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수도원 이야기
A 제대 B 교황 좌 C 수도자 기도석 D 설교대 E 아래층 성당과 연결된 출입구 F 위층 성당 정문 1~28번 조토의 성 프란치스코 생애
위층 성당은 아래층 성당 제대 뒤편에 있는 계단을 통해서 올라갈 수도 있지만 위층 성당 정문으로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들어서기 전 아시시 아래로 펼쳐져 있는 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큰 기쁨입니다. 단순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위층 성당 정면에는 고딕의 특징이며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장미 문양의 창문과 함께 요한 묵시록 4장 7절에 언급되는 사복음사가의 상징적 형상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 아래에는 아래층 성당으로 들어가는 문과 같은 형태의 정문이 있습니다. 왼편에는 종탑과 함께 축복의 발코니를 볼 수 있고 이곳에서 성모 승천 대축일에 아래층 성당 마돈나의 경당에 보관하는 성모님의 머릿수건을 신자들에게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아래층 성당은 낮은 천장에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이 혼재하여 무겁고 장엄한 느낌을 준다면, 위층 성당은 천장이 높고 뾰족아치와 다발 기둥 그리고 스테인 그라스가 있어 풍부한 빛을 많이 들어오는 전형적인 이탈리아 고딕 양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아래층 성당을 세상의 삶과 죽음이라고 한다면 위층 성당은 죽음 이후의 하늘나라의 삶인 부활과 하느님의 영광을 보여주며 대비되는 두 개의 세상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하나의 하느님 집, 하나의 성당 안에 공존함으로써 하느님의 시간은 삶과 죽음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지속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위층 성당의 스테인드 그라스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이탈리아의 유리 장인들에 의해 13세기 때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위층 성당에서 가장 중요한 그림은 조토 디 본도네 (Giotto di Bondone, 1266-1337)가 그린 스물여덟 장의 프란치스코의 생애 프레스코화입니다. 라벤나 근처 베스피냐노 (Vespignano)에서 출생한 조토는 당대 최고의 비잔틴 화가 중 한 명인 치마부에 밑에서 그림을 배웠습니다. 천상 세계를 표현하려던 비잔틴과는 달리 현실 세계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조토의 재능은 한 가지 일화를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조토는 스승을 놀리기 위해 식탁에 파리 한 마리를 그렸다고 하는데 스승 치마부에는 진짜 파리인 줄 알고 쫓아내려고 할 정도로 스승을 뛰어넘는 현실적인 그림에 대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조토는 비잔틴 양식의 그림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그림을 처음 시도하고 그린 이탈리아 미술, 더 나아가 르네상스 미술의 창시자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초월주의에서 자연주의로 내려왔고 신중심에서 인간 중심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그림은 실제 사건을 마주하는 느낌을 주면서 정서적으로 그림 속의 인물들과 동질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마력이 있습니다. 그의 그림을 보는 사람을 제삼자로써 그림 밖의 관찰자가 아닌 그림 속 인물 중에 한 명으로 섞여들도록 하였습니다. 이런 조토를 두고 르네상스의 3대 문학가 중에 한 명인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Francesco Petrarca)는 "Pictor nostri evi princeps"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라고 말하였습니다.
조토가 그린 스물여덟 장의 그림은 성 보나벤투라 (Bonaventura, 1217/1221-1274)가 1290년경에 기록한 프란치스코 성인의 대전기 (Legenda Maior)를 기초로 하여 그려진 것입니다. 성인의 전기를 위층 성당의 벽이 다 채워질 정도로 그렸던 가장 큰 이유는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화합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성인의 임종 전후로 해서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수도 생활의 방법에 대한 이견으로 큰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한쪽에서는 인노첸시오 3세 교황 때 구두로 인준받은 엄격한 회규에 따르려던 형제들이 있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오노리오 3세 교황 때 문서로 인준받은 완화된 회규를 따르려던 형제들이 있었습니다. 프란치스코회 이전 수도자들은 수도원 사각 회랑에 있는 규칙의 방에 모여 매일 베네딕도 규칙서를 읽으며 창립자인 베네딕도의 정신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비록 프란치스코는 하늘나라로 올라갔지만 프란치스칸이란 이름으로 모인 모든 형제들에게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랐던 프란치스코의 삶이 자신들이 문서상으로 싸우는 규칙보다 앞서야 한다는 것을 이 그림들로 보여주려 했던 것입니다.
01. 한 단순한 사람이 자신의 망토로 프란치스코를 공경하다.
아시시의 단순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프란치스코를 볼 때마다 그를 통해서 하느님의 위대한 일이 이루어질 것이고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공경받을 사람이라는 것을 예언이라도 하듯 프란치스코 앞에 자기의 망토를 깔아주었습니다. 프란치스코 주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인간적인 토론을 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에게 망토를 깔아준 사람의 눈을 보면 장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자신의 이성으로 판단하여 프란치스코를 알아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에 이끌려 프란치스코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그림에서는 조토의 현실주의적인 성향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 있습니다.
그림 중심에 있는 신전 모습의 건물은 아시시의 중심 광장에 있는 미네르바 신전을 그려놓고 있습니다. 이렇게 실제 있는 건물을 그려 넣음으로써 이 그림을 바라보던 당시 사람들은 내가 알고 있는 건물과 함께 자신들과 같은 옷을 입고 있는 그림 속 사람들과 동질감을 느끼며 그들과 함께 현재의 프란치스코를 마주하게 됩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할 때를 연상시키고 있습니다.
