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줌 May 08. 2024

이분들이 다 너희 아빠시니?

아빠를 찾아라






세상에 빠라는 존재가 꼭 한 명이어야 할까?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실내 놀이터에 은우를 데리고 간 날이었다. 초등학생들도 갈 수 있는 일반적인 키즈카페와 달리 그곳은 영유아를 위한 놀이기구가 많았다. 자연히 은우보다 더 어린아이들이 많은 분위기였다. 걸음마가 아직 온전하지 않은 꼬물이들이라 엄마와 아빠가 양쪽에서 넘어지면 언제라도 잡아줄 요량으로 양팔을 벌리고 실시간 대기하며 '우쭈쭈. 우쭈쭈. 우리 아기 잘한다.' 하고 있었다.


그런 가족들 사이에 우리처럼 엄마나 아빠랑만 온 아이들이 몇몇 섞여 있었다. 지금은 별 의식 안 하지만 그때만 해도 이혼한 지 몇 개월 안된 이혼초년생 시절이라 모든 것이 신경 쓰였다. 엄마와 아빠, 아이 한둘로 구성된 이른바 '정상가정'의 기준에서 나와 은우 이렇게 둘 뿐인 우리 가족의 모습은 동화에 나오는'반쪽이'처럼 눈도 귀도 한쪽뿐인 '비정상' 같았다. 괜찮은 척하려고 애썼지만 안 그래도 좁은 어깨가 자꾸 움츠러들었다. 다들 자기 애만 보느라 정신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괜히 나 혼자 다른 아빠들을 자꾸 쳐다보고 따라다니는 은우가 안쓰럽기만 했다.


그런 엄마 마음을 알 턱이 없는 아이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놀이기구들을 하나하나 만져보고 올라타보며 열심히 탐색했다. 아이는 여느 아이들처럼 그저 해맑게 잘 놀았다. 서너 살 무렵의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인 볼풀장 옆을 지나갈 때였다. 둥그렇게 울타리가 둘러쳐진 그 안에 산뜻한 오렌지색으로 칠해진 공들이 한가득 들어차 있었다. 방금 만든 신선한 연어알 초밥처럼 알알이 탱글탱글해 보였다.


볼풀장 안에 은우 또래의 여자아이 한 명이 들어앉아 있었고, 바깥 둘레에 아빠로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그 남자는 울타리 위에 양팔을 걸치고 서서 자기 앞에 있는 공을 하나씩 집더니 손목 스냅을 이용해 가볍게 던졌다. 타깃은 자기 딸내미. 을 못 잡고 헛손질하는 아이의 얼굴과 배로 연주황 빛깔의 연어알들이 쉴 새 없이 떨어졌다. 세게 맞지 않았는데도 아이가 금세 울음을 터뜨렸다. 곧이어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나타나 남편에게 왜 애를 울리냐고 타박을 했다. 아이 아빠는 멋쩍어하면서도 심심한지 공을 계속 던졌다.


그가 던진 공 하나가 볼풀장에서 튕겨져 나와 옆에서 보고 있던 우리 은우 앞으로 또그르르 굴러왔다. 자기 발 앞에 멈춘 주황색 공을 본 아이의 눈빛이 바뀌었다. 오른손을 뻗어 공을 야무지게 집어 들더니 그 남자에게 있는 힘껏 던졌다!


"오!"


남자는 자기 배 쪽으로 날아온 공을 반사적으로 받으며 감탄사를 뱉어냈다. 순간적으로 두 손을 야구 글러브처럼 위아래로 벌리고 포수 같은 자세로 멋지게 받아냈다. 그러고는 은우를 향해 오른팔을 힘 있게 뻗으며 동시에 엄지를 꼿꼿이 세웠다. 자기 딸에게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생생한 리액션에 감동한 듯 남자의 눈빛이 생기로 반짝이고 있었다.


"자, 받아라!"


