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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분더 Dec 20. 2023

올해의 하이라이트는?

십 년 만에 이루어질 줄이야








2013년 결혼식을 했다. 동시에 둘이 되었고, 둘이 되자마자 다시 혼자이고 싶은 마음이 들던 아이러니 속에서 이듬해 임신을 하고 그다음 해 출산을 했다. 기쁨과 축복이 가득했지만 아이러니한 상황은 또 나타났다임신 중기부터 출산 후 1년까지 우울증을 앓았다. 임신중 정밀초음파에서 아이의 요관이 평균보다 넓어져 있으니 추적관찰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들었고 설상가상으로 나에게도 건강상의 문제가 생겼다. 그후로 출산기간까지 나는 고위험 산모로 분류 되었고 가까운 병원 놔두고 대학병원으로 원정 진료를 다녔다. 갑자기 나는 모든 게 무서워졌다.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어쩌지? 출산하다가 내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불안의 불씨는 점점 커져갔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불타올랐다. 밤이 되면 잠을 못 이룰 정도로 불안증세에 시달렸고 아침이 되면 꺼질듯한 우울감으로 떠오르는 태양을보고도 어두운 땅속으로 들어가 눈을 감고 싶은 날들이 이어졌다. 태어나 처음으로 감당하지 못할 감정의 늪에 빠져버렸다.


유일하게 의지할 곳이라고는 내가 믿던 신앙 그것뿐이었다. 나는 날라리 천주교 신자다. 천주교는 교회법상 비신자와 결혼을 할 경우 남편의 허락과 동의를 구하고 신부님 앞에서 서명과 약속을 해야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 당시 돌파구가 그것뿐이었기에 절실한 마음으로 남편에게 부탁했었다. 하지만 남편은 철 없는 고등학생처럼 대수롭지 않게 반항하며 거절했다. 상태는 짐작조차 못했고 모든걸 가볍게 여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당의 절차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남편에게 마음의 문이 닫혀버린 건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시어머님은 불교신자다. 남편은 살면서 누구보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컸다. 성장과정 동안 어머니의 믿음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쉽게 돌아서지 못했을 것이라는 걸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한다. 또 종교적인 믿음은누구에게나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다른 종교의 절차를 따르는 의식 자체만으로 두려움이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아내가 힘든 상황에 놓여있을 때 고충을 헤아려주지 않았다는 서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신뢰감을 무너뜨렸다. 공감능력은 로봇이고 귀하게 자란 외아들이라지만 어떻게 이 상황에서자신의 처지밖에 헤아릴줄 모르는것인지. 곱씹을수록 배신감이 느껴졌다. 그래도 결혼 후 10년 동안 남편에게 돌아섰던 마음은 애써 모른척하며 살아왔다. 다행히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나 잘 자라고 있으며 나도 건강을 되찾았기 때문에 남편과의 시큰둥한 관계는그냥 그렇게 세월 속에서 묻혀졌다. 또 무엇보다 시부모님이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셨기에 이겨낼 수 있었다.


그렇게 성가정을 이루는 일을 포기한 상태로 살아가고있었지만 그래도 문득 문득 '남편이 함께 성당에 다니게 된다면 앞으로는 그 어떤 역경이 다가와도 이겨낼 수 있을 텐데‘ 하고 바랐다. 절실한 신앙인도 아니고 날라리 신자였지만 삶은 언제나 믿는구석이 필요한법이니까.


그런데 불현듯 어느날 저녁을 먹는데 남편이 그러는 것이다. ‘성당에 다녀봐야겠어’.  그동안 남모르게 남편을 설득해온 시어머님이 계셨던 것이다. 어머님은 나와 종교가 달랐지만 성당에는 호의적이셨고, 긴 세월이 걸렸지만 남편이 나와 같은 믿음을 갖길 바라셨다고 하셨다. 어머님의 권유는 남편의 마음 한구석 자리하고 있는 어머님에 대한 죄송스러움을 누그려뜨렸고 그 후로 우리 가족은 다함께 성당에 다니게 되었다.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던 소원은 그렇게 한 순간 한꺼번에 이루어졌다. 남편은 세례를 받기 위해 장작 6개월에 걸쳐 진행되는 교리수업에 등록했고 23년 12월 16일 드디어 남편과 나는 두 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다시 내가 신앙인이 될 수 있는 *관면혼배식이었다. 십 년 만에 신부님 앞에서 고해성사를 하고 **성체를 모시며 결혼 후 처음으로 다른종류의 평온함을 느꼈다. 뒤 돌아 있던 마음은 어느새 다시 앞을 보고 남편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남편과 나의 결혼생활을 돌이켜보면 좋은날보다 힘든날이 더 많았지만, 그 기간 동안 우리는 ‘나'에서 ‘타인'으로 서로에게 조금씩 시선을 옮겨가는 방법을 연습해왔는지도 모른다. '나'만 알고 살다가 '남'도 알게 되는 고귀한 숙련과정을 거치면서 왜 그토록 힘든 시기였던 과거의 그 때가 아니고 지금 이렇게 소원이 이루어진 것인지 이제야 조금 알 것도 같았다.








*관면혼배 : 신자인 배우자가 비신자 배우자와 결혼을 하지만 신자인 배우자의 신앙을 존중하고 반대하지 않는다는 혼인성사

**성체 : 빵과 포도주를 일컬으며 예수님의 몸을 모신다는 것을 의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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