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 출산 - 혼자서도 잘해요

나의 반을 담은 생명이 세상에 나옴으로써 나는 죽어도 살게 되었다

by 배소지

오늘로 내가 출산한지, 아이가 태어난지 50일이 조금 지났다. 세상에 시간이 이렇게나 빠르다니? 임신 확인을 하고 충격에 변기통을 붙잡으며 토악질을 하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아기 똥기저귀를 열어보고 숨을 참는 날이 오게 되었다.


출산 예정일을 2주 앞두고, 한국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시카고로 왔다. 나의 출산을 축하하기 위해 먼 길을 기꺼이 와준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고마운 일로 남을 일이다. 친구는 시차적응하랴, 나는 만삭이라 크게 움직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 친구가 온지 닷새째만에 시카고 강변을 따라 산책을 했다. 거의 두 시간 동안 강변을 따라 쭉 걸으며 이것저것 구경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는 다시 걸어서 집에 돌아왔는데, 아뿔싸. 그 다음 날부터 이슬이 비치기 시작하면서 그 다음 날부터는 조금씩 진통이 오기 시작한 것이다. 틈틈히 봐왔던 산부인과 유튜브에서 가진통이 시작하고 진진통으로 넘어간다는 내용을 보았고, 시카고에서 알게된 2달 전 출산한 출산 동기 & 선배의 조언으로 깐 진통 트랙킹 앱 등을 활용하여 이틀 동안 진통을 예의주시하였다.


구글 검색을 통해 미국 출산의 경우 진통을 느끼면 제 발로 병원에 찾아가는 것이 기본이고, 자궁문이 아직 덜 열린 가진통의 경우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보았다. 산책 후 이틀 째 되는 날, 저녁에 거실에서 친구와 이야기를 하는데 점점 진통이 심해지고 잦아지는 느낌이 들었는데 수많은 출산 후기들에서 진진통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아픔이라고 묘사한 것이 생각났고, 내 진통은 뭔가 상상은 할 수 있을 정도의 아픔이었고 허리를 비스듬히 숙이면 고통이 잦아들어서 왠지 가진통이겠거니, 하고 진통 트랙킹 앱을 눌렀다 뗐다 했다. 그런데 점점 아픔의 강도가 세지고 간격도 잦아들어서, 견딜만은 하지만 아 그래도 병원에 가서 상황 확인은 해봐야겠다 싶은 마음에 병원에 전화를 걸었고, 병원에서는 음 견딜만한 고통이면 아직 진짜 진통은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와보라며 접수를 해주었다. 자정이 다 되어가는 즈음이라 친구에게 병원을 좀 다녀와야겠다고 하니 친구가 같이 갈까 하길래 아니, 가진통이면 집에 다시 와야되니까 너는 그냥 자고 있으라고, 가진통이면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이고 진진통이면 아침에 네가 출산가방을 들고 병원에 오면 된다고 하고 우버를 잡고, 타고 병원에 도착해 제 발로 산부인과센터에 등록하고 들어갔다.


안내를 받아 검사실에 누워 태동 확인기를 붙이고 앉아있다가, 여성에게는 관심이 없어보이는 듯한(?!) 사근사근하고 살랑살랑한 느낌의 남성 간호사가 자궁문 내진을 위해 들어왔다 (의학적, 마사지 등의 목적의 남성 진료인/테라피스트 들에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편). 이렇게 멀쩡하게 걸어들어온 경우 가진통일 수가 있다며 간호사가 손가락을 넣더니


오마이갓, you're half way open. you got here right on time. we will send you upstair immediately!


세상에? 가진통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 핸드폰이랑 지갑만 들고 헐레헐레 병원에 왔다가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게 아주 좋은 타이밍에 왔다는 칭찬을(!) 들으며 분만실로 옮겨졌다.


나머지 절반이 열리려면 5시간 정도 남았다며, 에피듀랄(무통주사)을 맞겠냐고 물어봐서 맞겠다고 했고, 마취과 간호사의 설명을 들은 뒤 서류들에 서명을 하고 구부정하게 앉아 등에 주사를 맞았다. 척추 주사라고 들었기 때문에 바늘이 엄청 두꺼운 무서운 주사로 푹 하고 찌를 것이라고 상상하며 오들오들 떨고 있었는데, 의외로 아주 얇은 무언가가 따꼼 하게 찌른 것이 전부였다. 마취주사 후 소변줄을 꽂은 후, 내 담당 간호사가 "새벽 6시에 다시 올게, 그때 상황 보고 push를 시작해야하면 하도록 하자. 보통 4시간 정도 걸리고, 첫 출산이면 더 오래 걸리니까 체력 보충을 위해 잘 자둬!"하고 웃으며 나갔다. 오, 출산 전에 마지막 꿀잠을 잘 수 있겠구나 하고 평화롭게 잠들었다.