미처 끼어들 틈도 없이 두 남자의 공 던지기 대결이 시작되었다. 아직도 울고 있는 자기 딸은 완벽하게 잊으신 듯했다. 통성명도 안 한 남의 집 아들과 볼풀장 공 하나로 대. 동. 단. 결! 이름도 성도 모르는 두 남자는 마치 오랜 친구처럼 공을 던지고 잡고 피하며 점점 더 열정적으로 가족이 되어 갔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우리 은우가 그 집 아들이 분명해 보이는 장면이었다. 나는 아이가 좋아하니 감사하는 마음 반, 딸아이 엄마의 반응이 신경 쓰이는 마음 반이었다. 열띤 야구 경기가 펼쳐지는 볼풀장 옆에 어정쩡하게 서서 작은 목소리로 '우리 은우 잘한다!' 하고 아이를 응원할 뿐이었다.

 

다행히 그사이 딸아이 엄마는 자기 딸을 안고 다른 놀이기구가 있는 쪽으로 가버렸다. 그날 우리 아이는 발 앞으로 굴러온 공을 힘차게 잘 던진 덕분에 야구 유망주로 선발(?)되어 처음 보는 삼촌과 즐거운 체육시간을 보냈다. 나도 그 참에 한숨 돌리며 두 남자의 경기를 잠시 관람했다.








일곱 살이 된 지금도 우리 은우의 넉살과 붙임성은 대단해서 동네 공원에 가면 동네 형아와 누나들을 곧잘 따라다닌다. 아직 호칭을 헷갈려해서 형에게 '오빠~' 하고 누나에게 '언니~' 하는 바람에 더 귀여움을 받고 있다. 이제는 나도 아이가 다른 아빠들에게 가서 같이 어울리고 놀아도 민망해하지 않는다. '1일 아빠 체험'을 기꺼이 해주시는 이름 모를 우리 동네 아빠 여러분께 감사한 마음으로 살짝 뒤에서 바라보기만 한다.


아이는 주말마다 아빠를 바꿔가며 즐겁게 논다. 수더분하고 처음 보는 사람과도 잘 노는 '인싸력'을 타고나서 참 고맙다. 일곱 살이 되고 아이가 잘 넘어지지 않으니 이제 나도 마음이 좀 놓인다. 늘 3미터 이내로 거리를 유지하며 보디가드처럼 따라다니느라 내가 먼저 지치고 놀이터만 다녀오면 었었는데, 이런 날이 오다니 감격의 눈물이 흐른다.


어떤 아빠는 애들이 노는 사이에 벤치에 앉아 몰래 모바일 게임을 하다 우리 은우에게 걸리기도 한다.


"아저씨 게임하는 거죠? 나 다 알아요~ 다 봤어요~!"


당돌한 동네 꼬마의 눈썰미에 황급히 휴대폰 화면을 숨기며 손사래를 치는 '오늘의 아빠 당첨자'의 뒤태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나는 발치에서 보며 혼자 빙그레 웃는다. 속으로 고생이 많으십니다 하며 고마운 마음은 아이스크림으로 대신 전한다.


친아빠가 은우를 보러 오지 않은 지 1년이 넘었다. 아이가 찾아서 먼저 연락을 하기도 했는데, 이런저런 핑계로 면접교섭을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 내가 어찌해 줄 수 없는 이런 상황이 안타깝다. 그러면서도 아빠의 빈자리라는 구덩이를 인정해야지 하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이런 상황에서 구김살 없이 밝은 은우에게 참 고맙다. 아빠와 함께 놀러 온 다른 아이들을 보고 풀이 죽거나 슬퍼하기보다, 그 아빠를 '내 아빠'인 듯 다가가서 말을 걸고 같이 논다. 그 아이들이 부르는 것을 따라서 아빠라고 부르고, 귀엽게 웃으며 장난을 친다. 그러면 '오늘의 아빠'들도 예쁜 은우 미소에 넘어가고 만다.


처음에는 잠시 주변을 살피며 아이 부모를 찾는다. 그러다 근처에 있는 엄마(나)를 발견한다. 눈이 마주치면 나는 가볍게 목례를 하며 미소 짓는다. '우리 아이인데, 같이 놀아도 좋습니다.' 하는 양육자 간의 사인(sign)이다. 그러면 기꺼이 은우의 1일 아빠가 되어주는 분들이 열에 아홉이다. 그래서 우리 은우는 친아빠와의 시간은 부족하지만, 동네 '아빠들'과의 시간은 부족하지 않다. 그렇게 아이 나름대로 자신에게 필요한 남자 어른과의 놀이 시간을 채우고 있는 것 아닐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