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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븐클라우드 May 08. 2022

밤의 카페테라스 7

7. 밤의 피난처

  날마다 카페에 앉아서 고개를 숙인 채 십자수를 놓다가 잠시 고개를 들어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멍하니 카페의 허공을 바라보다가 창밖의 어둠을 보고, 다시 고개를 숙여 수를 놓는다. 어떤 것도 억지로 하거나 서둘러 할 필요가 없어서 카페에서의 시간은 잠속처럼 편안했다. 밤하늘을 아주 조금씩 채우다 보면 가끔은 조금 졸린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는데 그때야말로 가장 반갑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지금은 잃어버린 잠,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내가 누리고 있는지도 몰랐던 그 달콤한 잠의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래, 이런 비슷한 기분이었던 것 같아. 미끄러지듯 조용히 몸이 따뜻해지는 느낌. 목련꽃 같은 별을 두어 개쯤 수놓았을 때, 잠깐 꾸벅 졸기도 했다. 몇 분 후 눈을 뜨고서야 내가 졸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좋은 꿈을 꾼 것처럼 웃음이 났다. 별의 힘이로군. 별이 피어나면서 잠깐 잠을 보내준 거지. 한 칸 한 칸 하늘을 메워가며, 여기 카페라는 공간, 새벽이라는 시간이 아니었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 유치한 생각도 태연하게 했다. 

  늘 같은 시간에 같은 곳에 있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익숙해져버린 얼굴들도 생겼다. 원래 주위를 잘 살피지 않는 편이라 처음엔 그저 저기 그리고 저기에 사람이 있구나, 그럼 나는 이쪽에 앉아야지 정도로만 생각했다. 문간 테이블에 한두 번 앉고 나서는 으레 그 자리가 내 자리려니 싶어 다른 곳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게 되었고, 십자수에 몰두한 뒤로는 고개를 들어도 카페의 풍경보다는 밤하늘의 별이 잔상으로 아른거렸다. 그래도 두 달, 세 달이 지나면서 어느새 한 명씩 그냥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늘 같은 장소에 걸려있는 그림 앞을 매일 같이 지나다니다 보면 신경 써서 유심히 살피지 않아도 어느새 전체 풍경으로 받아들이게 되듯이, 그냥 카페의 사람들을 전체 풍경으로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문에서 제일 먼 벽에 늘어지듯 기대앉은 청년. 두꺼운 패딩 지퍼를 목 끝까지 올리고 모자를 뒤집어쓴 채 주로 팔짱을 끼고 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데다 모자에 얼굴이 거의 덮여서 눈을 뜨고 있는지 감고 있는지도 알 수 없지만, 어느 날엔 노트북을 펴놓고 열심히 무언가를 쓰기도 하고 때론 책을 뒤적거리기도 하고 영훈과도 가끔 이야기를 나누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며 하소연하기도 했고 둘이서 좋다고 낄낄대기도 했다. 가장 자주 보이는 모습은 역시 모자를 뒤집어쓴 채 고개를 숙이고 벽에 기대어 있는 모습이었고 드물게는 탁자에 엎드려 몇 시간 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전 6시가 되면 쿠션처럼 뒤에 받치고 있던 검은 배낭에서 수건과 비닐봉지를 꺼내 화장실로 가곤 했다. 세수를 했는지 한결 말끔해진 모습으로 목에 수건을 두른 채 나왔고 가끔은 머리를 감았는지 머리카락이 축축한 채 나오기도 했다. 그런 날은 거의 없었지만 갑자기 아침에 커피를 사가려는 손님이 여러 명 들이닥치면 카운터에 가서 영훈을 도와 커피를 내리고 컵홀더를 챙겨주기도 했다. 

  저 사람은 이 근처에 살아? 한번은 청년이 수건을 두르고 화장실에 들어간 사이 영훈에게 물어보았다. 누구? 지금 화장실 들어간 저 사람. 아아, 글쎄, 어디 산다고 해야 하나……. 엄밀하게 말하면 여기 사는 쪽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라나……. 여기 산다고? 이 카페에? 뭐 주로, 밤에는 주로 그렇지. 나랑 다르지만 비슷한 케이스랄까. 영훈은 싱긋 사람 좋게 웃어보였다. 꽤 오랜 단골이라고 했다. 여름부터 왔으니까 거의 반년도 넘었지. 이렇게 매일 같이 오게 될 줄은 아마 쟤도 나도 몰랐을 걸. 학생 같은데 매일 같이 오려면 커피 값도 장난 아니겠는데? 영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커피 값으로 치면 한 달에 10만 원도 넘게 들겠지. 그래도 고시원보다는 싸잖아. 

