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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진의 글방 Oct 21. 2024

너에게 나를 보낸다

지우기 위해 다시 떠올려 비운다. 사랑으로 남기기 위해

삼남매의 막내였던 아버지. 6.25전쟁에 부모를 잃고 남의 집 더부살이를 하다 서른이 넘어서야 시집간 누나의 손에 이끌려 장가를 갔다. 강원도 태백 광산촌에서 구남매의 맏이였던 엄마. 입하나 덜자고 갓 스물에 시집을 갔다. 둘은 이렇게 만났다.

 

지금껏 그들의 서글픈 부부 연이 이렇게 시작되었음을 왜 알려고 하지 않았을까. 용서하지 못한 미련을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까. 너에게 나를 보낸다. 너의 조그만 마음속에 묶어 놓은 엉킨 미움의 매듭을 풀어보자꾸나.     

  

달그락 거리는 소주잔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너는 중얼거리고 있었지. 겉으로는 얌전하고 조신해 보이기를 애썼지만, 사춘기 시절의 아이답게 네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욕을 하고 있은 듯하다. 하루도 술을 거를 날이 없는 아버지를 받아들이기에 사춘기는 너무 큰 장벽이었겠지. 유리잔 달그락 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너는 터져버릴 것 같은 분노에 숨이 막혀했지. 밤마다 주문을 외듯,

 ‘돈도 못 벌면서 술에, 담배에 찌든 아버지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그러면 엄마가 저렇게 힘들게 번 돈이 지는 않을 텐데.’ 라고 두려움에 떨며 중얼거렸지. 마음 한편에는 엄마가 돌아올 시간을 초초히 기다리며 긴장에 떨고 있는 네가 보인다.


일 년에 서너 번은 어김없이 큰 싸움이 있었지. 술에 취한 아버지는 일하고 돌아온 엄마에게 시비를 걸어 싸움은 시작됐어. 문풍지 안으로 새벽빛이 뿌옇게 비친 단칸방은 흑백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였어.

찌그러진 양은 냄비와 누런 수저들, 깨진 사기 밥그릇이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있었어. 어느 곳에 발을 디디고 나갈지 난감했지. 그런데도 너는 이불속에서 숨죽여 울기만 하고, 둘의 싸움을 말려 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은 네가 너무 나약해서였을까.

너는 이불 속에서 두려워 할뿐 ‘싸우지 마세요.’라고 한마디의 말도 하지 못했다. 울부짖고 소리쳤더라면 그들의 싸움이 막을 내릴 수 있었을까. 아버지의 마지막 날이 되는 그날까지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네 생의 전쟁은 지난하게도 이어졌지.

  여명이 비치면 전쟁의 흔적은 안개가 걷히듯 사라지고 엄마는 일터로 나갔어. 너도 평소와 다름없이 학교에 갔지.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는 일터가, 너는 학교가 도피처였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는 참 이상한 아이 같다. 그런 싸움이 있었던 날에도 학교를 마치면 집으로 곧장 갔으니 말이야. 두려움과 불안에 떨면서도 다른 곳에 가지 않았어. 왜 그랬을까. 너는 더 열심히 공부에 집중했어. 친구와도 놀지 않았지. 그때 너는 무슨 마음이었을까.


  그날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 한 편이 서늘하다. 그날도 전쟁이 시작됐었지. 그런데 그날은 여느 때와는 다르게 엄마가 커다란 보자기에 짐을 쌌어. 검은 가방하나와 보자기를 들고 엄마는 미명을 디디며 홀연히 집을 나갔지. 너는 그때도 엄마 어디 가냐고 묻지도, 가지 말라고 붙들지도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은 듯하다. 너의 심장은 터질 듯이 쿵쾅댔지만 네 입은 네 것이 아닌 듯 마른 입술을 꽉 다물고 있었어.


 너는 머리가 모자란 아이처럼 멍하니  학교에 갔고,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두려운 마음을 숨긴 채 공부를 한 것 같다. 그런 너였기에 길었던 유년의 시간들을 스스로 외로움 속에 몰아넣고 있었던 것을 몰랐어. 친구 하나 없다는 것이 외로움이라는 걸 몰랐고 사랑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 너는 알 수 없었어. 너만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 버렸어. 그런 가정사를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날까지 학교 선생님도, 친구도 몰랐으니 말이다.


  엄마는 그렇게 오지 않을 듯 집을 나가고, 하루하루 가슴조이는 시간들을 보냈지. 일주일쯤 지났을까. 다행히 엄마는 집으로 돌아 왔고, 그 이후 더욱더 엄마 앞에 착한 딸이 되기 위해 애썼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러지 말지. 그렇게 애쓴 시간만큼 원망과 미움도 비례되어 커져만 갔던 것을. 그것이 네 가슴에 커다란 멍이 되어 남을 거란 걸 너는 몰랐던 거지.

  그 일이 있은 후부터 너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면 밥을 하고 빨래도 하며 엄마가 오기를 기다린 것 같다.  마음속으로 알지 못할 신들에게 ‘오늘은 아무 일 없게 해 주세요’라고 날마다 애원 했지.

