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4년 조선 개국 3년차 한양으로 천도하다.
조선시대 서울이 선택된 이유
조선 시대 한양은 약 500년 동안 정치, 행정, 문화의 중심 역할을 했다. 한양 인구는 지방 주요 도시들과 확연히 차이를 보이며, 중앙집권 체제를 뒷받침하는 핵심 거점이었다. 한양이 수도로 선택된 배경에는 지리적 이점뿐 아니라 정치적 계산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신생 왕조가 고려 권문세족과 결별하고 정통성을 세우려 했던 의도, 외부 침입에 대비한 전략적 입지, 풍수지리적 관점까지 포함됐다.
조선의 서울 집중은 권력 통제와 인재 집중을 강화했지만, 당시 교통과 통신 기술의 한계로 지방은 완전한 통제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자율성을 유지했다. 지방 관아와 향촌 사회는 중앙과 독립적인 권력 관계를 형성하며 지방 분권적 요소도 존재했다. 그러나 한양을 중심으로 한 과거제와 관료제는 인재 유입을 몰아넣어 서울 집중 구조를 더 공고히 했다. 성균관 같은 교육 기관과 문화 생산이 서울에 집중되면서 사회적 위계 역시 서울 중심으로 강화됐다.
일제강점기의 경성*
*일제가 강제로 한양의 수도 지위를 박탈하고 한양 일부(1936년 이후에는 여기에 근교 경기도 지역도 포함)를 하나로 묶어 '경성부'라고 이름지은 것
일제강점기에는 근대적 교통과 통신 기술, 산업 정책이 서울 집중을 크게 가속했다. 경부선, 경의선 철도 등 서울을 중심으로 한 인프라 구축과 산업 시설 집중은 지방 경제 쇠퇴와 자원 집중을 불러왔다. 서울은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 중심지로서 자리매김했지만 부산, 대구, 전주 같은 지방 도시들도 자생적으로 발전하려 노력했다. 다만 식민 수탈과 억압 아래 그 한계는 명확했다. 의병 활동과 독립운동은 지방 저항과 자생 노력의 일부였지만, 구조적 변화를 만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일본이 일제강점기 서울을 집중 발전시킨 이유는 복합적이며, 전략적·경제적·군사적 목적이 뒤얽혀 있다. 우선 정치적 지배를 확고히 하기 위해 조선의 행정 중심지를 한곳에 집중시키는 게 효율적이었다. 분산된 지방 권력을 통제하고, 조선 전역을 관리·감시하는 관료기구 운영을 서울을 통해 일원화하려는 의도가 컸다.
경제적으로는 서울이 한반도 교통의 중심이자 수송망의 요충지였기에, 산업·금융 시설을 집중 배치함으로써 자본과 물자를 효과적으로 수탈할 수 있었다. 경부선 철도는 서울과 부산을 잇는 일본의 전략적 물류축이었고, 이 경로를 통해 자원과 인력이 중앙집중 방식으로 동원되었다.
군사적 측면에서도 서울 집중은 한반도 내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는 의미가 있었다. 일본은 한반도를 대륙 진출의 교두보로 삼고 있었기에, 수도권에 군사 시설과 통신 인프라를 집중시켜 신속한 대응과 통제를 도모했다.
문화적으로도 일본은 식민지 통치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 서울을 근대화된 도시로 포장하려 했고, 이 과정에서 서울 집중 발전 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이는 조선인의 정체성을 분열시키고, 식민 체제에 대한 순응을 유도하는 전략적 장치로 작동했다.
서울 집중의 역사적 배경
한국 서울 집중화는 지정학적 요인과 중앙집권 전통, 여기에 일제 식민 근대화 정책이 맞물려 상대적으로 극단적 집중 형태를 띤다. 조선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고, 근대화·산업화 과정에서 더 심해졌다.
이런 역사적, 구조적 배경을 이해하는 건 서울 집중화 문제를 제대로 보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600년 넘게 자원, 권력, 경제의 중심지로 작용해 왔던 서울의 과거를 생각해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