지만 오빠 같은 동생 지성이다. 그날도 남편은 삐졌다는 핑계로 육아를 보이콧했고, 나는 혼자 아이를 재우고 지친 몸으로 아이 방 문을 조심스레 닫고 나왔다. 카톡. 카톡. 이 밤에 웬 카톡이지 하며 휴대폰을 켜보니 '애기 자면 잠깐 나와봐'라는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남편이 눈치채지 않게 조용히 내려가 보니 남동생이 차를 끌고 집 앞까지 와 있었다. 쏘카로 빌렸다면서 빙그레 웃었다. 갑자기 어떻게 왔냐고 휘둥그레진 눈으로 묻는 내게 누나 일단 타란다.
지성이는 별다른 말 없이 근처 탁 트인 곳으로 차를 몰았다. 바다에 데려가주고 싶은데 멀어서 아쉽다며, 호숫가가 있는 고즈넉한 성곽 같은 곳에 차를 세웠다. 이미 감옥이 된 집에서 숨 막혀하면서 아이가 어려 편히 외출도 못하는 누나의 마음을 헤아려준 것이었다. 답답한 처지에 놓인 누나에게 맑은 공기를 쐬어주고 싶었던 동생 마음이 전해져 명치끝이 아릿했다.
앞에 막힌 것이 없는 넓고 탁 트인 곳에 가니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차가운 밤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왔다 나가며 내 안에 쌓인 응어리들을 연기처럼 흩어놓았다. 질식해 가던 내게 절실히 필요했던 산소 방울들이 꽉 막혀있던 숨길을 트며 내 안으로 내달려 들어왔다. 나는 폐의 세포 하나하나가 되살아나는 느낌을 온몸으로 느끼며 두 눈을 감고 연신 숨을 들이마셨다.
지성이는 혼자서도 생각이 많거나 답답할 때면 밤산책을 하곤 했다. 함께 제주도에 갔을 때에도 조용한 시골길을 함께 걸었다. 나는 지성이 덕분에 밤산책의 특별함을 알게 되었다. 모두가 잠들고 빛과 소음도 잠시 쉬는 그 시간을 걷는 일은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의 정원이 생긴 듯 신비로운 일이었다. 깜깜한 어둠은 두려움에서 편안함으로 바뀌고, 낮에 보았던 것과 다른 밤의 풍경은 세상의 반대편을 보는 듯 이채로웠다.
나는 까만 물이 일렁이는 호수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잘 나오지도 않는 목으로 꽥 소리도 한 번 질러보았다. 지성이도 함께 소리를 질렀다. 별 말을 안 해도 나를 위해 먼 길을 한걸음에 달려와준 동생의 마음으로 인해 그 순간 나는 조금 살 만하다고 느꼈다. 내가 어떤 결정을 하든 믿고 지지해 줄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형언할 수 없이 묵직한 위로가 되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성이가 말했다. '누나, 아이도 중요하지만, 누나가 행복한 게 먼저야. 마음 정했는데 돈 때문에 망설이지는 마. 돈 잘 버는 동생 있으니까. 알았지? 혹시 저 새끼가 누나 살짝이라도 건드리면 바로 전화해. 내가 죽여줄 테니까.' 그 말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호숫가에 서 있느라 몸은 꽁꽁 얼었어도 가슴은 화롯불처럼 빨갛게 데워져서 집으로 돌아왔다.
몇 개월 뒤 나는 결정을 내렸고 지성이에게 S.O.S.를 보냈다. 동생이 빌려준 돈으로 변호사를 선임했다. 소송과정에서도 동생은 남편과 아이의 첫 접견일처럼 나와 아이의 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순간마다 보디가드 역할을 해주었다.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아빠의 부재가 드러나는 날마다 그 자리를 더 큰 재미로 채워주기도 했다. 친구들과 가면 훨씬 더 재미있었을 제주도 여행도 우리와 함께 해주었다.
아이 팔을 양 쪽에서 잡고 날아오르기를 해주다 내가 좀 멋쩍어하며 지성이에게 말했다.
"누가 보면 우리 셋이 '가족'인 줄 알겠다. 그렇지?"
미안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해 눈을 살짝 찌푸리며 묻는 내게 지성이는 이렇게 답했다.
"...... 우리 '가족' 맞아. 삼촌이랑 조카가 같이 여행하는 게 뭐 어때서."
정말 그랬다. 동생의 담담한 대답에 '엄마, 아빠, 아이' 이렇게 셋만 가족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여기고 있었던 나의 편견을 반성했다. 지성이의 말처럼 우리는 가족이었다. 하나도 이상할 것 없는.
제주도 여행 중 하루는, 신나게 수영해서 노곤했는지 9시도 안 되어 잠들어버린 아이를 조심조심 카시트에 태우고 '거린사슴전망대'라는 곳에 간 적이 있다. 밤산책을 좋아하는 지성이의 아이디어였다. 함께 전망대 난간에 등을 기대고 목을 뒤로 한껏 젖힌 채로 밤하늘에 수 놓인 별을 보았다. '저건 북두칠성이고, 저게 카시오페이아 맞나' 하며 정말 오랜만에 하늘을 그렇게 꼼꼼히 오래도록 보았다.
칠흑 같은 밤하늘에 별이 참 많이도 박혀 있었다. 이렇게 별이 많은지 몰랐다. 분명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부터 그곳에 있었을 텐데 눈을 크게 뜨고 별을 보려고 하는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별들도 있는 것 같았다. 대충 한 번 쓱 보면 그냥 큰 별 몇 개가 다인데, 고개를 아플 정도로 젖힌 채 작정하고 별을 찾아보니 보이지 않던 별이 하나, 둘, 셋, 넷... 연이어 눈에 들어왔다. 신기한 일이었다. 보려는 마음을 내니 그제야 작은 별들까지 내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사는 것도 비슷해서 내가 깊이 찬찬히 바라보지 않으면 보이는 것이 적다. 측은한 마음이든 애정 어린 마음이든 내 삶도 따스한 시선으로 오래 차분히 앉아 바라볼 때, 그 아름다움과 희망 같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지성이를 통해 밤산책이 주는 마법의 힘을 알았다. 알싸한 밤공기가 정신을 맑게 하고 눈에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작은 별들을 담으며 나는 그렇게 다시 살아갈 작고 반짝이는 힘을 얻었다.
내가 힘들 때마다 나타나서 결정적인 도움을 주고 사라지는 것으로 보아 내 동생 지성이가 바로 내가 찾던 '귀인'이 틀림없다. 내가 가장 위태롭던 시간에 지성이가 나의 숨통을 트이게 해 주었던 것처럼 나도 언젠가 녀석을 구해낼 거다. 누나 역할할 틈도 안 주는 어른스러운 녀석이지만, 그래도 내겐 하나뿐인 아기 동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