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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븐클라우드 May 03. 2022

밤의 카페테라스 6

6. 별이 빛나는 밤

  거기서 김을 만났다. 한 학교에 근무하면서도 김에 대해선 아는 게 없었다. 같은 카페에 새벽마다 앉아 있으면서도 김의 존재를 몰랐던 것과 같은 맥락이랄까. 작년에 발령받아 온 김은 복도에서 마주치면 겨우 꾸벅 인사나 주고받을 뿐 한 번도 대화란 걸 해본 적이 없는 사이였다. 늘 교무실에 앉아서 모니터나 들여다보고 시간표에 맞춰 교실만 오가는 내가 학교에 어떤 교사가 새로 오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관심을 둘 리도 없었고, 김 역시 조용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부류의 사람인 것 같았다. 카페에 다닌 지 한 달 가까이 지나서야 김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저기, 저 김영은이에요. 카페 문을 동시에 나서다 어깨가 부딪칠 뻔한 상황이었다. 민망한 마음에 어색하게 웃으며 목례를 하는데 상대방이 말을 건넸다. 네? 누구……? 김영은이요. 저 2학년부에 있는데, 샘은 교무부시죠? 아……. 한참만에야 상황 파악이 되었다. 한 달 전쯤부터 샘 뵈었는데 긴가민가해서 인사 못 드렸어요. 김은 내가 오기 훨씬 전부터 카페에 자리 잡고 있던 단골이라고 했다. 작년 봄부터니까 좀 있으면 일 년 되겠네요. 김은 어깨를 으쓱하며 웃어 보였다. 샘이 들어오는데 왠지 익숙한 것 같아서 아는 사람인가 아닌가 고민했어요. 근데 주인분과 반갑게 인사하시길래 아니구나 싶어서 그냥 넘어가고 말았죠. 나도 뭔가 변명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아아, 제가 눈이 나빠서, 아니 실은 사람들 얼굴을 잘 안 보고 다녀서요……. 김은 손사래를 쳤다. 아니, 아니에요. 카페에서 누가 다른 사람 유심히 보나요. 그냥 오늘 인사하게 되어서 반가웠어요. 

  나 말고도 새벽에 잠 못 이루는 교사가 또 있다니, 뜻밖이었다. 햇살 아래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포근한 잠속에 아침까지 안겨 있다 나온 것처럼 보였었는데. 김은 왜 이 새벽에 이 카페에 앉아 있는 걸까. 그것도 열 달 가까이. 왠지 안심이 되었다. 나 혼자가 아니었구나. 이런 건 우스울 수도 있겠지만 혼자 어두운 우주를 떠돌다가 저쪽에서 떠도는 또 다른 우주선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랄까. 서로 닿을 수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지만, 어쨌든 어둠 속에 나 혼자 있는 건 아니라는 위안.

  그 후 카페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김을 찾게 되었다. 김은 늘 같은 자리, 제일 오른쪽 구석에 앉아 있다가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고개를 들어 눈인사를 건넸다. 가볍게 목례, 그걸로 끝. 굳이 말을 걸거나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건 나도, 아마 김도 원하지 않을 거였다. 그리곤 곧장 영훈에게 가서 말없이 손을 흔들고 커피 값을 계산한다. 텀블러에 커피를 받아 문가 탁자에 자리를 잡은 후 미술사 책을 펴고 조각과 건축과 그림들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이제 낯선 그림이 없을 정도로 책에 익숙해졌다. 슬슬 이 책을 뗄 시기가 된 것 같기는 한데 적당한 다음 책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소설이든 수필이든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는 왠지 내키지 않았고, 새삼 글자가 촘촘히 박힌 책을 읽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어디서 무얼 찍은 건지도 모르겠는 사진을 실어놓고 글자 몇 개를 인쇄해놓은 종류의 책을 보고 싶지도 않았다. 새벽의 카페에 어울리는 책은 의외로 드물었다. 책 말고 그럼 뭘 할 수 있을까. 수첩에 낙서를 하자니 그것도 지루했다. 두서없이 끼적거리다보니 이건 또 다른 꿈의 파편, 새벽에 엄습하는 이미지들의 의미 없는 잔상같이 느껴졌다. 어느 날엔가는 퍼즐 게임을 다운받아 한 단계 한 단계 밟아나가기도 했지만 날이 밝은 후 집에 돌아가는 길이 씁쓸하기만 했다. 이게 무슨 바보짓인가. 재미도 없고 눈은 침침하고 오른쪽 손목은 뻐근하기만 하고.

