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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오 Oct 18. 2023

관계 속에서 솔직해질 용기

20대, 내면의 목소리를 찾아서 13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부정적인 의견을 용기 내어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그게 참 어려웠다. 일적으로 만난 사람들보다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특히. 내 감정에 의한 느낌을 전달하는 게 너무너무 힘이 들었다.


우리 가족은 대체로 충동적이고 다혈질적인 면모가 있다. 상대적으로 나는 욱하는 부분이 적은 편인데, 지금 보면 상대방이 욱할수록 상처만 받는 나를 보며 '나는 다른 사람에게 그러지 말아야지.' 하며 내 감정을 죽여온 것도 있다. 사춘기 중학생 땐 몇 번 분노를 표현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공감받거나 이해받은 기억은 없다. 언젠가부터 나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표현해 봤자 '어차피 남들에게 이해받지 못할 테니 없는 척' 하며 살아온 것도 있다.


표현하고 싶은 충동이 들 때마다 "사회적으로 이게 정당한 일인가?"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현명하고 지혜로운 방법인가?"와 같은 이성적인 기준으로 행동을 결정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갈등 앞에서 아주 침착하고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은 억제된 부정적 감정과 스트레스로 병들어가기 시작했다.


엄마는 '어렸을 땐 건강했는데 지금은 왜 그러냐'며 혀를 차지만 나는 그것이 청소년 시절부터 20대까지 내 부정적 감정을 인정하고 표현하지 못 한 채 그저 '성실'하게만 몸을 써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나는 상담과 명상을 시작하면서 내면의 거대한 분노와 두려움, 불안과 수치심, 죄책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감정은 발견하고, 느끼고, 바라봐주면 잠잠해지는(사라지는) 경우가 많지만 그 감정이 전하는 메시지를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도 있다. 특히나 오래된 관계, 어떤 문제가 고질적으로 반복되어 온 관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관계에서는 표현이 정말 중요하다.', '내 의사를 전달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알 수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았지만 나는 내 분노를, 날 것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하는 게 정말 두렵고 힘이 들었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내 진심을 담은 의견이 외면당하는 게 죽기보다 힘들었던 것 같다.


오랜 시간 부모님 사이의 냉랭한 관계를 조율하는데 에너지를 써왔다. 둘 사이가 안 좋아 보이면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과 책임감을 느꼈다.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답답한 감정을 감당하는 것도 나였다. 아버지의 태도가 미우면서도, 이 집안에서 고립되어 가는 아버지가 신경 쓰였다. 한 때 가족 상담을 받자고 아버지를 꼬드기기도 했다. 그는 내 마음보다 자기 자신을 방어하는 게 더 중요했기에 내 제안을 받아주지 않았다.


명상을 하다 보면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어느 순간 그 밑에 깔린 욕구나 소망을 알게 된다. 나는 그것이 '내면의 목소리'가 보내는 신호라고 생각한다. '가족들에게 내 마음을 솔직하고 강렬하게 표현하고 싶어.' 언젠가 그것을 알아차리고 내 마음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가만가만 들어주었다.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욕구를 알아차리고 지지해 준 지 얼마 되지 않아 부모님 사이가 다시 냉랭해졌다. 당시 나는 답답함에 '독립을 하고 싶다.'는 말을 슬쩍슬쩍 하고 있을 때였는데, 사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내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임을 알았다. 그때 가슴속에서 바로 지금이 기회라고 강하게 외치는 것을 느꼈다. 내 직관이 용기를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엄마 손을 잡고 아빠 방으로 들어갔다. 둘을 앉혀놓고 할 얘기가 있다고 무작정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떨리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입만 열어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가 엄마, 아빠를 이 방으로 부른 이유는... 내가 그동안 둘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야."


부모님은 잠자코 내 얘길 들어주셨다. 인생 최초였다. 정말 최초로..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불과 몇 달 전 일인데도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엄마의 감정을 감당하느라, 늘 내 생각은 공감해주지 않고 화만 내는 아빠를 감당하느라, 둘 사이의 냉랭함 속에서 내가 얼마나 숨이 막혔는지. 한 편으로 나는 아빠의 사랑과 공감이 고팠지만, 아빠가 저렇게 스스로를 고립시키다가 정말 죽어버리는 건 아닐까. 진심으로 두려웠다고. 제발 내가 우울함과 두려움으로 이 가정에 묶여있지 않게.. 내 능력을 펼치면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수없이 많은 말들이 가슴속에 맺혀있었는데 막상 꺼내고 보니 5분도 넘기지 않았다. 내 이야길 잠자코 듣고 계시던 부모님은 어느 순간 서로의 말을 토해내며 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어린 시절 쩔쩔매던 내가 아니다. 나는 나의 감정을 알고, 내 소망에 용기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감정을 표현하고 나니 마음이 저절로 침착해져서 둘 사이를 중재하며 대화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 이후 서로가 서로에게 죽어도 사과하지 않던 사람들이 나중엔 문자 메시지로 사과를 주고받았단다.


빨래를 정리하고 있던 내게 다음 날 아버지가 다가와 말했다. "어제 일은 미안하고 고마웠다." 사실 아버지가 그때 뭐라고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이런 말이었다. 나에게 미안했고, 자기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아버지의 표현법과 사고방식도 문제가 있지만 무엇보다 그는 늘 자신이 이해받지 못할 거라 단정 지으며 입을 다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처럼.


그 이후로 내 마음은 몰라보게 편안해졌다. 집안의 적대적이고 냉랭한 분위기도 사라졌다. 여전히 갈등은 두렵고 힘들지만, 내 감정과 욕구를 매일 잘 들여다보고 인정해주고 나면, 정말 표현이 필요할 때는 내면에서 신호를 준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내 몸을 무시했는데, 몸은 정말 기묘하고 똑똑한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대화를 중재하는 동안 나는 몇 번씩 욱해서 대화가 아닌 대결을 하려고 하는 부모님을 진정시켰다. 침착하게 상대방의 말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말이 끝나면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알렸다. 상대방의 감정 게임에 휘말리지 않는 면에서 나는 조정에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점에서 뿌듯함도 있었다. 전부 삼자대면을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나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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