부스럭 드르륵 하는 소리에 깨어보니 5시 반. 아직 6시가 안 됐는데 오다니? 미드와이프가 인사를 하고 자궁문 내진을 하더니 좋아, 다 열렸어! 이제부터 push를 시작하자! 하길래 오마이갓, 나 지금 막 일어나서 정신이 없는데? 하니까 아냐, 유캔두잇, 하나 둘 셋 힘!!!! 하길래 나도 모르게 끄응!!! 하고 힘을 주기 시작했다. 유튜브에서 보았던 흉곽 줄이기 호흡으로 온 배를 쥐어짜며 내 모든 장기들을 밑으로 내려버리겠다는 각오로 후우우우 하고 숨을 내쉬었던 것 같다. 산부인과 의사와 미드와이프, 간호사가 나를 응원하였고 미드와이프의 나우!!! 소리에 맞춰서 끄응!!! 하는 밀어내기가 얼마간 계속되었다. 아기의 머리가 보이기 시작하자 간호사가 "기다려봐, 거울 가져올게!"하더니 호닥닥 바퀴달린 대형 거울을 돌돌돌 가져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대형 거울을 통해 아기 머리가 보였다 들어갔다 하는 장면을 보았고... 결론적으로 미드와이프의 지금이야!!! 이번에 완전히 나오게 강하게 힘을 줘!!! 소리에 맞춰 아기의 머리가 나오는 것을 내 눈으로 거울을 통해 목도하였다...! 그와 동시에 이제 그만 힘을 빼! 하는 미드와이프의 지시에 따라 힘을 뺐더니 미드와이프가 아기를 번쩍 꺼내들었고, 간호사가 내 손에 가위를 쥐어주며 탯줄을 잘라봐! 하길래 나도 모르게 쑹덩 하고 탯줄을 잘랐다. 그 순간, 아기가 울음을 터뜨렸다.


응애!!!


간호사와 미드와이프가 바쁜 손길로 아기를 닦고, 모자를 씌우고, 배냇옷을 입히고, 허벅지에 비타민 K 주사를 맞히고, 눈에 안연고를 바르고, 키와 몸무게를 쟀다.


새벽 6시 30분, 3.06kg, 52cm의 건강한 아기가 태어났다.


아기가 안정된 후 나의 병원복 상체 고름을 풀러서 아기와의 스킨투스킨 시간을 가졌고, 스윗한 간호사분이 사진을 몇 장 찍어주셨다. 말 없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던 산부인과 닥터는 그제서야 세상에, 첫 출산에 40분 푸쉬라니. 넌 우리 병원의 오늘의 스타야! 네가 병원에 전화를 걸었을 때 너무 평온하게 그다지 통증이 심하지 않다고 해서 오늘 출산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어! 라며 나의 순산을 축하해주셨다(?!). 간호사와 미드와이프도 세상에 첫 출산에 40분이라니, 넌 최고야! 하고 따봉을 쎄우며 나를 입원실로 인계했다.


아침 10시가 다 되어서야 친구에게 "나 아기 낳음 ㅋ 가방 들고 와주셈" 하는 문자를 보냈고 친구 역시 기함하며 병원으로 쫓아왔다. 부른배로 혼자 떠난 친구가 밤 사이에 이제는 둘이 되어 병원에 누워있는 것을 보니 친구도 이상하긴 했을 것 같다.


이렇게 친구와의 산책 덕에 예정일보다 1주일 빠르게 파워순산하였고, 원래는 예정일보다 1주일 먼저 입주해 출산준비 마무리를 도우려던 산후도우미 이모님도 병원에 도착하셔서는 "세상에 이슬이 시작했다고 해서 설마 했는데 정말!" 하며 첫날부터 실무에 돌입하셨다.


2박 3일 병원에 입원해있는 동안 친절한 간호사분들이 이것저것 많이 도와주셨고, 밤에는 nursery에 아기를 보내서 나는 휴식을 조금 취했다. 물론 새벽 중간중간에 바이탈체크를 하러 간호사들이 들락날락하긴 했지만, 2시간마다 분유를 줘야하는 신생아가 곁에 있는 것보다는 훨씬 편안하게 휴식을 취했다. 입원 중 산부인과 의사 회진, 소아과 의사 회진으로 체크업을 하고, 아기는 청력테스트도 받고 B형간염 1차 접종도 받았고, 출생신고도 진행했다.


