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케이크를 갈망했던 이유

병에 걸리기 전, 케이크는 내게 매력적인 디저트가 아니었다.

by 밤잼

발병 전 케이크는 내게 매력적인 디저트는 아니었다. 케이크는 나의 욕망의 대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1형 당뇨 발병 이후, 케이크에 대한 집착이 굉장히 강해졌다.


요지를 먼저 말하자면,

케이크는 의외로 혈당을 다른 디저트보다 덜, 천천히 올린다. 그렇기 때문에 케이크에 대한 집착이 생겨났다.


물론 케이크의 재료, 종류마다 천차만별이지만 보통 카페에서 파는 밀도가 낮고 크림이 적절히 들어가는 조각 케이크는 디저트치고 혈당이 크게 오르지 않는 것을 경험한 것이다. 크림이 지방이기 때문이다.


케이크: 먹어도 괜찮음. 허용됨.

다른 디저트: 위험함. 먹으면 안 됨!


라는 공식이 내뇌에 성립되어서 카페에 가면 음료보다 무슨 케이크가 있는지부터 확인하게 되었다.


케이크는 나의 최애 디저트가 되었다.


대학생이었던 나에게 케이크는 금전적으로도 부담스러운 대상이었기 때문에 작은 상자에 포장된 당근 케이크를 소중히 반 잘라 음미하며 먹고 닫아놨다가 결국 못 참고 나머지 반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AI가 묘사해준 그림. 얼추 비슷하지만 잘려진 방향은 가로가 아니라 세로였다. 그래도 재미있는 그림이다.















그러다 직장인이 되고 돈을 벌면서 나는 정말 각양각색의 케이크를 구매해왔다. 내가 직장인이 된 후 구매한 케이크가 몇 개일까 생각하면 아찔할 정도이다.


비록 혈당을 덜 올린다고 해도 한 조각을 다 먹으면 여지없이 고혈당을 찍는다. 그래서 일부만 먹고 뱉는 등 한 개를 온전히 먹지 못했다. 케이크는 허용이자 금지의 대상이었다. 안전이자 위험이었다.


한 조각을 온전히 먹을 수 없는 케이크에 대한 갈망은 커져만 가고, 그래서 많은 갯수의 케이크를 구매했으며

금전적 감각은 무뎌지고, 일부분만 섭취된 케이크들은 차라리 1조각을 온전히 먹었을 상황보다 더 몸을 안 좋게 만들었다. 당연했다. 몸에서는 1조각 양이 넘는 케이크가 소화되었을 테니.

아, 물론 주머니사정도 덩달아 안좋아져갔다.


카페에 들어가면 음료보다 어떤 케이크가 있는지부터 확인했고 신기하거나 맛있어보이는 케이크가 있으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일행과 있으면 같이 나눠먹지만 마음속으로는 궁금한 종류를 왕창 사서 다 맛보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억눌렀다.


당연히 집에서 먹을 때는 눈치보지 않고 케이크를 맛보고 뱉었다(독립을 했다). 예쁘게 데코된 조각케이크들은 그렇게 나의 한순간의 즐거움을 위한 음식물 더미가 되어 버려졌다. 누군가는 축하를 위해, 고생한 자신을 위해, 아니면 그냥 케이크가 먹고싶어서 한 조각을 온전히 누릴 것을 나는 '허용된 디저트'라는 명목 하에(사실은 허용되지 않았지만) 그렇게 소비했던 것이다.


내가 가졌던 수많은 이상 식이 증세 중, 이것 역시 비정상적인 한 부분이라는 것을 인지하고는 있었지만 가면 갈수록 경쟁하듯 출시되는 예쁘고 맛있는 케이크들을 거부하기가 어려웠다. 먹으면 먹을수록 더 먹고 싶었다.


그런데 과도한 크림과 당 때문인지 고혈당의 부작용과는 다른 증세가 나타났다. 손발이 붓고 염증이 여기저기 생겼다. 제일 큰 부작용은, 인슐린 주사 효과가 매우 떨어지는 것이었다. 어떤 것이 정확한 원인인지는 모르겠지만, 과도한 지방 섭취와 그로 인한 염증 때문에 인슐린 민감도가 낮아진 것 같았다.


이는 치명적이었다.

주사를 맞아도 이전처럼 혈당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어느 날엔, 주사를 맞고 예기치 않게 식사 시간이 연기되는 상황이 있었는데, 심지어 걸어야 했다. 저혈당을 예감하고 사탕을 챙겼으나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사탕은 쓰이지 않았다. 주사를 맞은 지 2시간이 되어가는데도 혈당은 높은 혈당에서 정상혈당으로 떨어졌을 뿐이었다. 연속혈당측정기 화면에 가파른 곡선이 아닌, 아주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심각성을 깨달았다. 정상인이 저렇게 케이크를 과도하게 먹어도 분명 탈이 날 텐데, 인슐린 민감도가 중요한 내가 이 지경이 되다니! 이렇게까지 주사가 말을 안 듣는 것에 기가 막혔다.


그래서 먹었다. 케이크를.

온전히 먹었다.

한 조각을 소중하게. 눈에 충분히 담고, 포장을 찢어발기는 것이 아니라 조심히 열어서, 플라스틱 포크가 아닌, 집에서 제일 예쁜 포크를 꺼내서. 쟁반에 놓고, 빵 부분을 뱉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천천히 먹었다. 온전히 먹는 케이크의 맛이란! 내 자신을 축복하는 것 같았다. 케이크를 온전히 먹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혈당이 고공행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먹고 뱉을 것을 예상하고 주사를 안 먹던 때와 달리

케이크 하나를 소화시키고자 그에 맞는 주사를 맞았기 때문이다.


당시 먹었던 케이크는 티라미수. 주말 낮의 햇살을 받은, 내가 온전히 먹을 케이크는 빛이 나는 것만 같았다.



케이크 한 조각만을 온전히 먹는다는 것이 너무나 생소했다. 그리고 기뻤다. 분명 한 조각만의 케이크를 먹은 것임에도 만족감이 차고 넘쳤다. 그 아름다운 느낌을 잊을 수 없다.


이후, 나는 케이크에 대한 갈망을 버리고자 노력했다. 케이크는 내가 정말 원해서 구매하고 먹는 것이 아니었다. 괜찮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원한다고 착각했던 것이다. 케이크는 그저 카페에 다소곳이 앉아있을 뿐이었는데, 나는 그걸 먹어야 한다고 느껴왔다. 내가 섭취해도 괜찮은 디저트니까. 섭취해도 물론 괜찮다. 하지만 내가 원할 때 온전히 섭취하면 된다. 카페에 가면 강박적으로 케이크를 구매하는 것을 멈췄다. 처음엔 어색하고 힘들었다. 하지만 케이크를 기형적으로 먹는 습관을 멈추니, 갈망은 서서히 사그라들었고, 지금은 케이크를 온전히 먹고 싶을 때 먹는다.


















keyword
목, 일 연재
이전 21화대체당, 제로슈가는 소용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