  근처 대학에 다니는 학생이라고 했다. 처음엔 학교 기숙사에 있기도 하고 근처 고시원에 살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경제적인 부담이 커서 고민이 많았던 모양이었다. 잠만 자는 고시원에 한 달에 수십만 원씩 내기가 버거웠나봐. 알바를 몇 개씩 하다 보니 공부할 시간도 없고, 열심히 돈 벌어서 잠자는 방 구하는 데 다 쓰는 게 속상하기도 하고, 차라리 알바를 덜 하면서 시간을 버는 게 낫겠다는 생각은 하는데 딱히 방법이 없잖아. 그때 우리 카페를 발견한 거지. 커피 값은 비싸지만 그래도 고시원보다는 싸잖아. 영훈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눕지도 못하고 씻기도 힘든데 그렇게 몇 달을 지낼 수 있나? 내가 의아해했더니 영훈이 덧붙였다. 학생이니까 낮에 학교 휴게실에서 잠깐씩 눕기도 하고 요즘엔 학교에 샤워실도 있다던데? 친구들 자취방에 들르기도 하고 몸이 안 좋으면 찜질방에 가기도 하고, 암튼 우리 카페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아. 냉난방 잘 해주고 눈치 안 주고, 별로 상관하지도 않고, 그럭저럭 지내기엔 나쁘지 않다니까. 영훈이 표정이 왠지 뿌듯해하는 것 같아서 일단 맞장구쳐주었다. 그렇겠네. 나름 카페가 좋은 일 하네. 

  화장실 바로 앞의 어두운 자리에도 늘 같은 사람이 앉아 있었다. 아주머니와 할머니의 경계, 어느 날엔 50대처럼 보이고 어느 날엔 60대처럼 보이는 여자였다. 생각해보면 그 어두운 새벽에 나이 든 여자가 혼자 카페에 앉아 있는 것만큼 눈에 띄는 것도 없을 텐데, 이상하게도 그 여자는 존재감이 없었다. 벽 그림자에 바짝 붙어 앉아 있는 데다 옷도 온통 무채색 계열이라 눈을 잡아끌 만한 구석이 없기도 했고, 몇 시간 동안 거의 움직이지도 않고 조그만 소리도 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여자는 늘 무언가를 탁자에 펼쳐놓고 그게 책이든, 잡지든, 생활정보지이든, 신문이든 간에 골똘하게 들여다보았다. 잠깐 턱을 괴고 눈을 감고 있을 때조차 잠들었다기보다는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 언제나 깨어있는 사람, 몸 어딘가에 긴장감을 품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예민하고 조심스럽고 깔끔한 성격의 사람.

