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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동그란 Jun 29. 2022

서른한 살, 신의 직장이라는 공공기관을 퇴사했습니다.


 '베스킨라빈스 써리원'이라는 술 게임이 있다. 순서대로 1부터 31까지 숫자를 3개까지 말하고 마지막에 31을 말해야 하는 사람이 벌칙을 받는 게임이다.


 31에 걸리면 벌칙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나에게 서른한 살은 인생이라는 게임에 참가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떠안게 된 숫자 같았다. 4대 보험을 상실한 지 3개월째, 나를 소개해야 되는 상황에서 다녔던 직장은 큰 자랑은 아니었지만 누군가 나에게 직업이 뭐냐고 물어봤을 때, "시산하 공공기관 다니고 있어요"라고 말하면 "오, 좋은데 다니시네요"라는 말은 듣게 해 주던 나의 소속이었다.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어머니는 늘 일을 하고 계셨어서 나는 내가 30대에 일을 하지 않을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했다.





 20대 중반엔 미친 듯이 직장에 소속되고 싶어 했는데 30대 초반에 나는 안정감을 주는 직장을 제 발로 뛰쳐나왔다. 우리나라는 특히 그 나이가 되었을 때 해야 되는 것들이 정해져 있는 것 같다. 그 나이가 되면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져야 "왜?"라는 질문을 받지 않는다.


 세상이 달라진건지, 이 시국에 백수인게 어딘가 믿는구석이 있어 보여서인지, 직업을 물어봤을 때 백수라고 말하면 공공기관에 다니고 있다고 할 때보다 더 많은 부러움을 받는다 (?)


 이러한 부러움을 한몸에 받고 있어서 공공기관 '퇴사'라는 선택에 대해서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얼마 전에 전 회사 차장님을 만나서 듣게 된 소식은 괴롭힘 행위를 했던 사람들은 더 당당하고 노조 페이스북에 올라온 객관적인 사건 나열에도 댓글로 거짓된 사실이라고 말하면서 여전히 다수의 비노조원이 소수의 노조원을 공격하고 있었다. 또한 나와 같은 나이였던 남자 대리님이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차장님은 "회사가 점점 망해가고 있어서 잘됐지?"라고 나에게 자조적인 농담을 건네셨는데 솔직히 아주 유쾌하진 않아서 이렇게 말씀드렸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남아있는데 어떻게 마냥 좋겠어요." 이 말은 가식 반, 진심 반이었다. 솔직히 헤어진 구남친이 폭망했으면 싶다가도 그 사람이 키우던 댕댕이는 생각나고 잘 살길 바라는 마음처럼 내가 그만둬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안에서 괴롭지 않고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이 마지막 양심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단 1초도 퇴사한 걸 후회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헤어진 인연에 미련 떨지 않게 해주는 참 정리가 확실한 회사였다.





 결혼식 주례를 해주신 목사님께서 30년간 다른 삶을 살아온 부부가 하나가 되었으니 부부 나이로는 '한 살'이라고 말씀해주신걸 삶에 태도에도 적용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나는 아직 서른 '한 살'일뿐이다. 서른이 주는 책임감도 있지만 '한 살'에 허락된 새로움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는 데는 대략 7년이란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88세까지 산다고 가정했을 때 나에게는 아직도 8번이나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있다.


 아래는 황석영 작가님이 무릎팍도사에 나와서 하신 말씀이다.




 7월부터 실업급여 받는 것을 중단하고 SW강사로 활동하게 되었다. 전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게 된 이 선택을 후회할 수도 있겠지만, 황석영 작가님의 말씀처럼 내가 다른 어떤 일을 더 잘하게 될지 아직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벌칙 같았던 내 나이 서른한 살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벌칙에 걸리면 다음번 게임은 내가 '선'이 되어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고픈 일을 신나게 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태어난, 내가 퇴사를 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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