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만 그렸다고 비난을 받고 있는 도시재생. 정말 대상 마을마다 엄청난 예산을 쓰고 벽화만 그렸을까? 정치인들과 언론이 벽화를 그린 도시재생 지역을 찾아가서 일방적인 비난거리를 만든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의 인구감소로 인한 지방도시는 소멸을 위기에 빠져있다. 대도시들도 크게 사정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지역 작은 도시들은 성장하고 매력적인 도시로 꿈을 키우기 어려운 현실이다. 건축물 노후화가 확산되고 있으며, 쇠퇴지역의 일자리 감소가 심해지는 등 시민들의 삶의 만족도가 높지 않다.
심각해지는 도시쇠퇴와 지방소멸이라는 위기를 헤쳐 나가기에는 기존의 방법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도시를 지속적으로 혁신하고 활력 넘치는 지역을 일궈 낼 다른 방법,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아인슈타인 박사는 “다른 결과를 원하면서 같은 방법을 쓰는 것은 어리석다”고 하였다. 같은 방법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순간, 혁신은 관행이 되어 버린다. 다른 결과를 원한다면, 다른 방법을 쓰는 것이 혁신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거주하는 도시와 마을은 살아 생동하는 유기적 생태계를 가지고 있다. 이 유기적 생태계에서 집과 건물은 오장육부이며, 길과 도로는 혈관이고, 지역 공동체는 손과 발이며, 주민은 세포이다. 쇠퇴한 도시가 다시 활력이 넘치려면 삼위일체 도시재생사업이 필요하다.
삼위일체란 물리적재생, 공동체재생, 경제적재생의 조화를 의미한다. 물리적 재생은 노후된 주거환경의 개선이나 정비, 생활SOC 조성 등 물리적 장소에 대한 재생이며, 공동체적 재생은 주민들의 역량 강화, 마을공동체의 회복 등 사람에 대한 재생이고, 경제적 재생은 쇠락한 지역경제의 활성화 등 경제조직에 대한 재생을 뜻한다. 이렇듯 도시재생은 사람과 장소를 이어주는 사업이다.
도시재생사업은 물리적 재생, 공동체적 재생, 경제적 재생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국가의 정책 사업이다. 도시재생은 인구감소, 지방도시 쇠퇴 문제에 대응하는 중요한 국가정책이었기에 2013년 박근혜 정부 때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했다. 이렇듯 도시재생 뉴딜은 문재인 정부에게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다. 도시재생 뉴딜 정책은 지난 정부의 도시재생 정책을 부정하고 새롭게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수용하고 보완하여 추진된 정책이다.
도시재생은 노후되고 쇠퇴한 마을과 원도심을 전면철거하고 백지상태에서 개발하는 방식이 아니다. 쇠퇴한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새로운 혁신주체들과 함께 지역혁신, 도시혁신을 추진하려는 방식이다. 지난 5년간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청년소셜벤처 등이 도시재생 뉴딜사업의 새로운 주체로 등장하였다.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지역마다 다른 지리, 문화, 경제에 따라 지역맞춤형 도시재생이 될 수 있도록 유형을 다양화하였다. 우리동네살리기, 주거지지원형, 일반근린형, 중심시가지형, 경제기반형 등 기존 다섯 가지 사업 유형은 물론 대학타운형, 여성친화도시형 등 지역재생 특화사업도 진행하였다. (그러나 도시재생사업의 유형은 윤석렬 정부가 출범하고 기존 5개 사업유형에서 경제재생과 지역특화재생 2가지 유형으로 통ㆍ폐합되었다.)
다양한 사업 유형을 제도화시킨 이유는 도시재생사업이 본질적으로 융․복합적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의 기능은 다양하다. 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인간이 창조한 도시는 주거, 복지, 교육, 돌봄, 일자리, 위생, 안전, 문화 등 여러 기능들이 줄탁동시(啐啄同時)하는 장소이다.
도시가 쇠퇴한다는 것은 특정한 일부의 도시기능만이 쇠퇴하는 것은 아니다. 도시의 다양한 기능들이 연계되어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는 것이다. 도시 쇠퇴의 모양새가 이러하니, 도시재생 또한 어떤 특정한 도시의 기능만을 회복하는 사업으로는 활력을 살리기 힘들다. 도시재생은 ‘쇠퇴한 도시의 기능을 회복하기 위한 융․복합사업’이다. 쇠퇴지역을 물리적, 경제적, 공동체적 방식으로 재생하여 도시기능의 회복과 동시에 경쟁력이 있는 도시로 재창조하는 사업이다.
도시재생은 도시의 기능과 도시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 추진한 사업인데, 왜 벽화나 그리는 사업이라는 오명과 오해를 받고 있을까?
문재인 정부 집권기간 동안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다. 있는 자금 없는 자금을 다 동원하여 아파트를 장만하는 '영끌족'이 등장했고, 폭등하는 아프트 가격에 죄절과 분노했던 무주택자들은 '벼락거지'가 되었다. 정치인들은 부동산 폭등의 희생양으로 도시재생은 희생양으로 삼았다. 물론, 도시재생사업을 하는 많은 마을을 가보면 의미 있는 주거환경개선과 양징의 주택을 공급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벽화만 그렸다는 일방적인 비난을 받을 사업은 결코 아니다.
아직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매력적이고 창조적인 도시재생사업의 성공사례는 손을 꼽는다. 그렇다고 그 많은 예산을 벽화에 쏟아붓지는 않았다. 사람과 장소를 이어주는 여러 사업에 투자했고, 계속 투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