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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븐클라우드 May 09. 2022

밤의 카페테라스 8

8. 십자수의 풍경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서 더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이틀에 한 번꼴로 카페를 들르는 경찰관. 별일 없죠? 네, 별일 없죠. 영훈과 인사를 주고받으며 늘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카페 안을 둘러보곤 했다. 한번은 나와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는데 쑥스러워하며 서둘러 시선을 피한 건 그쪽이었다. 구석 자리 청년도 꾸벅 고개를 숙여 보였고 경찰관은 살짝 손을 들어 아는 척을 했다. 영훈이 차라도 한 잔 드시라고 권하면 늘 손사래를 치며 큰 동작으로 거절하고는 수고하라며 카페를 나섰다. 토요일 새벽에는 앳된 얼굴의 소녀들, 어린 남녀 커플이 앉아 있기도 했다. 욕을 섞어가며 누군가의 험담을 하고 얼굴이 빨개진 채 깔깔대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지친 어깨를 서로 기댄 채 잠이 들었다. 날이 밝으면 상대를 깨우고 미적미적 늑장을 부리다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밖으로 나갔다. 

  일주일 정도 나와 거의 같은 시간에 카페에 도착하는 남자도 있었다. 그대로 출근할 예정인지 양복을 갖춰 입고 서류 가방을 든 채 카운터 근처 자리에 앉았다. 회사에서 가져온 업무를 늦은 밤 대신 새벽에 처리하는 건지 노트북을 켜놓고 태블릿에 휴대폰까지 탁자 가득 펼쳐놓고는 다리를 떨며 마우스를 만지작거렸다. 커피 한 잔으로는 부족한지 한 시간 정도 후에 두 번째 커피를 주문했고, 6시가 넘어서는 샌드위치도 주문해 서둘러 삼킨 후 서류와 노트북을 주섬주섬 챙겨 들고 밖으로 나갔다. 처음 며칠은 긴장된 표정으로 손을 비비고 뒷목을 잡고 입술을 만지작거리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졌고, 마지막 날에는 꾸벅꾸벅 삼십 분쯤 졸다가 서둘러 일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개학을 하게 되면서 카페에서 일어나는 시간이 앞당겨졌다. 날이 빨리 밝기도 했고 집에 가서 씻고 출근 준비하려면 아무래도 하염없이 미적댈 수는 없었다. 짐을 챙기고 김이 앉아 있는 쪽을 보면 김 역시 짐을 챙겨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영훈에게 눈인사를 하고 카페를 나와 김에게 이따 학교에서 보자며 손을 흔들고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햇살이 거실 안으로 들어와 환했다. 밤이 지나갔고 겨울도 지나갔다.     

 

  4월이 되면서 ‘별이 빛나는 밤’ 십자수도 절반 가까이 채워졌다. 푸른 밤하늘이 일렁거리고 지평선 가까이 흐르는 빛 부스러기가 마을을 어둡지 않게 밝혀주었다. 그 여자의 말처럼 하늘이라기보다는 바다, 부드럽게 밀려오는 파도 같았다. 그림에서 가장 어두운 부분이 하늘이 아니라 마을이라는 것도 한 땀씩 수놓으며 알게 되었다. 그래도, 아무리 검은 그늘이 집과 나무에 어려 있다 해도 머리 위에 빛이 있다는 건 얼마나 위로가 되는 일인가, 수를 놓으며 생각했다. 와, 많이 완성하셨네요, 어깨 너머로 십자수를 보며 김이 감탄했다. 이제 정말 그림 같아요. 김의 칭찬에 으쓱해져서 십자수를 내밀며 자랑했다. 그죠? 진짜 유화처럼 별과 하늘이 입체감 있죠? 근데 저분은 이 하늘이 바다인 줄 아셨대요. 파도치는 바다에 배가 떠 있는 것 같다고, 그러고 보면 물결 같기도 해요. 그죠? 김은 가만히 십자수를 들여다보더니 한참 만에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게도 보이네요. 별이 불 밝힌 배 같기도 하네요. 이게 배면 좋을 텐데, 잠수함처럼 환하게 바닷속을 떠다니면 더 좋을 텐데. 그리고 김은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가만히 십자수만 만져보다가 돌려주었고 나는 순간 동료들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나 더는 할 말이 없어졌다. 

  김에 대해 듣게 된 건 우연이었다. 동료들끼리 교무실에서 주고받는 말을, 우연히 자리에 앉아 있던 내가 의도치 않게 주워들은 것뿐이었다. 김이 낯을 가린다는 둥, 다른 교사들과 별로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다는 둥, 그럴 법도 하니 어쩌겠냐는 둥, 배려 같기도 하고 이해 같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저 추측일 뿐인 말들이었다. 제자가 거기 다녔다던데, 꽤 아끼던 제자여서 충격을 받았다던데, 하긴 그럴 수밖에 없겠지, 뭐 그런 말들. 아무도 물어보지 못하고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마음으론 수도 없이 궁금해하고 조심스러워했을 질문들. 환하게 떠다니는 잠수함 얘기를 듣는 순간 나는 내 뜻과 상관없이 실수한 것처럼 느껴졌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날 아침 말없이 카페를 나서며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려보였을 뿐이다.

