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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오 Oct 17. 2023

미워하는 마음을 사랑으로

20대, 내면의 목소리를 찾아서 12

내면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의 후반부에 도달했다.

브런치북으로 엮기 위해 목차를 구성할 때, 내가 깨달았던 순서대로 내용을 구성하고 싶었다.

내면의 목소리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나면, 처음엔 오랫동안 쌓아왔던 부정적인 감정들을 인정해야 한다. 그 과정에선 우리의 몸에 대한 감각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쫓기듯 살던 일상 속에서 잠깐 호흡을 느끼며 '현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와 친하게 지내고 싶고, '나'에 대해 알고 싶다면 사고 속에서 '나의 것'이 아닌 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올라오는 감정들을 인정해주어야 한다. 그러고 나면 조금 용기가 생긴다. 그래서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싶은 것들이 생긴다. 그리고 내 주위 사람들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후반부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나는 아버지를 오랫동안 미워했다. 초등학교 4학년인 내 눈에 아빠는 정말로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이었다. 엄마를 울게 만들고, 속상하게 만들고, 엄마가 친가에 가면 힘들 게 일하는데 신경도 쓰지 않고, 무슨 말만 하면 화내고. 엄마는 우리 집이 가난한 것도 아빠 탓이라고 했다. 물론 대부분 엄마의 입장에서 이야기된 것이고, 내겐 너무 어린 시절이라 당시 들었던 이야기들이 와전된 것도 많다.


하지만 부모님이 우리 앞에서 많이 싸운 건 사실이다. 나는 그게 무서웠고, 그래서 아버지가 한심했다. 아버지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 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하지만 그 바람을 진솔하게 표현하진 못 하고 짜증으로 표현했다. 짜증 내놓고 죄책감에 시달리고, 하지만 꼬박꼬박 생신마다 편지는 썼다. 내 진심을 꼭꼭 담아서. 하지만 한 번도 직접 답변을 듣거나 답장을 받아본 적은 없다.


아버지가 힘들게 돈 벌어오는 것에 언제나 감사하고 죄책감이 있으면서도, 내 아버지의 인격에 실망하고 미우면서도, 그에게 칭찬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것도 성인이 되고 나서는 모두 체념했다고 생각했다. 심리상담을 받을 때도, 엄마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초반부터 꾸준했지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건 극후반부였다.


최근 아버지와 있었던 갈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버지는 대화를 하던 도중 갑자기 화를 냈다. 정말 갑자기 크게 화를 내서 나는 그게 늘 상처였다. 그건 우리 가족들을 늘 눈치를 보게 만드는 행위였다. 상담사 선생님은 눈을 감고 아버지에 대해 가장 오래된 기억을 떠올려보자고 했다.


사실 나는 아버지를 정말 좋아했다. 어렸을 적 아버지는 우리들과 잘 놀아줬다. "나는 커서 아빠랑 결혼할 거야."라는 말을 한 것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퇴근하고 돌아오는 아빠에게 폭 안기는 장면. 그게 내가 기억하는 아빠와의 첫 기억이다. 상담사 선생님이 내게 물었다. "그때 아버지에 대해 어떤 욕구가 있었을까요?"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요."

나는 엉엉 울었다.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울었다. 사랑받고 싶다는 말이 다 뭉개질 정도였다. 왜 그렇게 슬펐을까? 그 대답과 동시에 나는 지금까지 아버지에게 칭찬받고 싶어 했지만 그의 투박한 말투에 실망하고, 그의 미성숙한 대처와 엄마에 대한 태도에 배신감을 느끼는 모든 순간들이 사실 아빠를 사랑하고 있었고 사랑하고 싶었기에 했던 행위들인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아빠를 미워했고, 그에게 진심으로 분노했지만, 동시에 그에게 너무나도 사랑받고 싶었다.


한때 나는 아버지 같은 남자는 절대 만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하고 다녔다. 온갖 부정적인 수식어를 다 달고서. 사실 배우자를, 파트너를 사랑하는 마음과 책임감 있는 태도로 대하는 게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성 간 사랑이 정말 뭔지. 판타지 같은 로맨스 드라마나 소설을 통해서나 접했을 뿐. 체감하지 못하며 살았다. 그래서 문장을 바꿔야 한다. 세상 모든 남자가 아버지 같은 남자일까 봐 두렵다. 는 말이 맞다.


근데 참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아버지가 내게 부족한 사람이어도 나는 사랑하고 있다는 걸 인식하고 났더니, 아버지에 대해 평가하던 냉랭한 마음속 기준들이 허물어졌다. 도저히 그를 사랑할 수 없다. 그러니 그를 미워해야 한다.라는 마음을 지우자 아버지에게 적대적인 태도로 대할 필요가 없어졌다. 아버지에 대한 오래된 미움도 차츰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버지에 대한 기대가 사라졌다. 이제야 아버지와 나 사이의 "적절한"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상대방에 대한 기대가 사라질 때, 사람은 그 관계에서 비로소 독립할 수 있다더니, 나는 아버지와의 오래된 애증 속에서 독립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전히 내 눈에 그는 너무나 부족한 아버지이다. 적절한 거리를 두고 보니, 그는 정말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부족한, 어리숙한 사람이다. 그게 너무도 잘 보이니, 그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말이, 오래전 가끔씩 사랑한다고 표현했던 말들이, 진짜였다는 게 보였다. 그는 정말 미숙하고 부족한 방법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 나는 그 사랑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표현해 달라고 울고불고하고 있었구나. 하는 것을. 그를 보며 나의 어리숙한 감정표현을,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되돌아보았다. 어쩔 수 없는 부녀인지라 그 모습은 꼭 닮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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