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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내 발과 작별할 때가 왔나

그냥 주사를 똑바로 맞아...

by 밤잼

연속혈당측정기를 착용하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뭔가를 섭취하면 항상 High를 보는 일상이 지속되었다.

그래도 비싼 돈을 내고 연속혈당측정기는 꼬박꼬박 착용했더랬다.


20대 초반에 발병한 1형 당뇨병이 어느덧 20대 후반까지 이어진 시점이었는데,

고혈당이 유지되는 유병기간이 길어져갈수록 여러 이상증세가 나타났다.


몸이 망가지는 것보다 살이 찌는 게 더욱 두려웠기 때문에

주사를 충분히 맞지는 못하고, 그저 몸이 버텨주기만을 바랐다.

정말 어리석은 생각이었지만, 실제로 버텨낸 내 몸도 보통은 아닌 듯싶다.


어느 날인가부터 발등에 통증이 느껴졌는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다 점점 걸을 때마다 통증이 오기에 발등을 살펴보았더니

커다란 상처가 나 있었다.


'언제 다친 거지?'


조금 찜찜하긴 했지만, 곧 낫겠거니 하고 넘겼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발의 통증은 심해졌고, 걷는 데도 지장이 생길 정도가 되었다.

외면하고 싶어 일부러 샤워할 때도 발쪽을 보지 않고 씻었다.

하지만 더이상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은 악화되어갔다.


확인해보니 발등의 상처는 깊이 패여있었고, 노란 고름이 상처에 가득 차 있었다.

고름은 굳은 상태였고 상처를 매운 충격적인 비주얼.

분명 발등을 다친 적이 없는데도 그런 상처가 생긴 것이 의아했다.


그래도 상처니까 언젠간 낫지 않을까 싶어 며칠을 더 보낸 후

정말 절뚝거릴 지경이 되었고,

친구의 진심어린 조언을 듣고 덜컥 겁이 나 병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궤양'일수도 있다는 친구의 말에

병원에서 대기하며 인터넷으로 사진을 찾아봤는데,

내가 이대로 가다가는 도달할 거라 예상했던 그런 끔찍한 병세의 발 사진들이 즐비했다.

너무나 무서워서

'발을 잘라내면 어떻게 걷지? 남은 발의 일부분으로는 걸을 수 있겠지?'

'그래도 발이 잘리면 정신 차리고 똑바로 관리하겠지...' 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발의 일부를 보내줄 나름대로의 각오를 했다.

(대기실에 멀쩡히 앉아 있는 20대 여성이 그런 상상을 하고 있다는 건 아무도 몰랐을 거다.)


드디어 진료실에 들어가서 나의 상황을 설명했고,

의사선생님은 내 발을 살펴보더니 간호사분께 어떤 지시를 내렸다.

나는 다시 조금 대기한 후, 나를 호명하는 소리에 진료실에 다시 들어가 침대 위에 앉았다.


도구(?)들을 준비하는 모습에 두려웠지만,

두려움을 티내기엔 또 너무 피곤했다(고혈당 때문에 피곤함이 디폴트).

그래도 나의 운명을 받아들이기 위한 질문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수술 해야 하나요...?"


의사선생님은 대수롭지 않게 "수술 안 해도 되게 해볼 거예요."하며 내 상처를 촉촉하게 적시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노란색 고름을 살살 떼어내고 긁어내셨다. 조금 따가운 것 말고는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의사선생님의 '수술 하지 않아도 되게끔'이라는 말이 그저 위안이 되었을 뿐이다.

어느덧 고름은 들어올려졌고, 발의 움푹 팬 상처는 감싸졌다.


너무나 감격스러운 결과였다. 발을 잃지 않아도 되다니.

한동안 병원에 거즈를 갈아주러 계속 방문해야 했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발의 상처는 어느덧 조금의 흔적을 남기고 다 나았다.

하지만 겁 먹었던 마음이 간사하게도, 나는 이후에도 주사를 잘 맞지 않았고

식이장애에 굴복하는 날을 반복해서, 발에 또다른 상처가 생겼다ㅎㅎ.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나를 얼마나 어리석게 볼까 걱정이 되긴 한다.)


망각이란 정말 강력하다.


수란사진.jpg 치즈를 닮은 수란. 수란이란 정말 근사한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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