 아버지의 알콜 중독은 점점 심해졌어. 흐르는 시간은 너의 사춘기도 무르익게 했지. 원망과 미움도 극에 달했어. 급기야 모든 탓을 아버지에게 돌렸지. 네 기억창고에 아버지를 향한 미움으로 가득 채우고 아버지를 그곳에 가둬버렸어. 한 번의 좋은 기억도 남겨두지 않았지. 그때 너는 아버지에게 베푸는 친근함은 엄마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을 했어. 엄마가 다시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마음은 모든 잘못을 아버지에게로 몰아대기에 충분했지. 그로인해 기억의 틀 속에 미움으로만 남겨진 아버지. 좋은 기억 하나쯤 남겨 두지도 못하고 무수한 시간이 지났구나.

  

결핍의 유년시절을 사춘기의 끝자락에서 너는 삶과 죽음의 상상에 몰입했지. 사춘기 시절에 한 번쯤 그런 생각을 해본 친구도 있을 거야. 사춘기라는 이상한 병은 자신에게 너무 몰입하게 만드는 것 같아. 아버지에게로 향했던 미움의 방향을 너에게로 바꾸며 너의 소중한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었어. 그때, 아버지는 홀연히 세상을 떠났지. 너는 갑자기 목적지를 잃은 항해사처럼 망망대해에 표류한 느낌을 받았어.

  학교에서 돌아와 방에서 자는 듯 돌아가신 아버지를 처음 발견한 건 너였지.

  취하지 않던 날이 없던 아버지가 일주일쯤 맑은 정신으로 집안 곳곳을 청소했지. 청소가 끝나자 다시 삼사일쯤 깡 소주를 마셔댔어. 그때는 아버지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어. 우리 가족은 침묵으로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있었거든. 침묵 속에서 무관심이라는 처방을 내렸어. 각자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 있었고 최소한의 의무만으로도 책임을 다한 듯, 엄마는 흰죽만 끓여 놓고 일을 나갔어. 너도 마찬가지였지. 삼사일 동안 밥 한번 먹으라고 권한 적이 없었으니까.

 아버지의 딱딱해진 주검을 본 순간 두려웠어. 그런데 또 다른 너는 뭔지 모를 안도의 감정이 뒤섞여 혼란 속에서 있었어. 아버지의 주검을 바라보며 전쟁이 있던 밤들처럼 마른 입술을 굳게 다물고 엄마가 올 때까지 아버지의 주검 옆에서 꼼짝하지 않았지.

  죽음을 처음 본 것에 대한 두려움. 주문을 외듯 아버지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현실이 되어버린 것에 대한 당혹감과 죄책감에 휩싸였어. 다른 하나의 감정은 ‘다 끝났다’라고 너에게 말하고 있었어. 네 자신의 죽음을 준비할 만큼 미쳐버릴 것 같은 현실 속에서 아버지란 존재의 홀연한 사라짐은 그렇게 네게 다가 왔지.  


  장례식은 그 집의 마당에서 하게 됐어. 너는 울지 않았지. 아니 눈물이 나지 않았던 거지. 사람들 속에서 당황해하며, 참으로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침으로 눈물 자국이라도 내야하나하고 고민했던 너를 떠올린다. 너는 사람들 앞에 되도록 보이지 않으려고 숨어 다녔어. 슬퍼도 눈물을 흘리지 못한 다는 것을 한 참 후에야 알게 됐단다. 전쟁의 지난했던 시간이 너의 감정을 마음 가장 바닥의 한 방에 가두었던 거야. 우는 법을 잊어버린 것을 너는 몰랐어.

  이 나이가 되어서야 비단 아버지의 잘못만도 아니었다고 네게 해명이라도 해 주고 싶구나. 흐릿한 기억이 재생되고 있어.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던 아버지는 한자를 읽고 있었어. 어딘가에서 얻어온 신문을 읽고 있는 아버지가 보여. 내 옆에 앉아서 가훈을 ‘정직’ 이라 말하며 어느 서예가의 붓글씨인 듯 아름다운 필체로 달력 뒷면에 싸인 펜으로 적어 벽에 붙이고 있는 아버지. 이제는 미움에 가두어 놓은 아버지를 놓아 주어야 할까.

따뜻한 밥 한 그릇 차려 드릴 수 있는 나이가 되었건만 나는 아버지란 단어가 너무 낯설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 ‘아버지...’ 한번만 불러 보렴.

 네가 그렇게 미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삶의 욕심이 너무 많았던 탓일까.

                                   

 이제 인정하자, 그들의 아픔에서 시작된 인생을. 그리고 용서하자.

 네게 족하지 못했던 부모였지만. 그 모범적인 부모상 또한 너에게서 나온 욕심이었음을 인정하자. 그들도 너의 부모 되기 이전에 부모 없이 자란 한 남자와 형제 많은 가정의 맏딸로서 힘겹게 살았던 한 여자였던 것을. 이제는 그들을 가련한 인생 속에 있는 하나의 존재로 보내주자.

 지금까지도 숨 막혀 하며 찾으려 했던 미지의 세계를 이제는 찾아 자유롭게 떠나자. 두려움에 이불을 뒤집어 쓴 너에게 나를 보낸다. 이불을 젖히고 소리쳐봐. ‘이제 그만하세요’ 라고. 네 새 장에 가둬 둔 너를 놓아 주자.

너도 이제는 하나의 존재가 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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