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인파

by 애프릭

서울은 군대에서 통신병이었다. 자대에 도착해서 보니 모두 전자 장비와 관련이 있었다. 학교를 다니다 왔으면 공대 출신, 사회생활을 하다 온 사람은 동네 전파사에서 순돌이 아빠로 일했었다. 부대를 통틀어 기계와 관련이 없는 사람은 서울 빼고 한 명뿐이다. 참고로 서울의 전공은 생물이다. 통신 벙커 주위를 빽빽이 둘러싼 나무에 대해 장교가 물은 적이 있다. 서울은 전나무라고 대답했다. 그 해 가을에 잣이 열렸다.


전파는 싸인파를 그리며 날아간다. 그러다 싸인파의 주기와 같은 길이의 도체를 만나면 내려앉는다. 통신이 연결되는 것이다. 나름 융통성도 있어서 주기의 1/2, 1/4, 1/8 길이의 도체에도 내려앉는데 안테나의 길이가 짧아질 수 있는 원리다. 미분 적분도 이해해서 동일 면적의 금속판에도 내려앉는다. 휴대폰 안에 네모난 안테나가 들어가는 이유다. 이 원리를 이해한 덕분에 중계소 안테나가 무너지던 날, 서울은 땅바닥에 떨어진 전선줄을 이용해서 훈련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은 회사 구매팀에서 일을 했다. 구매하는 재고의 양도 싸인파를 그렸다. 너무 많다가 점점 줄어들어 0에 이른 후, 재입고의 시기까지 마이너스 상태에 머물다 회복하기를 반복했다. 아무리 신경써도 X축과 평행하게 재고를 유지할 수는 없다. 재고가 많으면 불필요한 제품이 왜 있냐고 관리팀에서 구박을 했다. 재고가 적으면 팔 물건이 없다고 영업팀에서 타박을 했다. 이 생활이 30년째다. 팀장이 돼서는 팀원들에게 재고는 싸인파를 그린다고 강조했다. 높은 재고와 낮은 재고가 끊임없이 반복된다.


싸인 곡선을 잡아당겨 편평하게 만들 수 없다면 이 시기를 현명하게 넘겨야 한다. 돌부처가 되는 것이다. 누가 뭐라 해도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지은 채 담담히 지내야 한다. 어차피 곧 변곡점을 지나 적어지거나 많아질 것이다. 그렇게 서울과 함께 일하는 팀원들은 하나 둘 돌부처가 되어 갔다. 예쁜 돌부처, 성숙한 돌부처, 발랄한 돌부처 등. 돌부처가 늘어날수록 영업팀은 복장이 터졌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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