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고 개인마다 모두 다른 것들을 가지고 있다. 기계가 아닌 인공지능이 아닌 사람이기 때문에 체력, 정신력에 한계가 있고 자기 자식일지라도 같은 공간에서 같이 자라온 형제자매일지라도 인간이기 때문에 쌍둥이가 아닌 이상 외모 및 신체가 다르고 본 것이 다르고 경험한 것이 다르고 맺어온 인간관계가 다르다. 또한 평생을 같은 공간에서 자라지 않는 이상 자라온 환경이 다르다. 당연히 나이에 따라 자라온 시대도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인간은 절대 똑같을 수 없다. 배경지식이 다르고 사상(생각)이 행동이 다르고 보고 느끼는 감정이 모두 다르다. 취향도 다르고 식사량도 다르고 견디는 스트레스 지수도 다르고 삶의 가치관이나 목표도 모두 다르다. 사실상 한 개인이 타인을 100%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기 자신이 매우 특별한만큼 타인도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자신감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좋은 사고 방식이지만 이러한 사고 방식이 지나쳐 자기 우월감이나 자기애가 너무 지나치면 '자만심'이나 '허영심'이 생기고, 그러한 마인드가 올바르지 않은 행동으로 이어지고 그 행동의 칼끝은 결국 자기 자신을 향하게 된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 객관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최소한 타인에게 예의를 갖추고 배려해야 비로소 내가 배려받을 수 있는 것이며 타인을 존중해야 내가 존중받을 수 있는 것이다.
타인을 존중하기 위해서는 우선 타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우리는 지인이나 친구를 만날 때는 그 사람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타인에 대해 편하게 대할 수 있고 존중과 간섭의 타이밍을 적절하게 맞출 수 있다. 하지만 소개팅이나 면접 등 낯선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타인 또는 회사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종종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많은 경우, 타인에 대해 이해할 때 첫인상이나 인상착의, 말투 등으로 선입견을 가지고 만남이나 대화를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선입견은 관계를 가로막는 첫 번째 벽이다. 여러 사람들을 탐구하다 보면, 우리는 다양한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인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미성년자인 경우가 있고 반대로 미성년자이지만 성인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다. 또한 기혼인지 미혼인지, 돈이 많은 사람인지 적은 사람인지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정보가 많다. 심지어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하기 힘든 경우도 종종 있다.
우리는 질문과 대화를 통해 타인에게 대해 좀더 깊이 알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선입견에서 탈피하고 타인을 존중하는 질문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타인의 생각이나 행동에 대해서는 틀린 것이 아닌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구나 옳은 말을 하는 사람보다 이해해주는 사람을 좋아하며 이는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다름의 인정은 갈등의 유용한 해결책이기도 하다. 타인을 존중하는 질문과 대화를 위한 두 번째 방법은 신경 끄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타인의 삶을 존중하고 그 삶이 돈을 많이 버는 것이든 덜 가치 있는 것이든 다소 고통스러운 삶이든 그 삶은 그 사람이 책임지는 것이지 내가 책임지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 타인이 가족이나 친척, 지인이면 어떻게든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겠지만 우리는 한번쯤은 '내버려 두는'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내버려 둔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생각보다 큰 일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타인에게 간섭하는 심리적 요인은 바로 '불안 심리'이다. 타인에게 간섭하는 이들은 보통 사회 불안, 각종 사건사고와 관련된 뉴스, 경찰의 치안 공백 등을 이유로 타인을 보호하거나 지켜야 한다는 일종의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남녀 관계의 경우 이러한 심리 불안이 심해지면 타인의 불쾌감이나 거부 의사와 상관없이 통제와 명령, 의심이 증폭되고 결국 스토킹으로 이어진다.
