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오르는 출장길에서..
오랜만에 오르는 출장길. 신랑은 평일내내 출장이다.
나는 당일 출장이긴하지만, 아이들 얼굴도 보지 못한채 새벽에 부리나케 나와 srt에 탑승했다.
친정엄마가 육아에 도움을 줘서 가능한일들.. 정말 감사하다.
초등학교 저학년 까지의 아이를 키우는 맞벌이 부부에게는 정부에서 도움을 주는게 한계가 있을수 밖에 없다.
집안의 누군가가 아이를 기르는 것에 대해 발벗고 나서주지 않으면, 일과 육아의 병행은 고통스러운 것이다. 고통이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그냥 회사다니는 것만으로, 아이 키우는 것만으로도 벅차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 둘을 감내하는건 보통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기적인 출퇴근만 해도 어렵지만, 파트타이머가 아닌이상 변수는 생긴다. 회식, 출장, 야근 등등..
정말 체력이 안되고 시간이 안되는 물리적인 고통과 아이에게 미안한 죄책감으로 인한 마음의 고통, 그리고 여유가 없어지니 부부 사이의 대화 축소 그리고 서로 곱게 나가지 않는 말로 마음의 문을 닫게 되고, 가족을 이룬것에 대한 회의감까지 들 수 밖에 없다.
혹자는 말한다. 맞벌이는 선택사항 아니냐고.
그리고 출산과 양육에 대한 지원만 늘어난다고..
이 아이들이 자라서 또 세금을 내고, 다양한 문화발달과 사회발전을 이끌고 그걸로 사회가 굴러가고.. 그리고 어른들도 아이를 키우면서 더 많이 배우고 한 껏 성숙해지면서 한번 성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 구성원들이 또 사회에서 성숙한 어른의 역할을 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정말 나만 생각하면 더 멋대로 행동하고, 사회질서도 유지할것도 없다. 한번 살고 끝나는 인생 아닌가.
맞벌이를 하는것 혹은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쉽게 말하듯 선택사항일 수 있지만, 사회 구성원으로써의 역할 그리고 그 역할 유지를 위해 미친물가 속에서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데 필수일 수도 있다.
요즘 집값과 물가로 결혼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그걸 이겨내고 결혼을 해서 그 보통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이 따르는지 겪어본 사람만 안다.
남자도 여자도 대부분 대학이상의 교육을 받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써의 역할을 하고 싶은데, 모든걸 포기하고 육아만 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물론 상황이 안되서 각자 멋진 직업을 가졌던 엄마들이 정말 상황이 안되서 육아만 하고 있는 경우도 있고 나도 회사를 때려치고 아이옆에 있고 있을 때도 있지만
그 중 또한 아이가 좀 크면 경력단절을 딛고 다시 사회로 나가는 지인들도 여럿봤고, 아이 신랑 등 가족구성원들이 마음편히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엄청한 희생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는거랑 포르쉐를 타는거랑 뭘 선택할거냐고 단순하게 묻는 젊은이도 있었다. 모 선배가 아이를 낳고 기르는건 엄청난 행복과 기쁨이 따른다고 해도 그 아이는 포르쉐 타는 기쁨을 안누려보지 않았냐고 대답한다.
( 그럼 너는 포르쉐 언제 탈 수 있을것 같니? 라고 묻고싶었지만 ) 정말 한번 타고 죽는게 소원이라면 아이가 있던 없던 무리해서 구입 하겠지. 삶의 가치에 대한 우선순위가 다른거지..
이렇게 일차원적인 질문과 답을 원하는 사람과는 이쪽방면으론 깊은 대화를 할 필요가 없고, 내 주장을 하며 얼굴을 붉힐 필요도 없다. 그냥 웃고 넘긴다. 어차피 토론이 되는 고차원적인 삶을 살 것 같진 않아서..
어떤 선배는 결혼하는 후배의, 아이에 대한 질문에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슬픔 괴로움도, 기쁨 행복도 배로 커져서 내가 느낄수 있는 감정의 광폭이 배가 되는 것 같다고, 한번 사는 인생 이런 롤러코스터도 타봐야하지 않냐고 하셨다. 정말 육아는 내가 혼자일때는 느껴보지 못한 또다른 행복과 기쁨, 걱정과 힘듬을 주는것이 맞기에, 이말이 너무 공감이 갔다.
무튼 아이를 키우는 것은 나를 진정 어른이 되게 만들고, 나를 되돌아보게 되며, 훨씬 큰 기쁨과 괴로움 슬픔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
오랜만에 오르는 출장길에서 감수성에 취해 주절주절 떠들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