  그러다 문득 십자수나 할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도 십자수 하는 사람이 있나. 창의적인 것과는 관계없이 한 칸 한 칸 정해진 대로 메우기만 하면 되는 단순 반복 작업. 그래도 완성해놓고 보면 내가 뭔가 만들어낸 것처럼 뿌듯했던 기억이 났다. 예전엔 꽤나 유행이어서 동네마다 십자수 가게가 있었는데. 액자를 만들어주는 곳도 있고 원하는 사진이나 그림을 보내면 도안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십몇 년 전이었나, 한창 십자수에 빠져서 제야의 종소리가 울릴 때조차 방구석에 웅크린 채 맹렬히 십자수만 놓고 있었지. 눈 내리는 마을, 야생화가 꽂힌 화병, 산토리니의 하얗고 푸른 건물들, 그러다 나중엔 정선의 ‘금강전도’까지. 다시 생각해도 그땐 정말 미친 것 같았다. 회색, 더 짙은 회색, 쥐색, 남색, 갈색, 검은색, 덜 검은 색, 희끄무레한 색, 연한 회색, 연한 검은색, 그런 게 있기나 할까 싶은 온갖 사이의 색들. 내가 놓고 있는 수가 어떤 그림의 어느 부분인지도 잊고 그저 한 칸 한 칸 메우다 보면 어느 순간 바위가 되고, 소나무가 되고, 구름이 되고, 그러다 금강산이 완성되었을 땐 눈물이 날 뻔했다. 물론 나중엔 헛웃음이 나왔다. 이게 뭐라고 시력을 버려가며 몇 달간 매달렸던가. 눈이 시리고 어깨가 얼얼하고, 이게 뭐라고. 내 그림도 아니고 정선이 그린 ‘금강전도’를 모사하는 거나 다를 바 없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그런데 밤의 카페에선 그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딕 성당을 만드는 데 일조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단지 일당을 받기 위해서 참가했을 수도 있고, 윗사람이 부르니까, 마을 공동의 일이라니까 마지못해 나섰을 수도 있고, 신실한 마음으로 벽돌 한 장 쌓아야지 싶어 함께하는 사람도 있었을 테고. 어떤 의도였든 간에 성당은 완성되었고 어쨌든 그 건물은 눈물 나게 아름답지 않은가. 전에 없던 창작인지 아닌지가 뭐가 그리 중요한가. 내가 만든 거든, 남이 만든 거든, 함께 만든 거든, 어쩌다 만들어진 거든, 시키는 대로 그저 깎고 쌓기만 한 거든, 그 속에서 기도를 드릴 때마다 혹은 그 속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진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십자수는 그저 모방일 뿐이지만 어쨌든 내 손으로 완성되는 작품, 흉내든 뭐든 뭐가 그리 중요한가. 그저 소박하게, 인쇄된 사진과는 다른 크기, 다른 질감의 액자를 만들어 벽에 걸어두려는 마음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잠 못 이루는 새벽 시간이 그저 견뎌내는 시간, 하염없이 흘려보내는 시간, 결국 뒤돌아보면 텅 비어버린 시간이 아니라 무어라도 남긴 시간,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었던 시간으로 기억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겠나.

  다시 미술사 책을 뒤적거렸다. 어떤 그림이면 좋을까. 너무 밝은 그림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꽃이 만발하고 햇빛이 선명하게 내리쬐고 사물의 윤곽이 매끈한 건 내키지 않았다. 인물화도 별로였다. 모나리자나 화가의 자화상처럼 한 땀 한 땀 눈동자의 빛까지 수놓아서 결국 그 인물과 눈이 마주치게 되는 경험은 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얼굴을 마주보는 건 언제나 부담스럽다. 설사 그게 내가 수놓은 것이라 해도, 아니 그래서 더 몸 둘 바를 모르게 될 수도 있다. 가까이에서 보면 그저 실들이 교차되는 점에 불과할 뿐이지만 멀리서 보면 흐릿하게 형체가 보이는 풍경을 찾고 싶었다. 

