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의 누구에게 말을 건다면

by 애프릭

서울은 13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했다. 소설 부문에서 2명, 종합 부문에서 8명을 뽑는다. 플랫폼에 등록한 사람이 8만여 명, 활동하는 인원이 2만여 명이라고 하면 경쟁률은 2,000대 1이다. 보통 배우 오디션이 그 정도니 해볼 만하다. 글을 다듬고 어떤 것은 통째로 다시 썼다. 그렇게 공들여 응모를 하고 발표를 기다렸다. 12월 17일, 수상작에 들지 못했다. 많은 위로가 필요하다고 광주와 용인에게 카톡을 보냈다.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서른 초반이다. 해외에 있었고 놀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의 글에 좋아요가 달린 것은 광주를 만나면 서다. 조회수 2, 좋아요 1 로 수 년이 흘렀다. 용인이 태어나면서 은근슬쩍 기대를 걸었으나 머리가 굵어진 그녀는 단호히 거절했다. 본인 얘기가 나온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지난 여름 광주에게 자기 글의 어디가 좋은지를 물었다. 당황한 그녀는 솔직히 읽지 않았다고 말했다.



매 년 연말이면 서울은 부서 직원들과 미팅을 한다. 한 해 동안 수고에 감사하고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올해는 “예전의 누구에게 말을 건다면”이다. 타임머쉰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말을 걸 수 있다. 주저하는 직원들 앞에서 서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예전에 사귀던 사람이 있었는데 연애가 끝나갈 때 쯤, 갑자기 돈을 빌려 달라고 했다. 헤어지는 이유가 자기 쪽이 많기도 하고 가오도 있어 그렇게 했다. 역시나 연은 끝났고 돈은 돌려받지 못했다. 다시 돌아 간다면 처음부터 그럴 작정이었냐고 묻고 싶다고 했다.


뒤이어 스무 살의 자기에게 돌아가 코인을 사라고 외치겠다는 의견이 있었고, 단기 어학 연수를 마치고 돌아가는 자신을 뜯어 말리겠다는 사연을 들을 때는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벽장 뒤의 쿠퍼가 된 것처럼 긴박하고 안타까웠다.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싶다는 말에 순간 정적이 흘렀고, 1등은 부서 막내에게 돌아갔다. 그녀는 해외 봉사 마지막 날, 그만 술에 취해 할머니들이 준비한 송별회에 참석하지 못하고 비행기를 탔다. 들어보니 서울 본인을 포함해 열에 여섯이 시시비비를 가려보겠다고 한다. 지구 전체의 인구로 넓혀 보면 역시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 게 좋겠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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