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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삭 젖은 것처럼 무거운 몸

여전히 지속된 자학

by 밤잼

알코올을 끊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사달이 났어도 났을 것이다.

그걸 단번엔 성공했던 것은

어떠한 계시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큰 행운이었다.


하지만 주사를 맞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했고

턱없이 부족한 인슐린 때문에 영양소가 몸에 흡수되지 않으니

늘 식탐에 허덕였다.


나는 온갖 정제탄수화물과 단순당의 유혹 앞에 매일 무너졌고

(무너졌다는 표현이 무색하다. 그냥 고민없이 먹었다.)

갈증은 매일 매순간 심해

엄청난 양의 물을 마셔댔다.


물은 몸에 투입되듯 했지만

그와 동시에 탈수가 일어나니

위장에만 물이 가득하고

다른 신체부위의 수분은 부족했다.

특히 말초부위로 갈수록.


머리카락은 푸석푸석해지고, 손끝은 건조해서

휴대폰의 지문인식이 잘 안 되어

지문인식을 여러번 꾸욱 눌러도

인식 횟수가 초과해서 결국 비밀번호를 눌러야 하곤 했다.


한번은 머리의 탈모를 발견하고는 엄청나게 충격을 받았다.

아무래도 20대의 나이에 탈모가 일어날 걱정을 하는 것은 흔한 경우가 아니니

머리 윗부분을 볼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동생이 깜짝 놀라 물어본 것을 계기로

거울을 2개 사용하여 비춰본 것이다.

생각보다 심각해서

주저앉아 울었다.


물을 몇리터씩 먹고도 혈당이 높으니

물이 위장에서 차지하는 무게와

고혈당이 주는 피로감 때문에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걷는 것도 힘들었다.


그러면서도 일은 했다.

물론 내 컨디션에 대해 직장에 밝히지 않았으니

늘 피곤하고 지쳐있는 그 상태를 설명할 길은 없었고

'젊은데 늘 피곤한 애'

라는 이미지였으려니 짐작만 하고 있었다.


몸의 혈관이 천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 천들이 물에 푸욱 젖어

몸을 밑으로 끌어당기는 느낌...

아니다.

몸의 혈관은 천이 아니라 돌덩들이었다.


얼마전 친구가 차려준 브런치. 얼마나 근사한지. 천천히 친구와 누린 아침 시간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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