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y Sep 12. 2022

진짜 금융

성장이 모든 금융을 선으로 이끌어주던 시기는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고, 우리가 금융에 부여한 자율성으로 꺼져가는 성장의 불씨를 되살려보려 했던 노력도 더 이상은 쉽지 않아 보인다. 탈 것이 없으면 아무리 부채질을 해봐야 불씨가 살아나지 않는다. 더 열심히 부채질을 하다 보면 잠시나마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결국 탈 것이 없으면 불은 한 순간에 꺼질 뿐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가 이렇다. 하지만 조건이 어떻고, 환경이 어떻고, 이런 이야기만을 늘어놓으면서 꺼져가는 불씨를 바라만 볼 수는 없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혼란스러울 땐 처음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지금 우리 금융도 그렇다. 처음에는 세상이 빠르게 커져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른 상태로 금융이라는 게 생겨났다. 그리고 우리가 차츰 금융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하면서 금융은 수많은 형태로 분화되었다. 분야도 다양하고, 하나하나마다 수많은 금융회사가 각 영역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그들이 판매하는 상품도 너무나 다양하다. 가능한 모든 것은 금융이라는 딱지를 붙여서 이리저리 판매되고 있다. 개인도 다르지 않다. 이제는 너무도 접하기 쉬워진 금융 환경에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채 노출된 사람들은 금융이 정확히 무엇인지, 어떤 것을 목표로 하고, 어떤 원리에 의해서 돌아가는지 알지 못한 채로 그저 ‘돈이 된다’는 일념 하나만을 바라보고 금융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로 우린 그 누구도, 심지어 전문가라는 사람들조차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몸을 맡기고 있다. 감당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서 투자해야 한다는 격언은 더 위험할수록 좋다는 말로 바뀌었고, 가격을 논할 때 가치는 무관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금융이 실제 세상과 합을 주고받으며 왼발, 오른발 순서를 맞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금융만 따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한쪽 발인 실제 세상은 저 뒤에서 아직 발을 떼지 못하고 있는데 나머지 한쪽 발인 금융은 스스로 한 도움닫기에 힘입어 저만치 앞으로 나갔다. 그러다 보니 똑바로 걷지 못해서 넘어진다.


물론 넘어질 수 있다. 금융이라는 게 변하는 것을 다루는 영역이기 때문에 변하는 것의 힘에 넘어가게 되면 넘어지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자주’ 넘어지고 있다. 왼발과 오른발이 발을 맞춰 걸으려고 하지 않다 보니 균형이 자주 흔들리고, 넘어지는 횟수는 점점 늘어만 가고 있다. 그리고 넘어진 대가는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아온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더 어려운 국가,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더 크게 돌아온다. 부유한 나라가 꺼져가는 불씨를 억지로 살리려고 바람을 불다 보면 일단 뭔가 살아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이 살아나는 것처럼 보이니 뒤따르는 다른 나라도 열심히 부채질을 해서 불씨를 키운다. 그렇게 억지로 키운 불이 흔들거리기 시작하면 먼저 불씨를 키운 나라는 부채질을 멈추는데, 뒤늦게 따라 하고 있던 나라는 열심히 부채질을 할 때 불이 확 꺼져버리는 일을 겪게 된다. 억지로 불을 피운 부유한 나라도 그에 대한 혼란과 대가를 치르겠지만, 그들은 그나마 불을 끄기 전에 좋은 시절을 누리기라도 한다. 그리고 그 충격의 크기도 이제 막 불을 피우려고 하다가 갑자기 불이 꺼져버린 나라와 비교할 수 없다. 소위 말하는 선진국과 신흥국 사이의 관계는 이런 식으로 움직여왔다. 선진국이 주도적으로 하는 양적완화에 신흥국은 뒤늦게 쫓아가 보려 하지만 풀린 돈이 회수될 때 더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사실 성장의 동력을 가지고 있었던 건 신흥국이라 인위적인 개입이 없었다면 자연스럽게 더 성장할 수 있었던 건 그들이었지만 금융 시스템이라는 이름 하에 인위적인 개입으로 선진국의 동력을 꺼트리지 않기 위해 그들의 것을 잃어버리는 모양새가 되었다. 이런 문제는 국가들 사이의 일만은 아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부유한 사람은 경기 불황을 막기 위한 부양책을 활용해서 자산의 가치를 쉽게 늘린다. 여윳돈이 없는 사람들은 그들이 자산을 늘려 가는 모습을 보고 들으며 따라 하고 싶지만 당장은 여윳돈이 없어서 따라 할 수가 없다. 그러다 하나 둘 쉽게 돈을 버는 모습을 보다 보니 억지로라도 돈을 만들어서 투자하기 시작한다. 어렵게 모은 돈이 뒤늦게 타오르는 불씨 안에 던져진다. 아주 잠시나마, 그들도 억지로 피운 불의 따뜻함을 느끼겠지만 결국 뒤늦게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불씨가 꺼질 때의 충격만 고스란히 남을 뿐이다. 지난 몇 년간 성장이 사라져 가는 세상에서 금융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왔던 우리의 시간은 이렇다. 이제는 그 끝이 보인다. 우리는 바꿔야 한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답은 기본에 있다. 금융이 잘 되려면 거기엔 반드시 ‘성장’이 필요하다. 금융은 성장을 일으키고, 성장은 다시 금융의 양분이 되는 선순환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 가격이 뛰는 곳이 아니라 실제로 돈을 벌 수 있는 힘이 있는 곳에 투자해야 한다. 가격이 아닌 가치에 투자하는 관점을 키워야 한다. 앞으로 누가 돈을 벌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는 기술, 사회구조, 환경, 정치, 외교 등 수많은 요인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쉽게 답을 할 수 없기도 하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전에 했던 것처럼 다시 유망한 국가를 찾고, 유망한 산업을 찾고, 그 안에서 유망한 기업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투자한 기업이나 국가가 그 투자에 힘입어 돈을 벌고, 부를 키웠을 때 거기서 우리의 몫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길 기대해야 한다.


또 하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이익이 있는 곳에 리스크가 따른다’는 기본 원리다. 금융이 지속적으로 팽창하던 시기에는 리스크가 실현될 일이 비교적 적었다.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과거 경험에 기반해서 평가된 리스크보다 실제 리스크가 더 작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성장이 둔화된 상태에서는 이런 리스크 감소 현상이 사라지고 심지어 역성장이라도 겪게 되면 과거 경험에 기반해서 평가된 리스크보다 실제 리스크가 더 큰 일도 벌어지게 된다. 이제는 언제 어떻게 리스크가 실현될지 모르기 때문에 내가 이 금융을 하면서 어떤 리스크를 지게 되는지, 그 리스크가 실현되었을 때 얼마나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손실을 겪어도 견뎌낼 수 있을 정도의 자본이 충분한지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 내가 지고 있는 리스크에 비해 성공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적절한 지를 평가하는 일도 물론 중요하다. 잔잔한 물 위에서는 파도를 타는 게 아니라 스스로 노를 저어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 이때 우리가 어디로 노를 저어야 할지 알려주는 나침반이 바로 금융의 기본, ‘성장’과 ‘리스크’다.

이전 21화 금융의 미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