  결국 마음을 잡아당긴 건 고흐였다. ‘아를 포륌 광장의 밤의 카페테라스’. 처음 그 그림을 보았을 때부터 생각했다. 이거 꼭 이 카페 같네. 아니 그 반대라고 해야 할까. 처음 카페를 발견했을 때부터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영화나 그림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느낌. 아마 나는 고흐의 그림을 어디선가 보고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분명하진 않아도 그 잔상이 남아 있어서 이 카페를 발견하는 순간 안도감을 느끼고 울컥 감동하게 되었는지도. 그러고 보면 ‘아를 라마르틴 광장의 밤 카페’도 꼭 이 카페의 내부 풍경 같다. 당구대도, 바짝 붙어 앉아 있는 남녀도, 술병과 술잔이 놓인 탁자도 없지만 노란 조명이 빛을 밝히고 밝은 갈색 마룻바닥이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당구대 앞에 멍하니 혼자 서있는 남자, 탁자에 엎드려있는 누군가의 모습, 비어있는 의자들, 내가 슬쩍 그 구석 그림자 아래 앉아 있어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혹은 다 괜찮을 것 같은 느낌. 

  영훈에게도 그 그림을 보여주었다. 영훈아, 이 그림 꼭 여기 같지? 영훈은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그거 되게 유명한 그림이잖아. 고흐가 그린 거. 그건 그런데 내 말은 이 그림이 꼭 이 카페 같다고. 영훈은 관심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밤에 문 여는 카페는 뭐 다 그런 분위긴가 보지. 이걸로 십자수 놔줄까? 카페 벽에 걸어둘래? 영훈은 미간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뭐? 무슨, 뭐? 십자수, 한 땀 한 땀 바느질해서 이 그림을 그대로 만드는 거야. 멀리서 보면 그림인데 가까이에서 보면 정성스럽게 수를 놓았다는 걸 알게 되지. 영훈이 픽 웃었다. 그래? 엄청 정성스럽게 쓸데없는 짓을 하는 거구나. 뭐 내키면 하든지. 근데 나한테 선물하진 마라. 내 카페 아니다. 여긴 낮에는 형수 거라고. 

  막상 ‘아를 포륌 광장의 밤의 카페테라스’를 도안 삼아 수를 놓자니 그 장면이 좀 이상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밤의 카페테라스에 앉아 밤의 카페테라스를 수놓다니, 바깥에서 보면 카페 속 내가 만드는 십자수 속에 또 카페가 있는 거다. 그림 속에 들어가 그림을 그리는 것 같은 느낌, 그림 속 또 그림 속 또 그림 속 또 그림, 뭐 그런. 서로 되비추는 수십 개의 거울놀이 같다고나 할까. 무한 반복되는 축소 그림보다는 차라리 더 큰 풍경은 어떨까. 그래, 예를 들면 ‘별이 빛나는 밤’ 같은. 아님 ‘론 강 위로 별이 빛나는 밤’으로 하든지. 차갑고 캄캄한 밤거리를 피해 아늑하고 따뜻한 카페에 앉아 바깥 세상을 수놓는 거다. 노란 조명 아래 천천히 숨을 고른 후 조용히 한 칸씩 채워나가는 밤하늘은 아름답고 평온할 것이다. 까만 하늘 한복판에 별이 반짝 빛나기 시작하고, 목련꽃송이처럼 별이 벌어지고, 노랗고 환하게 피어나고, 가지를 뻗으며 하늘을 가득 채우는 거다. 무겁게 내리누르는 어둠 덩어리도 잘게 부서져서 빛의 분말처럼 흩뿌려지고 잠든 지상의 도시 위를 별들이 떠돌며 어루만진다. 카페 속에 있지만 갇혀 있거나 숨어 있는 게 아니라 밤하늘을, 우주를, 다 괜찮다는 마음으로 떠도는 것처럼. 그래, 별이 빛나는 밤을 수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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