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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 mango Oct 02. 2016

봇벵 마을에 전하는 꿈

독서교육 사례: 그림책 <꿈을 나르는 책 아주머니>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덮인 날, 산 중턱에 사는 ‘칼’의 유리창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꽁꽁 감싼 채 말을 타고 찾아온 아주머니, 그녀가 건네는 것은 고작 책 한 권이다.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산이나 들에 있는 동물들도 숨어 지낼 것 같은 날, 산기슭을 따라 책 한 권을 건네주기 위해 고된 길도 마다하고 달려온 그녀. ‘책 나부랭이’가 도대체 뭐라고 이런 어려움을 자초한다 말인가? 글자라고는 읽을 줄도 모르고 책에 코를 박고 사는 누나를 절대 이해할 수 없었던 칼은, 그 사건을 계기로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누나에게 뭐라고 쓰여 있는지 가르쳐달라고 부탁을 하면서 칼은 누나와 함께 책의 세상에 푹 빠진다.


 ‘꿈을 나르는 책 아주머니’라는 그림책의 이야기이다. 이는 1930년대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쓴 글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학교와 도서관이 없는 고원지대에 책을 보내주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말이나 노새를 타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험난한 길도 아랑곳하지 않고 책을 건네주었던 사서들, 그들이 전한 것은 과연 ‘책’만이었을까? 고원지대에서 바깥세상과 단절돼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게 하고 더불어 꿈과 희망까지 전달해 주지 않았을까?     


 책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어릴 적 시골 촌년이었던 나는 책을 통해 다양한 세상을 만났다. 지식의 세계를 확장했으며 다양한 인물들의 삶에 공감할 수 있는 이해력을 키우고 더 나아가 세상과 소통의 장을 넓혔다. 마음이 울적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의욕 없는 날들이면, 동네 서점에 가 책을 뒤적이곤 하였다. 책을 읽으며 깔깔거리고 때로는 눈물을 글썽이며 새로운 에너지를 얻었다. 책을 통해 미처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한발 내딛으며 새로운 모험을 떠났고 책을 통해 원기를 충전하여 다시 나의 일상으로 합류하였다.      


 책을 통해 받은 위안이 크기에, 늘 학교에서도 매일같이 학생들에게 책을 읽어준다. 그러나 흔하게 굴러다니는 책 한 권이 보이지 않는 학교도 있었다.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서 한참 떨어진 오지, 봇벵 마을에 자립 잡은 한 초등학교. 우리나라 1960년대의 건물을 떠올리게 하는, 전형적인 직사각형의 건물에 교실이 달랑 세 개 있다. 칠판과 네모난 책걸상에 좁다란 창 사이로 햇빛이 들어오지만, 한낮인데도 불구하고 어두침침하다. 전등을 켜고 싶어도 전기시설이 열악해 발전기를 대부분 꺼 놓는다. 학생들은 날마다 한두 시간 걸어 학교에 온다. 점심시간에는 굶거나 집에 가서 끼니를 대충 때운다. 졸업 후 미래는 꿈꿀 수 없다. 그들은 부모처럼 숯 공장에 간다. 그들이 아는 세상은 그게 전부다. 일손이 부족할 때는 학교가 아닌, 일의 현장으로 끌려간다. 같은 하늘 아래 똑같은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선 투정 부리며 억지로 공부하는 반면, 여기 학생들은 생활전선으로 나간다.      


 캄보디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영어, 미술, 음악, 체육 교육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봉사에는 단기간에 그치는 일회성 교육이 많았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조금 더 넓은 세상과 꿈을 지속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학교에 다닐 수 없었던 고원지대에 책을 나르는 사서들처럼, 봇벵초등학교에 거대한 도서관은 만들지 못해도 교실에 조그마한 학급문고를 설치해 주는 것은 왠지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이러한 생각이 미치자 즉시 행동으로 옮기기로 했다.  다문화 자녀들을 위한 캄보디아어로 번역된 한국 그림책을 수소문하여 구했다. 그리고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영어로 된 동화책을 모았다. 또한 의견을 냈더니 후원해주는 여러 동역자들이 생겼다. 후원금을 현지 초등학교 선생님께 전달하여 현지 캄보디아 동화책도 구입하였다. 제법 많은 책이 학급문고에 쌓였다. 이 책들이 학생들에게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는 하나의 통로가 되고, 마음속에 새로운 꿈과 희망의 씨앗으로 자리잡길 바란다. 무엇보다 책을 통해 한해 더해갈수록 생기는 고민과 문제를 해결하고 극복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키우길 희망한다.  


 처음에 캄보디아에 왔을 때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거기에 아랑곳하지 않는 그들의 시원한 미소가 참 좋았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도 불평, 불만을 터트리지 않으며 맨발로 운동장을 뛰어다니면서도 얼굴에는 햇살 한 조각이 있었다. 한국에선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높은 곳을 쳐다보며 경쟁하는데 이골이 났던 찰나, 여기에 와서 그들의 미소를 보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 우리보다 누리는 것은 적지만 행복지수는 훨씬 높은 캄보디아! 일주일이라는 단기간에 와서, 우리가 전해주고 가는 것은 물질적이고 기술적인 도움일지도 몰라도, 없는 것 속에서도 초라한 집조차 스스럼없이 보여주고, 물질적인 궁핍 속에서도 웃음과 미소를 잃지 않고 사는, 그들의 행복을 선물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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