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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니버서리 May 10. 2024

이혼하고 목소리를 되찾았다

(feat. 음악의 신)






최근에 신기한 일을 경험했다. 은우와 집 근처 파리 바게트에서 빵을 먹고 있는데 때마침 천장에 걸린 스피커에서 세븐틴(SEVENTEEN)의 '음악의 신'이 흘러나왔다. 나는 아이돌을 잘 모르는 머글* 중의 머글이지만, 친한 친구가 세븐틴 팬이라 이 노래는 진작에 들어보아서 기억하고 있었다. 멜로디가 단순하고 따라 하기 쉬운 노래라 나도 모르게 귀에 들리는 대로 노래를 흥얼거렸다.

 

 *머글(muggle): 해리 포터에서 마법 능력이 없는 보통 인간을 이르는 말로 '팬이 아닌 일반인'을 뜻함



세상에 음악의 신이 있다면 이건 당신께 주는 메시지

음정 하나하나 모아보자 음- 춤춰 노래해 기분이 끝내주네

쿵 치 팍 치 쿵 쿵 치 팍 치 예

쿵 치 팍 치 쿵 쿵 치 팍 치 예

쿵 치 팍 치 쿵 쿵 치 팍 치 예

행복은 바로 지금이야



엄마가 허밍 하는 것을 들은 아이가 노래를 뜨문뜨문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특히 '쿵 치 팍 치' 부분이 나오면 입꼬리가 씩 올라가고 고개를 까딱거리며 좋아했다. 나는 그 모습이 귀여워서 동영상을 찍어 친한 대학 동기들과 선배 언니가 있는 단톡방에 올렸다.







내 노래하는 목소리를 처음 들은 선배 언니가 '근데 언니버서리 노래 잘한다'라고 했다. 그러자 친구들이 '대학 때부터 원래 노래 잘했잖아요.'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은우가 세븐틴 노래를 따라 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공유했던 건데, 내 노래실력을 칭찬하는 예상치 못한 반응이 돌아왔다. 기분이 몹시 좋아졌다. 동영상을 다시 클릭해 이번에는 내 노랫소리에 귀 기울여 들어보았다. 다시 들어봐도 듣기 좋았다.


'세상에! 내가 이렇게 노래를 잘했었나?'


그러고 보니 나는 열 살에 성당 초등부 성가대에 입단해 청년 성가대까지 총 15년을 활동한 합창 경력자였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합창대회도 나가본 노래 제법 하는 아이였다. '그런데 나는 왜 이런 재능을 자랑은 못할 망정, 스스로의 기억에서조차 잊었던 거지?'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또 다른 기억이 소환됐다.


전남편과 함께 노래방에 갔던 기억이었다. 처음에는 내 목소리가 좋다고 노래 잘한다고 띄워주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피드백이 달라졌다. '노래를 어떻게 이렇게 감정 없이 부를 수 있냐. 감정을 실어야지. 애들 동요 부르는 것 같다.' 매일 같이 사는 사람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자꾸만 신경이 쓰이고 주눅이 들었다.


결혼 후 임신-출산-육아로 이어지는 '마터니티(maternity) 3종 경기'를 치르던 인생 최고 바빴던 시기에 코로나가 터졌다. 노래방에는 더더욱 갈 일이 없어졌다. 음악의 신이 있다면 무척 서운해하실 만큼 나는 음악으로부터 철저한 거리 두기를 하고 살았다. 아이가 내는 소리와 TV나 라디오에서 가끔 흘러나오는 광고 cm송이 내가 듣는 음악 비슷한 것의 전부였다. 최신곡을 들을 기회도 없었고 우연히 듣게 되어도 따로 음원을 찾아보고 싶다는 욕망 자체가 생기지 않았다. 정말 음악이 없는 삶이었다.


전남편은 감정의 진폭이 크고 극단적이었다. 그런 그의 눈에는 평소 기분의 변화가 크지 않고 늘 잔잔한 내가 답답하고 감정 없는 사람처럼 건조해 보였던 것 같다. 그는 본인 기분이 좋으면 아주 밝은 목소리로 집 안이든 차 안이든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오래간만에 찾아온 밝은 분위기에 동조하려고 아는 노래가 나오면 나도 조금씩 따라 불렀다. 그런데 늘 목소리가 목구멍 주변에서 맴돌았다. 조금만 높은음이 나와도 음이탈이 생겼다. 그는 비웃었고 나는 답답했다. 목이 쉰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목소리를 밖으로 내지 못하는 마법에 걸린 것처럼 목구멍 주변에서 탁 걸렸다. 인어공주도 아닌데 나는 정말로 목소리를 잃고 물거품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렇게 잃었던 내 목소리가 드디어 돌아다. 이혼 후 2년, 아니 별거부터 치면 그에게서 해방된 지 3년 만에. 원래 내가 갖고 있던 좋은 목소리를 되찾았다.


대학 1학년 '사고와 표현' 시간에 발표하는 것을 들은 동기가 아나운서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발음이 정확하고 발성이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졌다. 이건 성당에서 전례부 활동을 하고 성우 제의를 받기도 했던 엄마의 음성 유전자(?) 덕분이다. 그런데 나는 내가 가진 재능을 스스로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결혼기간 동안 전남편에게 기가 죽어지내면서, 그의 심리적 학대에 지배당한 것은 내 정신만이 아니었다. 멀쩡한 목소리가 마음대로 나오지 않을 정도로 내 육체까지 영향을 받았다. 정말 무서운 일을 겪었다는 사실이 새삼 피부로 느껴다. 그는 '너는 결정장애가 있으니 내가 골라줄게. 내가 정해줄 테니 너는 가만히 있어'라는 말을 수시로 했다. 그의 은근하고 지속적인 가스라이팅에 나는 원래의 똑소리 나던 총명함을 잃고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살았다.


직접 경험하고 보니 사람의 몸이란 것이 참 신기하다. 뇌에서 '나는 못해.'라고 반복적으로 입력하면 잘하던 것도 진짜로 어색해지고 못하게 되는 것 같다. 스스로의 정신을 남이 마음대로 휘두르도록 두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나는 올해 이혼 2주년 기념일에 마음먹은 대로 잠실에서 열린 콘서트에 다녀왔다. 거의 음악의 신과 접신(?)할 정도로 쿵 치 팍 치 신나게 춤추고 노래했다. 처음에는 옆 사람 눈치를 좀 보다가 어느 순간부터 음악에 완전히 몰입했다. 눈물 콧물 다 흘리며 손을 흔들고 비둘기처럼 고개를 앞뒤로 흔들어 박자도 타면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목청껏 노래를 따라 불렀다. 잃어버린 예쁜 내 목소리를 되찾았음을 온 세상에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세상에 '음악의 신'이 있긴 있나 보다.


내 친구 남은이를 통해 

'행복은 바로 지금'이라고

메시지를 보내주신 걸 보니.








[세븐틴 '음악의 신' official MV] 행복한 지금을 만나고 싶은 분은 눌러보세요!

https://youtu.be/zSQ48zyWZrY?si=KJsKhMyvpGOqDua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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