  오후에 복도에서 마주쳤지만 늘 그렇듯 가볍게 목례를 하고 각자 교실로 향했다. 다음날 새벽 카페에서도 달리 할 말은 없었다. 김은 저쪽에, 나는 이쪽에 앉아 평소와 똑같이 바늘을 잡고 한 칸 한 칸 빈 곳을 채워 넣었을 따름이다. 왠지 창밖의 어둠보다 십자수 속 어둠이 더 묵직하게 느껴져 팔이 뻐근해졌다. 날이 밝을 때 함께 일어나 카페 문 앞에서 헤어지는데 기분이 애매했다. 뭔가 사과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긴 하는데 그게 왜 그러냐고 물으면 나도 잘 모르겠고, 상대방이 난처한 표정으로 바라보면 순간 할 말이 다 없어지고 말 것 같았다. 아는 척하기도, 아무 것도 모르는 척 하기도, 그냥 지나쳐버리는 것도 왠지 뻔뻔하게 느껴졌다.

  그해의 기억은 내게도 어제처럼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그날, 우리는 모두 함께 지켜보았다. 커다란 배가, 수백 명이, 바다 밑으로 서서히 가라앉았다. 배의 반절이 물에 잠기고, 삼분의 이가 물에 잠기고, 마침내 부표만 여기가 그 자리라고, 이 아래에 배가, 그 안에 수백 명이 있다고 손짓하는 것처럼 탁한 물결에 흔들리는 것을 며칠에 걸쳐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여러 날 동안 손과 발이 아직 따뜻할 것만 같은 아이들이 눈감은 채 물 위로 인도되었고, 더 많은 아이들이 물 아래에서 춥고 아프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끝끝내 손이 닿지 않은 아이들과 그 곁에 있을 어른들. 계절이 바뀌어 바닷바람에 리본색이 바랠 때까지도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선생들은 말이 없어졌고 학생들은 계속 울기만 했다. 혹시라도 친인척이나 친구, 친구의 친구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교실에서 섣불리 말을 꺼내지 말라고 교감이 당부했다. 어차피 말을 꺼낼 수도 없었다. 교사들에게도 상상 밖의 일이었으니까.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수업을 하고 조종례를 하고 수행평가를 했다. 아이들도 수업 시간에 책을 꺼내놓고 체육 시간엔 운동장을 뛰고 청소 시간엔 빗자루를 들고 왔다. 착실하게 그 일에 집중하는지는 살피지 않았다. 평범하게 하던 대로 하라는 것조차 너무 잔인한 당부처럼 느껴졌다. 평소보다 흡연으로 교무실에 끌려오는 인원이 줄었고 쉬는 시간에 축구공을 들고 운동장으로 뛰어 내려가는 인원도 줄었고 남학생들끼리 싸움질 하는 경우도 눈에 띄지 않았다. 음소거 버튼을 누른 것처럼 학교가 조용하게 느껴지는 순간마저 있었다. 

  몇 년간 어디에서도 나는 침묵했다. 내가 그 교사일 수도 있었고 우리 학생이 그 학생들일 수도 있었고, 내 가족이 승객이었을 수도 있었고, 내 제자가, 친구가 거기 탈 수도 있었다. 누구나 누군가가 될 수 있었다는 걸 너무 잘 알기에 차마 언급할 수 없었다. 그 거대한 비극 앞에서 감히 내 두려움을, 내 불안과 슬픔을 얘기한다는 게 무례하게 느껴졌다. 나는 어쨌든 살아있고 그 사실만으로도 언제나 죄책감이 밀려왔다. 내 책임이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 나는 어른이고 교사이고 내가 그곳에 있었다면 나도 아이들에게 가만히 선실에서 기다리라고 말했을지 모른다. 그러니 나는 책임이 없지 않다. 나도 똑같이 무력하고 비겁한 어른일 뿐이다. 그 아이들을 볼 낯이 없었다.  

   

  김을 차마 마주 보지 못한 채 날마다 똑같이 십자수만 놓았다. 매일같이 고개를 푹 숙인 채 한 칸 한 칸 메워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날이 밝았고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봄날 아침, 집으로 향하는 길에는 부드럽고 따뜻한 바람이 불었다. 어느덧 십자수가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가장 어두운 나무줄기도, 교회와 지붕의 어두운 그늘도 대부분 채워졌다. 검은 실로 마을의 테두리를, 노란 실로 별의 테두리를 따라 그리면 드디어 끝나는 거다. 십자수를 완성하고 나면 그다음엔 무얼 할까. 아니 그 전에, 완성된 십자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래도 어두운 밤에 희미하게나마 빛을 주는 그림인데, 춥고 어두운 마을을 지켜주는 별이 있는 그림인데, 이 풍경이 잠 못 이루는 누군가에겐 의지가 되고 위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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