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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왜 그렇게 어렵니
어느 순간부턴 누구와 만나고 헤어지는 것에 감흥이 없다. 없어졌다. 20대 초반에나 그러는 거지, 힘이 남아돌잖아. 나는 이제 그럴 기력이 없어. 그럴 필요도 없고. 며칠 전 헤어졌다며 같이 술 한잔했던 친구와의 대화다. 그에게서 눈물 냄새가 짙게 풍겼다. 그는 전 애인과 갔던 곳들에 자꾸 가게 된다고 하소연했다. 너는 사랑이 왜 그렇게 어렵니, 묻는 말에 답하지 않고 또 울던 모습.
이해가 안 됐다. 헤어지고 나서 전 애인과 같이 갔던 곳을 찾아다니는 것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런 장면이 나와도 맥락을 살펴 어떤 마음인지 유추할 뿐이었다. 친구의 마음도 유추해보려 했다. 겉으로만 하는 위로는 소용이 없을 테니까. 잘 안 됐다. 사실 모르는 게 아니다. 이제 내 일이 아닐 뿐이지. 숱하게, 몇 번의 이별까지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이전엔 미친 듯이 그와의 이별을 곱씹고, 찾으러 다녔다. 안 아픈 곳이 없고 안 힘든 날이 없었다. 최선을 다해 사랑했듯 그의 옆에 최후에 남는 건 나였어야 했는데, 알고 봤더니 최선을 다한 자에게 남는 건 흑역사뿐이었다. 지금은 그렇게 최선을 다해 앓아누워가며 사랑하고 이별하지 않는다. 가장 최근에 했던 이별은 – 몇 년 전이다. - 성숙한 어른답게 대화로 서로 잘 정리했고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전 애인과의 모든 추억은 '책장에 늘 있지만 안 쓰는 공책' 같다고 생각했다. 잘 정리해두고 가끔 먼지만 털어주면 되는. 같잖은 몇 번의 이별로 사랑을 다 통달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래서 더 그랬다. 같이 갔던 곳에 굳이 혼자 다시 가서 아름답던 추억을 눈물로 얼룩지게 할 이유가 있나.
기억은 변형이 잦고 눈물 없이도 잘 지워진다. 언젠가는 아플 일도 아프지 않게 된다. 기다리면 되는 일이다. 그 시간이 지옥이 되면 내게만 손해였다.
(자만이었다. 그러면 안 됐다. 사람 일은 마음처럼 되는 게 하나도 없고, 사람 마음은 세상에서 가장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거였다.)
어느 날, 갑자기 그가 너무 보고 싶었다. 일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배가 고파 두유를 하나 사서 마실까 하던 찰나였다. 그 어떤 매개체도 없이 뜨거운 온천수가 터진 것처럼 마음이 콸콸 쏟아지는 게 느껴졌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휴대폰 번호부터 그가 내 뺨을 만지던 감촉까지 빠짐없이 생각이 났다. 이럴 수가 있나 싶었지만 이럴 수 있었다. 당장 만나고 싶었다. 아니, 만나야 했다. 하지만 그를 불러낼 수는 없었다. 나오지도 않겠지.
망할. 눈물까지 나기 시작했다. 오래전 헤어진 사람 때문에 우는 게 어딘가 창피해져서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었다. 공교롭게도 그와 자주 갔던 공원이 이 근처였다. 갈 수밖에 없었다. 당장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