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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크 Feb 15. 2023

동면기를 견디는 방법

Ep 5 / 때론 동정받는 삶도 나쁘지 않다

대리 접수 심부름 알바로 일당 4만원을 번 일을 쓴 21세기 수렵인간의 첫 에피소드를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요즘 자전적인 에세이를 써보는 중인데 어때? 한번 읽어봐. 난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데 말이야.


두 사람은 너무 재미있다 낄낄대며 얼른 다른 편을 또 읽어 보고 싶다고 했고 또 다른 두 사람은 별다른 말이 없었고 나머지 한 사람은 눈물을 훔쳤다.


그녀는 하루아침에 나를 반강제 독립(고려장에 버금가는) 시킨 장본인이자 나의 셋째 언니.

(*에피소드 3화. 33살 겨울, 고려장을 당하다 참고)


그런데 그 상황이 웃기다. 함께 운동을 마치고 나오는데 언니가 점심을 밖에서 사 먹고 싶다고 했다. 그러더니 계속해서 나더러 밥을 사라고 종용하는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호소했다.


진짜 돈이 없다고. 내가 돈이 얼마나 없는지는 바로 어제 쓴 글을 보면 알 수 있다며 심부름 어플로 4만원을 번 에피소드를 보여줬고 그걸 읽고는 짠하다며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는 거다.


“다신 너한테 밥 사달라고 안 할게…”


웃음을 주려고 쓴 글에 울며 달려드니 당혹스러웠다. 나의 일상을 적은 진솔한 글이 누군가에게 슬픔을 준다는 건 지금의 내 삶이 그만큼 비참하다는 건가. 이거 되게 심각한 상황인데 내가 현실 감각이 부족해서 배알도 없이 허실허실 웃고 다니는 건가.




"넌 언제쯤 결혼하고 싶어?"

"나? 서른셋."


삼십 대에 접어들기 전 언제 결혼하고 싶냔 사람들의 질문에 난 늘 서른셋이라고 답했다. '33'이라는 숫자가 뭔가 '삼삼하다'라는 말을 떠올려서 그때쯤이면 내 인생이 꽃다발 일색일 거란 근거 없지만 굳건한 믿음이 있었다.


33살 먹었는데 여전히 돈이 없다고. 부모님과 살다가 언니랑 살다가 이제와 혼자 살아보니 자취 로망이니 룸 투어니 신축 빌라니 이런 건 모두 남의 집 이야기고 선택할 수 있는 집이 많이 없더라고. 처음으로 코앞에 바짝 다가온 현실에 위축된다던 내 말에 한 친구가 말했다.


“사람들한테 시샘을 사는 것보단 동정을 사는 게 낫지 않아?”


동정받는 삶이 더 낫다는 건 이전엔 생각해 보지 않았다. 동정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던 적이 많았지 일부러 동정을 유발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친구의 말이 묘하게 설득력 있게 들렸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쓸데없는 시샘을 받는 통에 일이 어려워지거나 감정적 소모를 했던 적이 많았다. 나는 그럴 때마다 오히려 고개를 더 빳빳이 들었다.


“어디 한번 계속 시샘해 봐라. 너만 손해지 내 손해냐?”


지고 싶지 않은 마음. 못나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 내가 당신보다 더 나은 인간이라는 것을 뽐내고 싶은 마음.


그래! 아무렴 어떠냐. 아닌 척, 잘난 척, 능력 있는 척, 괜찮은 척, 무엇이든 다 잘 돼 가는 척. 그런 척을 하다 보면 으레 나도 모르는 에너지가 쓰이기 마련이다.


동물에 빗댄 나의 현재는 동면기에 가깝다. 꾸준히 해오던 과외는 끊겼고, 다달이 150씩 들어오던 창작 지원금 마저 끝났고, 연말이 되면서 지원받던 사업들도 마무리된 지 오래다.


동면기를 맞이한 지금.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 외에 다른 것들에 쓰는 에너지는 쓸데없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의도치 않게 언니의 동정을 샀지만 오히려 슈렉의 장화 신은 고양이 눈을 했다. 그 덕에 공짜밥을 얻어먹었으니 말이다.


오늘 하루를 이렇게 보냈다. 아니 수렵에 성공했다. 21세기 수렵인간의 첫 에피소드로 말이다.


시작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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