  노숙자일 거라는 생각은 한 달쯤 지나서 들었다. 탁자 그림자에 가려서 몰랐는데 발치에 그 여자의 몸집만 한 여행용 가방이 놓여 있었다. 커다란 쿠션처럼 옆에 뭉쳐있는 것도 카디건과 외투, 머플러 두 개 그리고 점퍼였다. 스웨터 위로도 쇄골이 분명하게 두드러지는 걸 보면 원래는 몹시도 마른 사람인 것 같은데 옷을 얼마나 껴입은 건지 몸통이 두둑했다. 어깨와 소매 끝으로 겹쳐 입은 옷자락이 삐져나온 걸 보면 옷감의 종류도, 조직도, 무늬도 다양했다. 무채색이어서 잘 안 보이는 것뿐이지 다섯 겹도 넘게 껴입은 것 같았다. 거기에 옆에 쌓아둔 두툼한 카디건과 외투, 점퍼, 목도리까지 걸치면 뚱뚱한 회색 눈사람처럼 보였다. 몇 달이 지나도록 여자의 옷차림은 바뀌지 않았다. 날이 더 따뜻해지면 한두 벌쯤은 발치 아래의 여행용 가방으로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어느 날에는 커피 잔을 앞에 두고 있었고 또 어느 날에는 주스 잔을 앞에 두고 있었지만 그냥 물컵만 놓고 있는 때가 더 많았다. 날이 밝으면 물컵을 영훈에게 가져다주며 잘 있으라고 인사를 하고 큰 여행용 가방을 끌고 거리 저쪽으로 사라졌다. 저분도 여기 오신 지 오래됐어? 영훈은 문밖을 나서는 여자를 힐끗 보고는 대답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니까 얼마 안 된 건가, 꽤 된 건가. 뭐 하시는 분이야? 그건 모르지. 야, 근데 너 설마 내가 여기 오는 손님들을 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순간 나는 뜨끔했다. 사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청년도 그렇고 여자도 그렇고, 매일 밤 여기를 지키고 있으면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게 많지 않을까 싶었다. 아니야, 알고 싶지 않으면 알게 되지 않아. 그리고 난 그렇게 알고 싶은 게 많이 없어. 나는 카페의 밤 주인일 뿐이지 그 이상은 아니거든. 영훈이 정색했다. 아, 미안. 별생각 없이 그냥 물어봤는데 미안해. 영훈은 곧 표정을 풀고 웃어보였다. 미안하다고까지 하면 내가 좀 그렇고, 그냥 난 딱 카페 주인까지만 하려고. 그것보다 오지랖 넓게 신경 쓰거나 참견하거나 그런 건 내게도 무리고, 내 앞가림도 못하는걸. 그냥 나는 밤을 지키는 카페 주인이야. 그리고 그게 제일 멋있지, 안 그러냐? 멋있긴 무슨, 그러면서도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여자는 처음엔 카페 맞은편 골목에 앉아 있었다고 했다. 그 많은 옷을 다 껴입고, 이불 같은 담요 한 장과 무릎 담요 두 장을 겹쳐 덮고서 여행용 가방에 기대어 카페를 바라보고 있었단다. 어둠 속에 앉아 있으니까 처음엔 몰랐어. 쓰레기 버리러 나갔다가 눈이 마주쳤는데 순간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지를 뻔했다니까. 그러다 날이 추워지면서 차츰 차츰 카페 옆으로 자리를 옮기시더라구. 아무래도 조명도 노랗고 어쨌든 카페 안의 온기가 벽으로도 조금쯤은 전달되겠지. 거리 저쪽보다야 이쪽이 0.1도라도 더 따뜻하지 않을까. 며칠 동안 카페 입구 옆쪽 벽에 붙어 앉아 있는 걸 보니 차마 그대로 모르는 척하기가 좀 그랬어. 손님들이 드나들기에 불편할 수도 있고 우리 카페야 밤에 한산하니까 한 사람쯤 더 들어와도 아무 상관도 없지 뭐. 그래서 들어오시라고 했는데 한참 생각하시더라구. 주머니도 뒤적거리고 주위도 두리번거리고 그렇게 몇 분쯤 있다가 들어와서는 자리 잡은 게 저 자리야. 그리고 굳이 커피를 주문하시더라구. 그러려는 건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주문을 안 받는 건 더 이상할 것 같아서, 뭐 그래서 주문하면 주문하는 대로,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되는 대로 하고 있어. 오오, 좋은 일 하네. 가끔 따뜻한 차도 드리고 그러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니야. 난 카페 주인일 뿐이라고 했잖아. 뜨거운 물까지만, 딱 거기까지. 그걸 넘어서면 카페가 아니지. 영훈이 다시 정색했다. 

  언젠가 여자가 내게 말을 건 적도 있었다. 일렁이는 밤하늘의 무늬를 수놓고 있을 때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뭐지 싶어 고개를 들었더니 여자가 십자수 놓는 걸 유심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왠지 머쓱해서 어색하게 웃어보였더니 여자가 들릴락 말락 하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건 왜 하는 거예요? 뭐라고 대답하기가 참 애매한 질문이었다. 아 그게, 그냥 예쁜 그림이라서, 그냥 하는 거예요. 여자가 슬쩍 옆에 앉으며 물었다. 다 완성하면 어떤 모양이 되는 거예요? 십자수 도안과 함께 고흐의 그림을 보여주었다. 어머, 이게 하늘이었네? 난 바다인 줄 알았어요. 파도치는 바다에 배가 떠있는 건 줄 알았는데 밤하늘 별이었네요? 그러고는 살짝 웃어 보이며 부드럽게 인사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잘 봤어요, 고마워요.

  여자의 태도가 너무나 우아하고 조용해서 내게 관심을 가져준 게 고맙게 느껴질 정도였다. 다시 벽 그림자에 숨어 무언가를 골똘히 바라보는 여자의 모습도 왠지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우스운 생각일 수도 있지만 내가 10년쯤 혹은 20년쯤 지나면 저 여자처럼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저 모습이 나의 미래 모습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집도 없고 가족도 없고, 뭐 그렇게 생각하면 비참할 수도 있겠지만, 쉴 곳도 있고 우아함도 있고 부드러움도 있다고 생각하면 최악은 아닌 상황. 혹시 또 모르지. 자기 집이 버젓이 있는데도 밤이 무서워서, 나와 같은 이유로 잠들지도 어둠을 견디지도 못하고 거리를 헤매는지도. 그러다 여기 피난처를 찾아낸 거지. 해가 뜨면 비로소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거야. 물론 말도 안 되는 얘기라는 걸 나도 잘 알고 있다. 저 큰 여행용 가방에, 몇 달 동안 한 번도 바뀌지 않은 옷차림은 뭐란 말인가. 그래도 모든 게 나빠지기만 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는 희망, 모든 게 다 좋지는 않아도 나쁘지 않은 구석이 하나 정도는 있을 수 있다는 기대를 가져보고 싶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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