입원 중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아무래도 병원밥이 아닐까? 미국 병원밥은 정말 재미있다. 룸서비스처럼 메뉴 카드를 보고 전화를 해서 주문을 넣는 방식인데, 피자 버거 파스타 샌드위치 샐러드 브렉패스트 등등 일반 식사 메뉴 등이어서 나는 팬케이크, 치킨숲, 라자냐, 프렌치 토스트 등을 돌아가며 먹었다. 간호사에게 물을 달라고 하면 항상 머리통만한 대형 컵에 얼음을 가득 넣은 물을 갖다주셨다. 한국에서라면 기함을 했을 얼음물, 하지만 나는 잘 받아 마셨다.^^;;


또 하나 인상깊었던 것은, 병원의 사회복지담당자가 방문해 건강과 심리상태에 대해 물어봐주고, 출산이나 육아 등 환경 변화에 대한 질문이나 걱정에 대답해주거나 상담을 할 수 있는 기관을 알려주고, 그런 정보들이 들어있는 프린트물을 전해줬다는 것이다. 미국은 병원진료를 가면 항상 놀라운 것이 "do you feel safe at home? do you feel sad or depressed?" 집에서 안전함을 느끼는지, 가정폭력이나 학대는 없는지, 우울감을 느끼는지 여부들을 까다롭게 체크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꼼꼼하게 신경써주는 것이 참 섬세하게 느껴졌다. 또 예전에 응급실에 왔던 경험을 통해 유명해진(?) 덕분인지 해외에서 이주해와서 적응에는 문제 없느냐, 싱글맘으로 알고 있는데 친자확인이나 양육비 청구 등에 대한 도움이 필요하느냐 등등 개인적인 상황에 대한 도움도 많이 제안하는 것이 정말 섬세하고 고맙게 느껴졌다.


이렇게 폭풍같이 휘몰아친 2박 3일을 끝으로, 혼자 들어온 병원에서 둘이 되어 퇴원하였다.






아기 아빠와는 연락을 이어가고 있으며, 합의를 통해 양육비와 면접 등에 대해 조율을 하여 어느정도 그의 involvement가 있는 정도로 내가 양육권을 갖고 양육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전체가 정우성 혼외자 사태(?)로 얼마간 시끌벅적했다. 어느 정도 비슷한 상황인 나의 입장에서, 꼭 아기가 생겼다고 결혼할 필요는 없지만 엄마도 아빠도 아기를 키우는데에 있어, 아기가 자라나는데에 있어 세상에 데리고나온 책임은 반드시 충분하게 지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아기 아빠가 어느 정도 내 기대에 따르며 협력할 의지를 보여주고 실제로도 협력 중이기 때문에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고, 일반적이지 않은 가정의 형태에서 자라날 아이에게 어느 정도의 결핍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며 아기를 키워보려고 한다.


한 때 잠시나마 중절이라는 선택을 고민했던 날들과 그 날의 고민이 전생의 기억과 느낌 같이 아득하다. 이 아기가 아니었으면 어쩔뻔했나? 아기가 내 팔에 얼굴을 파묻으며 잠투정을 할 때나 내 품에 안겨 우유병을 쪽쪽 빨아대면 이제까지 없던 행복이 내 온 몸을 감싸고, 아기가 엎드려 잘 때 혹시나 숨을 쉬지 않는지 걱정이 되어 아기 등에 손을 올려 몸이 들썩이는지 보며 걱정한다. 지금까지는 없었던 행복과 함께 평생의 걱정거리가 생겼고 그 스펙트럼은 그 어느 때보다도 깊고 높다. 누군가와 결혼을 하고 계획을 하고 준비를 하여 아기를 낳으라고 했으면 이 생에 나는 아기를 낳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다보니(!) 아기가 생겼고, 생겼다보니 낳았다. 아기를 낳는데에 완벽하게 준비되는 시간은 없는 것 같다.


외국으로 취업하여 혼자 산지가 12년이다. 혼자 살다 죽으면 그만인 인생이었다. 나의 반을 담은 아기가 태어난 이후, 나는 죽어도 살게 되었다. 나의 남은 삶을 나눠주고, 죽어도 사는 생명력을 나눠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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