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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주사기 부수기

아니면 굶어야 한다

by 밤잼

갖은 이상증세와 무기력감으로 점점 더 건강에 경각심을 느껴가며

나는 식단을 조절하고 주사량을 늘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전히 턱없이 부족했지만,

이전처럼 하루에 초코 과자 9개를 먹고서 주사를 맞지 않는 위험한 일은 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그렇게 하면 몸이 버티지를 못했다.

만약 그런다면 새벽에 케톤산증을 동반한 구토를 하고 숙취의 몇배가 되는 메스꺼움을 감수해야 했다.


주사량을 늘리다 보니, 갑자기 주사액이 떨어질 것에 대한 감이 전혀 없었다.

그런 상태로 해외 여행을 갔는데, 정말 신나게 먹고 걷고 맞았다(주사를).


그러다 마지막날 저녁을 먹기 전 발견했다... 주사액이 다 떨어진 것을.

(펜평 주사기는 주사액이 일정량 미만으로 남으면 더이상 주사액을 맞을 수 없게 된다.)

다음날 아침 출국해야 하는데, 마지막 저녁식사를 굶는 것은 너무나 가슴아픈 일이었다.

진지하게 주사를 맞지 않고 최대한 단백질로 먹어볼까 고민도 했지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특히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컨디션 관리는 필수였다.


지금은 펜형 인슐린에 펜니들(주삿바늘)을 끼워 주사를 맞는 방식이 보편화되었지만,

예전에는 주사액을 주사기(시린지, 흔히 알고 있는 일반적인 주사기 모양)로 뽑아 썼다고 한다.


(왼쪽 사진이 현재 보편화된 펜형 인슐린, 오른쪽은 예전에 주로 쓰인 시린지형 주사기)


피아스프.png
tlflswl.jpg
출처: https://blog.naver.com/mavens01/223540937351(왼)https://blog.naver.com/hreosfuyau/100183355928(오)


이런 사태에서는 펜형 인슐린 끝부분에 남은 주사액을

주사기로 찔러 뽑아 쓰는 방법이 있는데, 저 주사기를 구하기 위해 근처 약국이란 약국은 다 찾아다녔다.

같이 동행해준 친구에게 얼마나 고맙던지...

그렇지만 하나같이 돌아오는 답변은, 주사기는 없다는 것.


한국에서는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데, 정말 충격이었다. 정말 굶어야하나... 서러움이 밀려왔다.

그나마 주사액이 떨어진 게 여행의 마지막날이라 다행이었다고나 할까.


절망 속에 방법을 찾던 중, 비공식적인 방법을 하나 알게 되었다.

바로 펜형 주사기를 부수는 것(?).


정확하는, 저 주사액이 든 통을 분리하여 꺼내서 펜니들을 꽂고,

막대기로 주사액 마개를 눌러 남은 주사액을 주입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남은 주사액을 짜내는 것.


다시 약국으로 가서(차를 이용하지 않고 약국 이곳저곳을 걷는 건 참 힘들었다.)

의료용 가위를 사고, 가위로 주사기를 자르고 비틀어 통을 분리해냈다!

그리고 펜니들을 끼우고, 배에 꽂고, 나무젓가락을 주사액이 든 통으로 밀어넣어 주사를 맞았다.


행복하게 저녁을 먹었고, 다음날 좋은 컨디션으로 무사히 귀국했다.

정말이지 주사기 하나로 남의 나라에서 난리법석을 친 저녁이었지만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항상, 남은 주사량을 체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그 이후에도 주사액이 부족한 채로 출근하거나 외출해서 샐러드를 먹거나 굶은 날이 빈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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