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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오 Oct 16. 2023

남는 거 없어도 행복해지는 방법

20대, 내면의 목소리를 찾아서 11


어렸을 때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하면 어른들이 제일 먼저 하는 말은 "커서 가수해라!"였다. 남 앞에서 말하는 걸 좋아하면 기자를 해라. 글을 잘 쓰면 작가를 해라. 요즘은 뭘 좀 잘한다 싶으면 유튜브 해라. 블로그 해라. 하는 말이 칭찬 대신이다. 취미로 운동을 시작하거나 악기를 배우거나 하다못해 원데이 클래스를 갔다가 내가 그 분야에 엄청나게 재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그걸로 돈을 버는 상상도 해본다.


옛 어른들은 분명 좋아하고 잘하는 거 하면서 먹고사는 게 제일 행복할 테니 그런 덕담을 해주신 거겠지만 요즘은 글쎄.. 그 말이 좀 다르게 들린다. 뭐 하나 잘하면 10만 유튜버가 되어야 하고 블로그를 시작하면 광고 하나는 꼭 달아야 할 것 같은.. 반드시 돈이라는 생산성으로 연결 지어야 할 것 같은 갑갑함이 느껴진달까. 잘 살아보려는 열정과 끈기 하나만큼은 세계에서 알아주는 국민성이지만, 가끔은 이런 정신 때문에 우리는 자잘한 시도나 모험을 못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남는 거 없이 행복할 순 없는 걸까? 정말 제대로 된 결과가 없으면 그것은 인생에서 가치가 없는 걸까? 운동을 한 번 시작하면 남들에게 인정할 만큼 뛰어난 실력이 되어야 할 것 같고, 악기를 시작하면 합주 정도는 할 만큼 열심히 해야 할 것 같고, 창작물을 만들면 돈이 될 때까지 남들 하는 거 봐가면서 경쟁력을 갖추어야 할 것 같고, SNS 계정을 만들면 광고 하나는 협찬받아야 될 거 같은. 취미지만 취미가 아닌 것들.


직업은 대가와 책임이 달려있어서 언제나 늘 행복할 수는 없지만 취미는 즐거울 수 있다. 내 삶을 지탱하는 건 커리어나 명예보다는 날 즐겁게 하는 일들이고, 한 살 한 살 먹어가는 것의 보람은 내가 무엇을 할 때 즐거워하는지 알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즐거움은 어디서 시작될까. 나는 그것이 '해보고 싶다.'라는 욕구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해보고 싶다의 기준은 시작에 있다. 그 순간 결과 따윈 상관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해보고 싶다는 것들을 모두 시도하진 않는다. 곧바로 결과에 대한 이성의 판단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들이 있고, 계산을 해보니 돈만 들고 그렇게 재미있지 않을지도 모른다며 내면의 순수한 욕구가 하는 말들을 지워버린다. 몇 번 하다가 집어치울지도 모르고. 그런 끈기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애초에 시도 조차 하지 않기도 한다.


삶이 울적하고 막막할 때 나는 혼자서 별 거 아닌 미진한 움직임일지라도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해보기로 했다. 설사 그것이 내 통장을 끝없이 축내는 일일지라도. 이렇게 이해타산적으로 인생을 계획하며 살다 간 정말 죽을 때까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죽을 것 같아서였다.


시작은 사소했다. 혼자 여행 가기. 나는 작년 여름, 학기를 마치고 경주로 2박 3일 여행을 갔다. 아르바이트비로 버는 돈이 많지도 않았지만 한 번쯤 경주를 가보고 싶었다. 같이 갈 친구들, 가족들이 있었고 같이 갔으면 더 즐겁고 돈도 아꼈을 테지만 그럼에도 혼자 여행을 가보고 싶었다. 처음이었다. 혼자는 외롭고, 심심하지만, 자유롭고, 마음껏 사색할 수 있으며, 울고 싶을 땐 울기도 할 수 있었다. 나는 혼자 여행하는 걸 좋아한다는 것을 혼자 떠남으로써 알았다.


그다음엔 브이로그를 찍어보았다. 채널을 만들어 브이로그를 올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채널에 대대적으로 올리는 건 부끄러워 친한 사람들만 볼 수 있게 블로그에 이웃공개를 해보았다. 우리 집은 보기에 예쁘지도 않고, 어찌 보면 낡고 좁아 부끄럽기도 했고, 내 생활은 식상하고 재미없지만 그래도 가족들과 나의 일상을 찍고 편집하는 과정이 생각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좋아해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걸로 돈을 벌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매일 휴대폰을 들고 촬영하고 용량 관리하는 일은 꽤 귀찮았기에 1년 정도 하다가 말았다.


브런치도 소소한 시작 중 하나였다. 글 쓰는 건 좋아했지만 내가 얼마나 쓸 거리가 있겠어.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글을 쓰고 있다. 포털에 올라가 며칠 동안 만 명 넘는 사람들이 글을 봐주기도 했다. 나는 실력이 없는 거라 생각했지만 그건 내가 계속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세상과 나의 주제가 일치하는 순간이 올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게 중요한 것 아닐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는 게 즐겁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기에 할 수 있었던 생각이다.


최근엔 드럼을 배웠다. 음악 듣는 걸 좋아하고 특히 밴드 음악을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단연 드럼 연주를 골라 듣길 좋아했다. 이것도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것이라 무작정 배우기 시작한 취미였다. 열정은 가득했고, 박치가 아니었던 지라 곧잘 따라 했지만, 학교 다니랴 공부하랴 일하랴 치이느라 세 달 다니다 말았다.


예전 같았으면 주위에서든 나 스스로부터든 세 달 다니다 말 거 왜 시작했냐는 소리가 들렸겠지만. 나는 드럼을 시도해 보고 알았다. 나는 힘을 쓰는 악기가 맞지 않는구나! 듣는 걸 좋아한다고 해서 연주까지 좋아할 수는 없는 거구나. 연주하면 안 그래도 없는 힘이 더 빠져나가는구나! 만약 배우지 않았다면 나는 늘 드럼 연주를 갈망하고 있을 것이다. 저걸 배우면 파워가 생기고 자신감이 생기고 어쩌고 하면서. 오히려 취미 생활은 내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는 명상이나 요가, 등산이나 산책에 집중하는 게 좋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혼자 여행하는 걸 좋아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있었던 일들을 재미있게 꾸미는 걸 좋아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 쓰는 걸 좋아하고, 음악 듣는 걸 좋아하고,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는 명상이나 요가, 자연을 바라보는 걸 좋아한다. 남은 인생 동안 나는 또 어떤 흐지부지한 일들을 벌이고,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깨닫게 될까? 마법의 레시피처럼 때와 장소에 맞게 벌일 수 있는 즐거운 일들로 채워지는 삶을 막연히 상상해 보았다. 언젠가 죽음에 대한 공포 앞에서도 주마등처럼 행복했던 기억들을 회상한다면 아마 웃으며 긴 여행을 떠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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