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9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안정과 열정사이(3) :
일본행이라는 단 하나의 구원

절망 속에서 일석삼조의 기회를 포착하다

by Teddy Mar 21. 2025

예상치 못한 복병 : 코로나

입사 후 4년 만에 한때 꿈에 그리던 본부에 입성했다. 하지만 한 김 식고 난 후 넘어와서 그런지는 몰라도 엄청난 의욕 이런 것보다는 반대로 기회가 많은 수도권에서 한적한 울산으로 내려온 탓에 내 전문성을 쌓는데 제약이 생기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더 앞섰다.


다행히 업무 특성상 수도권에서 대부분의 고객들을 만나야 했으며 직속 관리자분의 배려로 나는 울산 소속임에도 대부분의 시간을 수도권에서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났으니 바로 전 세계를 셧다운 시킨 코로나라는 존재였다.


ZOOM이라는 솔루션 조차 생소하던 그 시절, 전 세계는 앞다투어 국내외 왕래를 막아섰고 해외로 취업자를 내보내야 하는 우리 사업부서는 그야말로 비상이었다. 실적 급감은 물론이고 입사를 앞뒀던 친구들의 내정 취소, 기업 경영난으로 인한 정리해고 등의 이슈들을 해결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사실 2020년 당시만 하더라도 백신만 개발되면 코로나는 금방 종식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백신으로 잠시 소강상태가 되는가 싶더니 오미크론 변종이 발생하면서 2020년도 하반기에 잠시 열렸던 일본의 국경은 하릴없는 폐쇄 상태로 접어들었다.


보이지 않는 돌파구

아마 회사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통제 불가능한 외부요인으로 인해 정체되어 있다고 생각하니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내부 규정상 한 사업부서에 5년 이상 있을 수 없다는 규정도 나를 압박해오고 있었다. 코로나가 이대로 종식되지 않는다면 기껏 쌓아둔 일본취업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가만히 앉아서 반납하고 강제로 다른 부서로 가야 하는 상황에 처하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이에 더해 조직 내부 사정으로 인해 기관 전체의 승진인사가 6개월 밀리게 되었는데 마침 승진을 앞두고 있던 나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뭐랄까 코로나 시국으로 접어들며 제대로 풀리는 게 하나도 없다는 느낌을 받으며 부정의 늪에 계속 잠식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맞이한 2021년 상반기, 역대급으로 침울하게 시작한 새해였지만 역시 죽으라는 법은 없었는지 한줄기 희망의 동아줄이 내려왔다. 당시에 일본 사업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도쿄에 주재원이 나가 있었는데 담당자의 원래 임기는 2022년 8월까지였다. 하지만 코로나가 너무 심해 사업추진이 어렵고 주재원 본인도 이 시국에 타지 생활이 어렵다는 이유로 임기를 2021년 8월까지로 축소하고 2022년 1월 1일 자로 나갈 새로운 주재원을 선정하겠다는 내부 지침이 확정되었다.

 

기존 2022년 하반기에 맞춰서 나가기에는 연한을 비롯하여 여러 상황상 무리가 있었는데, 2021년 중에 일본 파견직원으로 선발될 수 있다면 모든 걸림돌이 해결되는 상황이었다. 앞뒤 잴 것 없이 전력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 하지만 왜..

일본만 갈 수 있다면 정말 많은 메리트를 얻을 수 있었다. 우선 내 커리어를 기존 연한과 관계없이 최대 3년까지 연장 가능했고, 그간 쌓아온 전문성을 기반으로 정말 본격적인 일본 현지사업을 추진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더불어 주재원으로써 가지는 수당적인 메리트도 있었으니 정말 천재일우의 기회 그 자체였다.


업무내용과 실력, 내부영업에서는 크게 거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스스로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마지막 조건은 무기한 연기되었던 승진, 하지만 운명의 신이 도왔는지 정말 주변의 많은 도움을 받아 무사히 해당 조건까지 클리어할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한때 그렇게나 원해왔던 승진이었는데 더 큰 목표를 위한 선행 조건이라고 생각하니 막상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나는 2021년 8월, 그렇게나 원하던 일본 동경사무소 소장으로 임명되었고 즐거운 마음으로 출국 준비에 매진했다. 하지만 막상 2022년 1월이 되었는데도 나는 여전히 한국이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방역정책을 펼친 일본은 끝까지 코로나 입국제한을 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안정과 열정사이(2) : 제너럴리스트는 되고 싶지 않아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