존중과 애정, 간섭과 집착은 명확한 구분점이 존재한다. 바로 상대방의 '의사'이다. 상대방의 긍정적인 의사표현이 존재하는 관계에서는 상대방에게 존중과 애정의 의사표현이 가능하며 그 외에는 모두 간섭과 집착이다. 성인에게는 모두 자신의 의사표현의 권리와 자유가 존재한다. 말로 하지 않았지만 '행동' 또한 의사표현의 한 종류이다. 상대방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거나 연락을 끊는 등의 행동이다. 의사표현에 '명확성'은 관계에서 있어서 중요한 부분인데, 이성적인 부분이나 계획적인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그들에게 의사표현의 '명확성'을 인지시켜야 한다. 이 '명확성'을 충분히 인지해주었음에도 간섭과 집착이 계속될 경우, 이성조차 흔들리고 있거나 잃었을 가능성이 높고 단연코 도움을 요청하거나 피해야 한다.
누군가와 관계를 오래 유지하려면 서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과 나쁜 관계를 억지로 이어나가려고 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물론, 관계 속에서는 수많은 감정이 느껴지기 때문에 계속 노력해야 할 때는 언제인지, 그냥 그만둬야 할 때는 언제인지 알기 쉽지 않을 때가 있다. 관계를 잘 이어가고 싶은 이유가 좋은 것이 아니라면 판단을 흐리게 하고, 불행을 더 길어지게 하며, 스스로 가장 중요한 문제에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 물론 나쁜 관계에서 나에 대해 배울 점도 있고 교훈도 얻을 수 있지만 다 겪어보고 나빴다고 느꼈으면 그만큼 시간을 낭비했다고 볼 수 있다. 간단하게 관계에 대해 평가해볼 수 있는 방법은 내 우선순위에 그, 또는 그녀와의 관계가 나 자신보다 중요한 위치에 있는지 없는지 생각해보면 된다.
타인을 존중하지 못하는 또다른 이유는 우리 사회가 그다지 평등하지 않은 사회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법 앞에 평등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능력에 따라, 노력에 따라, 경력에 따라, 외모에 따라, 학벌에 따라, 재산에 따라, 사회적 지위에 따라 다르게 대우받고 싶어 하는 게 사람 마음이다. 많은 사람들은 우월감이 이러한 다른 대우에서 비롯되어진다고 믿고 있고 열등감을 노력의 에너지로 삼아 성공하려는 사람들도 많다. 사람이 어떠한 조직에 몸담게 되면 직급이나 자존심을 이유로 억압의 대상을 특정한 후 타인을 짓밟으려는 행위를 사사롭게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으며 ‘사회생활’, ‘상하관계’라는 명목 하에 올바르지 않은 지시를 하거나 스트레스를 주거나 개인적으로 지나치게 간섭하는 일 등은 비일비재하다. 관계에 있어서도 '평등'을 논할 때가 있다. 내가 관계에 투자한 관심, 애정, 노력, 자본만큼 평등하게 돌려받고 싶은 심리가 존재한다. 관계를 양적 문제로 계산하면 나 자신이 끝도 없이 불행해진다.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할 부분은 내가 '존중받는지'에 대한 것이다. 얼마만큼 오고 가느냐에 상관 없이 내가 그 사람에게 충분히 존중받고 있고 충분히 배려받고 있거나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방증이다.
대한민국 사회는 인권 의식 함양이 절실히 필요하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하는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인권이 누구보다 우선시되어야 하며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문화, 일과 사생활을 구분하는 문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관계에 있어서는 내가 상대방을 충분히 존중해주고 있는지, 또는 내가 충분히 존중받고 있는지 생각하자. '감정 조절하기'에서 언급했듯, 감정은 색깔과 같아서 흑백 논리로 설명되는 존재가 아니라 서서히 물들고, 서서히 옅어지는 존재이다. 상대방에 대한 내 감정이 어느 정도 깊어졌는지 어느 정도 멀어졌는지 충분히 알고 있다면, 내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바로서게 될 것이다.
(신경 끄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혹자가 쓴 '신경 끄기' 글을 참고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