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쎄하 Dec 30. 2021

빛과 수렁 사이

3. 그날의 기억 

한없이 울어서 지쳐버린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귀는 먹먹하고 코를 너무 많이 풀어서 더 이상 풀면 안 될 만큼 빨갛게 부어올랐다. 그 많은 눈물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흘러내리고 또 흘러내렸다. 


처음엔 그저 펑펑 울었다. 사람들이 글로 표현할 때 '엉엉 운다.'라고 할 때 그 엉엉 우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몇 시간을 울었는데도 나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흐느낄 힘이 없었다. 그런데도 슬픔은 가득 차서 어떤 것도 할 수 없었고, 내가 울면서도 '내 눈물은 언제쯤 멈출까?, 너무 많이 울면 진이 다 빠져서 안되는데 나까지 아프면 우리 하영이는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슬픔은 가시지 않는다.


어른들이 너무 기가 막힌 슬픔에 차면 '아이고아이고'라고 중얼거리시는 이유를 처음 알았다. 너무 많이 울고 답답하면 마음에 찬 그 슬픔이 '아이고'가 되어서 나온다. 끝도 없이 나오는 마른 눈물과 답답한 마음을 짓누르는 '아이고'와 쉼 없이 가슴을 치는 주먹에 그나마 내가 숨을 쉴 수 있다. 눈에 찬 눈물은 하염없이 계속 흐르고 절망에서 계속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는 그 순간. 


'내 동생은 살아있지만 죽었구나. 죽은 내 동생은 돌아오지 않겠지? 나의 자식 같고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던 나의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는 보석 같은 동생 하영이가 다시 돌아올 날이 있을까? 나와 함께 이 원룸에서 지내며 투닥투닥 싸우고 같이 먹고 마시고 많은 일들을 함께 하던 하영이는 어디에서 찾을까? 다시 나의 전화를 받아줄 날이 있을까? 내가 많이 사랑하고 아꼈다는 것을 그 아이는 기억할까? 아니 그 무엇도 상관없다. 돌아오기만 한다면 말이다. 그렇지만 나를 완전히 잘라내고 통보하듯 떠나버린 내 동생을 나는 찾을 수 있을까? '


머리가 아프다. 너무 울어서 아픈 것인지 내 마음에 올라오는 생각들이 잔인해서 아픈 것인지. 상상할 수 없었고 일어날 리 없다고 생각한 그 일들이 나에게 펼쳐지고 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난 다른 사람들을 도와보았지만 나에게 펼쳐질 것이라고 단언컨대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에게 일어났고 내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아갔다. 


나의 눈물은 삼일이나 계속되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하영이와의 여러 가지 일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러면서 전모가 하나씩 드러나게 되었다. 하영이가 나에게 했던 그 수많은 거짓말들과 그것을 뒷받침해주던 은정이의 이야기들이 마구마구 떠올랐다. 단 한 번도 의심할 수 없었다. 내 동생이 그렇게 나를 속이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나는 왜 이렇게 멍청 했을까? 아무것도 모르고 마냥 믿었다. 아니 믿는 건 당연하다. 내가 아니면 내 동생을 누가 믿는단 말인가?'


 이 바보 같은 생각들도 이제 끝내야만 한다. 언제까지 울고만 있을 수도 없고 이렇게 울고 있는다고 하영이가 돌아 올리도 없다. 이 사실들을 정리해야 한다. 그래야만 기회가 온다. 그 기회를 위해서 나는 더 이상 울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들만큼이나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하영이는 돌아올 것이다. 내가 그렇게 믿으면 돌아온다. 나만 이렇게 믿고 흔들리지 않으면 우리 하영이도 반드시 다시 와서 함께 이야기하고 먹고 마시며 단란하던 우리 집 모습으로 돌아올 날이 있을 것이다. 


'정신 차려. 울지 마. 이제 일어날 때야. 더는 안돼. 넌 하영이 언니잖아. 네가 그렇게 주저앉아있으면 영영 하영이는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삶을 살게 될 거야. 하영이는 그렇게 지내면 안 되는 아이야.'


그래 내가 잊고 있었다. 우리 하영이의 화려했던 전적을. 하영이는 그전에도 이랬다. 마치 어디론가 도피하듯이 그렇게...









작가의 이전글 빛과 수렁 사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