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오 Oct 12. 2023

정말 실수해도 괜찮아?

20대, 내면의 목소리를 찾아서 10



나는 부모님의 실패를 보고 자랐다.

어쩌면 그들의 실패 연대기를 들으며 자랐다고 해도 될 것이다.


친구 믿고 보증 서줬다가 홀라당 빚을 지게 되어 온 집안이 힘들었던 이야기. 연애를 제대로 못 해서 사람 보는 눈 없이 결혼을 해버려서 맞춰사는 게 힘들다는 이야기. 당신의 부모님이 하고 싶은 걸 못 하게 해서 마음에 없는 일을 하며 살아야 했다는 이야기. 세상이, 집안이 날 도와주지 않아 내가 어깨 제대로 못 펴고 살고 있다는 이야기.


그래서 나는 부모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당연히 누리지 못한 것을 나의 자식만큼은 누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부모님은 나의 선택을 귀 기울여주고 늘 지지해 줬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없는 형편에 많은 지원을 받진 못 했지만 부모님은 사회의 통념을 내게 강요하지 않고 나를 키워주셨다.


그럼에도

왜 나는 실패 이전에 실수조차 죽도록 하기 싫을까?

왜 나처럼 많은 20대들이 실패를 두려워하며, '당연히 안 될 거야.'라고 막연하게 확신하고 말까.

사회 구조와 정책의 영향도 분명 존재하겠지만 우리 세대는 실수와 실패를 뼈아프게 겪어본 적이 없기에 제도가 얼마나 막막하고 사회 구조가 막강한 지 체감하진 못 했다. 가만 보면 실수와 실패는 그 의미 자체를 넘어선 거대한 먹구름이 되고 공포의 대상이 된 것 같다. 만난 적 없는 적에 대한 어마어마한 공포가 내면에 존재한다. 모든 것이 대리학습이다. 부모님이 겪고 있는 실수와 실패를 취약한 어린아이의 눈으로 바라봤을 때 한 번, 부모님이 내게 해주는 인생에 가득한 '실패' 일화들이 한 번.


의젓한 아이들은 실패를 겪었음에도 혹은 실패를 겪었기에 자식들에게 헌신하는 부모를 보며, 부모님은 힘든 와중에도 내게 헌신을 해주셨어. 그러니 나는 부모님의 기대처럼 실패하지 말아야 해.라는 마음을 어렸을 때부터, 자신도 모르게 갖게 된다. 실패하면 이렇게 삶이 불행하고 힘들어지는 거야.라는 마음의 상 하나를 만들고 만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사는 삶.

실패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부모님을 보니, 주위 어른들을 보니, 정말 끔찍하게 힘든 일인 것 같다. 부모님도 내가 실패하지 않도록 열심히 길을 닦고 계신다. 그러니 실패할 결혼도 하지 않는다. 실패할 진로도 선택하지 않는다. 실패할 취미생활도 도전하지 않는다. 점점 사회의 실패가 줄어든다. 성공만이 눈에 보인다. 실패의 자리는 없다. 아무도 실패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 나의 부모님은 실패만을 하며 살았을까?

만약 대전제부터 틀렸다면, 우리 마음의 공포도 잘못된 것 아닐까?

'실패'의 기준이 온전히 사회적이고 상대적인 기준이라면?


나의 아버지는 친구 보증을 잘 못 서줄 정도로 친구를 믿고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친구 덕을 살면서 많이 봤다. 덕분에 좋은 보험도 들었고, 가을이면 사과 커다란 한 박스를 배가 터지도록 보내주는 친구도 있다. 내 재수생활을 응원한다며 30만 원 용돈을 턱 하니 보내준 분도 계셨다. 자식 복은 또 어떠한가. 아빠 스스로 어깨 못 펴고 산다 할지언정, 자식들 다 사지멀쩡하고 건강하고 심지어 똑똑하고 현명하기까지 하다.


나의 어머니는 연애 경험 없이 아버지를 만나 결혼을 한 것에 대해 한이 참 많지만 엄마는 사실 연애보다 언니(나의 이모)와 노는 걸 훨씬 더 좋아한다. 20대 직장 생활할 때는 여기저기 친구들과 놀러도 많이 다니고 멋도 많이 내는 멋쟁이였다. 사실 연애할 시간에 다른 즐거운 추억들을 많이 쌓은 셈이다.


만약 아버지가 내게 '아빠는 사람을 잘 사귀어서 인생에 즐거운 일이 참 많아.'라는 이야길 해줬다면 어땠을까. 어머니가 내게 '엄마는 평생 든든한 친구인 이모가 있고, 친구들과 여기저기 여행을 많이 다녀서 20대 때 즐거운 추억이 참 많아.'라고 이야길 해줬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우리 부모님은 어떤 면에서 큰 성공을 이룬 사람이구나.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나도 어쩌면 매일 조금씩 성공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하는 가슴 설레는 기대감이 피어났을지도 모르고.

누군가에게 배신을 당하거나, 중요한 직장 기회를 놓치거나 하는 실패를, 때론 나의 오판으로 발생한 실수가 인생에서 발목을 걸고넘어질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것이 작은 돌부리에 불과하다는 걸 가슴으로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안다. 나를 불행하게 만든 건, 그 '일'이 아니라 내 선택으로 결과가 안 좋았으니 '나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명령하는 것'이고, 그 일을 곱씹으며 '내가 잃어버린 것에 고통스러워하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모든 걸 잃지 않았다. 내 속에는 무수한 성공의 경험이 있다. 그리고 잠재성이 가득한 미래의 선택지들이 있다.


중요한 건 다시 일어서는 일. 나를 실패자라고 규정하고 이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줄 긋지 않는 일. 일단 해보자고 작은 것부터 시작해 보자고 결심하는 일이었다. 작은 것부터 실수하는 일. 실수를 성공하는 일 말이다. 어떤 부분에서 우리는 모두 실패한다. 그리고 동시에 성공하고 있다.




이전 09화 모든 감정은 타당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