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와 지방대

지방거점대학의 변동에 대해

by 우주사슴

한국의 고등교육 체계는 수도권 집중이 심화될수록 지방거점국립대학의 존재 이유를 위협받고 있다. 그러나 이 현상은 단순한 ‘지방의 쇠퇴’가 아니라, 국가 차원의 인재 배분과 산업 구조가 변형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복합적 결과다. 따라서 문제를 이해하려면 ‘지방대의 위기’라는 현상적 진술을 넘어, 서울 집중이 어떤 제도적, 경제적, 문화적 메커니즘을 통해 재생산되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역사적 전이의 세 구간


1980~1990년대는 지방거점대의 제도적 황금기였다. 국립대 체제가 국가균형발전 전략의 일환으로 기능하면서, 전남대·경북대·부산대 등은 지역 인재의 상향 이동 통로였다. 특히 산업단지와 연계된 공학·농학 계열은 지역 산업과 긴밀히 결합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산업 기반이 약화되며 지방의 고급 인력 수요가 급감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수도권 규제가 완화되자, 기업과 연구소의 수도권 집중이 가속화되었다.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 정책(정원 감축, 특성화, 평가제)은 지방대학의 자율적 적응보다는 생존 경쟁을 유도했다.


2020년대에 이르러 지방거점대는 지역의 상징적 중심이지만, 실질적 기능은 축소되었다. 지역 고교생의 수도권 이탈, 연구비의 수도권 집중, 기업과의 산학 협력 기회 격차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지역 대학 생태계’ 자체가 붕괴 단계에 들어섰다. 다만 이 시기를 일률적으로 ‘기능 상실기’로 규정하는 것은 과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충남대는 대덕연구단지와의 협업을 통해 연구 중심 모델로 전환 중이며, 전남대는 의학·치의학 중심의 지역 특화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지역 간 불균형의 구조


‘지방거점대’라는 단일 범주는 실제 현실을 포착하기 어렵다. 부산대는 산업 쇠퇴와 항만 경쟁력 약화의 영향을 받았고, 경북대는 대구 제조업 기반의 축소와 함께 지역 일자리의 질적 저하를 겪었다. 전남대는 정치적 상징성과 시민사회의 기대가 높지만, 지역 경제의 규모가 한계로 작용했다. 반면 충남대는 대전의 과학기술 정책과 연동되며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연구기반을 유지했다.


이처럼 각 대학은 지역 산업 구조, 도시 규모, 정책 방향에 따라 서로 다른 경로를 밟았다. 따라서 ‘수도권 집중’이라는 단일 원인으로 모든 쇠락을 설명하는 것은 구조적 단순화에 가깝다.


내부 요인의 결핍


지방거점대의 위기는 외부 환경만의 산물이 아니다. 교수 충원 방식의 경직성, 학과 구조의 보수성, 산학협력의 비효율성 등 대학 내부의 대응력 부족도 결정적이었다. 일부 대학은 여전히 행정 중심의 관료적 운영을 지속하며, 연구와 교육 혁신보다 평가 지표 관리에 에너지를 투입한다. 결과적으로 지방대는 스스로의 개혁 실패로 수도권 선호를 강화시키는 순환 고리를 만든 셈이다.


공공성의 재정의


국립대의 ‘공공성’은 단순히 낮은 등록금이나 지역 인재 배출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역의 지식 인프라로서 산업·문화·정치의 기반을 형성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역할을 포함한다. 그러나 현 체제에서는 이 공공성이 시장 논리에 종속되어 있다. 국립대는 지역의 생존 기관으로 전락했고, 지식 생산보다 지역 유지의 도구로 기능한다.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해선 지역 대학이 지식의 지역화를 수행할 수 있는 제도적 공간이 필요하다.


수도권 집중의 이면


서울 집중은 단순한 불균형의 결과가 아니라, 효율성에 기반한 합리적 선택이기도 했다. 대규모 인재 풀, 연구 네트워크, 문화적 다양성, 국제적 접근성 등은 서울의 경쟁력을 강화했다. 문제는 집중 자체가 아니라, 그 이익이 재분배되지 않는 구조다. 수도권의 혁신이 지방에 확산되지 않고, 지방의 자원이 수도권으로만 이동하는 일방적 순환이 지속되면서 국가 전체의 지식 생태계가 단선화되었다.


대안적 방향: 분권의 실질화


‘통합 분권’은 구호가 아니라 제도 설계의 문제다. 지역 혁신 플랫폼, 지방대 중심의 산업-연구 클러스터, 국립대 간 공동 학위제와 자원 공유 시스템 같은 구체적 장치가 필요하다. 지방거점대는 단일 대학 단위로 경쟁할 것이 아니라, 지역 간 네트워크를 통해 ‘분권형 지식 연합체’로 진화해야 한다.


축소되는 공간, 확장되어야 할 시야


서울이 커질수록 대한민국은 작아진다. 그러나 이는 서울의 잘못이 아니라, 국가가 ‘균형 없는 효율성’을 택한 결과다. 지방거점대의 쇠락은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구조의 비대칭성에 대한 경고다. 고등교육의 분권 없이는 정치·경제의 분권도 불가능하다. 지방대학의 재구성은 결국 한국 사회가 ‘어디서, 어떻게 지식을 생산할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으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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