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에 남지 못한 강남 세대

존재론적 접근

by 우주사슴

서울 집중화의 중심, 특히 강남은 승자의 공간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안에 태어난 세대에게는 또 다른 출발점이 있다. 도시의 인프라와 자본, 교육과 문화가 한데 모인 이곳에서 성장했지만, 이제 그 접근권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강남 출신 20대와 30대가 경험하는 정체성의 혼란과 유예된 성인기는 서울 집중화의 심리적 후과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다양한 자원을 누렸지만, 이제는 그 자원이 자신의 힘으로 획득된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환경은 여전히 풍부하지만, 자신이 그 환경의 주체로 설계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내면의 불안을 증폭한다. 강남 출신이라는 배경은 선택이 아니라 출발점으로 주어진 것이며, 그 출발선 자체가 삶의 조건을 결정한다는 인식이 이들을 짓누른다.


금고 안에서 자란 세대


강남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문화적·교육적 자본을 내면화한 상태에서 출발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 자산은 전달받은 것이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부모 세대의 경제력이 유지되는 한, 자녀 세대는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그 기반이 약해지면, 동일한 수준의 삶은 재현 불가능하다.


강남 세대는 고급 교육과 세련된 문화, 다양한 경험을 내면화했지만, 그 모든 것은 부모의 소유와 사회적 지위에 기대어 있다. 자신이 무엇을 가졌는지는 인식하지만, 그것을 스스로 획득할 능력은 의심스럽다. 이로 인해 강남 세대의 정체성은 부모의 소유 구조에 종속된 불안정한 상태로 남는다. 그들은 상속될 가능성으로만 존재하는 계급에 속하며,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설계한다는 자각이 결여되어 있을 수 있다.


유예된 독립


부모와의 동거는 현실적 선택이지만, 심리적으로는 모순적이다. 보호받지만 자유롭지 않고, 편안하지만 움직일 수 없다. 독립이란 단순히 집을 나오는 행위가 아니라, 정체성을 분리하고 자신만의 삶을 구성하는 일이다.


강남의 미혼 세대는 ‘어른 아이’로 머물며, 성취와 성숙의 경계가 흐려진다. 경제적 안정은 존재하지만, 존재론적 자립은 결여되어 있다. 독립하면 생활 수준이 급격히 떨어지고, 강남에서 익숙하게 형성된 삶의 기준을 유지할 수 없다. 따라서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선택이 아닌 현실적 제약 속에서 머무르지만, 그 현실은 심리적 억압으로 작동한다.


부모의 집에 머무는 일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문제는 이 선택이 비자율적 선택이라는 점이다. 독립은 의지가 아닌 조건의 문제로 제한되며, 이는 강남 세대 내면에 끊임없는 갈등을 만든다. 자유와 보호, 안락과 제약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하지만, 그 균형 자체가 이미 부모와 사회적 구조에 의해 설정되어 있다.


재입주 불가능한 고향


결혼, 독립, 자산 형성의 시점에서 강남 세대는 현실을 계산한다. 결과는 명확하다. 강남에 다시 들어갈 수 없다. 이 감정은 단순한 이사의 문제가 아니라, 계급적 퇴거로 인식된다. 한때 자신이 당연히 속해 있다고 믿었던 공간이 더 이상 ‘나의 도시’가 아니게 된다.


강남은 출발점이 아니라 도달할 수 없는 신화가 된다. 그들은 단순히 주거지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했다고 믿었던 계급을 떠난다. 그 과정에서 정체성이 흔들리며,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 속하는가’라는 질문이 존재론적 혼란으로 이어진다. 강남을 떠난다는 것은 공간의 상실이 아니라, 자신을 정의하는 기준의 상실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주거 문제가 아니라, 자아 위치의 전환점이 된다.


부모의 유산과 자아의 윤리


부모의 부가 미래를 결정한다는 사실은 안정감을 주기보다 불편함을 낳는다. 노력의 결과보다 출발선의 운이 지배하는 구조에서, 성취의 의미는 흔들린다. 좋은 대학과 직장, 취향과 경험 모두 자신의 능력 때문인지 부모의 투자 때문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부모의 자산으로 만들어진 자율은 진짜 자율이 아니라 연장된 의존이다.


이 불편함은 죄책감과 감사 사이에서 진동한다. 자신보다 더 노력한 사람들이 더 낮은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자신의 위치를 정당화하기 어렵다. 강남 세대의 내면은 구조적 과잉 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자신이 누리는 혜택이 개인의 성취인지, 단순히 출발선의 운인지 구분할 수 없다는 사실은 존재론적 고민으로 확장된다.


서울의 중심, 유예된 성인의 초상


강남 세대의 불안은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구조적 과잉의 결과다. 서울 집중화는 이제 공간적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 구조로 사람을 규정한다. 중심에 있었던 이들이 가장 먼저 그 압력을 느낀다.


그들은 현실적으로 풍요롭지만, 존재론적으로 가난하다. 도시 집중화가 지속되는 한, 강남에 남지 못한 세대는 서울의 가장 현대적인 초상으로 남을 것이다. 성인이 되었지만 성인의 삶을 온전히 살지 못하고, 독립을 원하지만 독립할 수 없으며, 자신의 성취를 의심하면서도 그것에 의존하는 유예된 성인. 강남 세대가 감당해야 하는 정체성은, 결국 선택이 아니라 구조가 만든 상태다.


강남에서 태어났지만 강남에 살 수 없는 이들에게, 성인의 삶은 스스로 설계할 수 없는 유예된 상태로 남는게 아닐까.





keyword
이전 13화서울대와 지방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