02. 가난한 기사에게 자신의 망토를 주는 프란치스코
아직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프란치스코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측은지심의 본성을 숨길 수는 없었습니다. 하루는 길에서 가난한 기사를 만나게 되었고 그에게 자신의 망토를 주저함 없이 벗어줍니다. 이 모습은 투르의 마르티노 성인이 거지 모습으로 나타나신 예수님에게 자신의 망토를 잘라 주었던 이야기를 연상시켜 주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뒤에 있는 말은 프란치스코의 행동을 공경하듯 머리를 숙이고 있고 배경이 되는 언덕 위에 있는 마을들의 건물들은 비잔틴 양식의 그림에서 볼 수 없었던 3차원적인 공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왼쪽 언덕 위에는 세상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보이고 있고 오른쪽 언덕 위에는 베네딕도 수도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언덕 골짜기의 두 선이 만나는 곳에 프란치스코는 정확히 서 있습니다. 세속을 상징하는 마을과 하느님께 자신을 삶을 봉헌하는 삶을 상징하는 수도원 사이에서 프란치스코는 아직 자신의 삶을 결정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수도원 쪽으로 향해있는 그의 몸과 가난한 사람을 향한 그의 자비로운 행동은 앞으로 프란치스코가 어떤 삶을 살지 암시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마태오 5장 7절).
03. 스폴레토의 건물 안에 꽉 찬 무기들에 대한 꿈
가난한 기사에게 자신의 망토를 주었던 그날 밤 프란치스코는 꿈에서 십자가 표시가 들어간 기사의 갑옷이 가득 찬 궁전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프란치스코가 베푼 애덕의 행동에 대한 하느님의 무한한 보상이었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프란치스코는 기사의 갑옷이 가득한 궁전의 뜻이 십자군의 기사가 되라는 의미로 생각하여 스폴레토 (Spoleto)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꿈을 꾸게 되는데 주님께서는 더 많이 베풀어줄 주인을 섬기지 않고 왜 종에게 자신의 삶을 바치려고 하는지 질문을 하십니다. 그러면서 다시 고향인 아시시로 돌아라 가고 말씀하십니다. 프란치스코는 꿈에서 들었던 음성대로 기사가 되겠다는 욕심을 포기하고 아시시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 꿈은 하느님이 프란치스코를 부르시는 첫 번째의 중요한 순간입니다. 하지만 이 부름은 강요가 아니라 프란치스코의 선택이었습니다. 이 장면에서는 바위에 기사의 칼을 꽂아 넣은 키우스디노의 갈가노 성인이 연상됩니다. 그러기에 궁전 안에 있는 무기들은 사람을 죽이는 칼과 창이 아니라 악으로부터 평화를 지키는 십자 표시가 들어간 방패들이었습니다.
"우리의 전투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권력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날에 그들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그리고 모든 채비를 마치고서 그들에게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한 무장을 갖추십시오. 그리하여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굳건히 서십시오.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위한 준비의 신을 신으십시오. 무엇보다도 믿음의 방패를 잡으십시오." (에페소 6장 12-16절)
04. 부서진 다미아노 경당에서 기도하는 프란치스코
고향으로 돌아온 프란치스코는 아시시 성 밖에 있는 허물어져가던 다미아노 경당에서 하느님의 뜻을 청하며 기도를 하게 됩니다. 제대에는 예수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이콘 형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영혼의 안식을 느끼며 십자가를 응시하였습니다. 그 순간 십자가로부터 울리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프란치스코야, 가서 허물어져가는 나의 집을 고쳐 세워라"
이 말씀을 들은 프란치스코는 문자적으로만 이해를 해서 자신이 기도하고 있는 다미아노 경당을 수리하라는 것으로 이해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허물어져가는 집을 고쳐 세우라는 것은 작은 성전인 개인의 회개와 큰 성전인 교회의 회개를 말씀하시는 것임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회개하라는 이 말씀은 과거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 그림을 보고 있는 지금 그리고 여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기도하는 프란치스코의 허리는 십자가로 기울어져 있고 얼굴은 놀라고 있으며 손은 벌어져있습니다.
05. 아버지에게 받은 모든 것을 포기하는 프란치스코
회유와 질책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미친 프란치스코를 집으로 데리고 올 수 없음을 깨달은 아버지 피에트로 베르나르도네는 사법권을 가지고 있던 아시시의 귀도 주교에게 프란치스코가 자신의 재산을 더 이상 쓰지 못하도록 재판을 청하였습니다. 이상하고 재미있는 이 재판을 보기 위해 아시시의 어린아이들까지 모여들었고 주교좌였던 성모 마리아 대성당 광장 가운데에서 프란치스코는 손과 시선을 하늘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곳에 구름 사이로 나타난 하느님의 손은 지상과 천상이라는 대비되는 상황을 위아래로 보여줍니다. 프란치스코는 하느님의 손을 보았고 육적인 아버지에게 세상과의 결별을 선언합니다.
"이제부터 하늘에 계신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겠습니다".
프란치스코가 벗어준 옷을 받고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격분을 하며 오른손 주먹을 불끈 쥐고 한 발을 내디디며 프란치스코를 한 대 갈 길 기세입니다. 하지만 뒤에 있던 아내이자 프란치스코의 어머니 피카 부인은 그런 남편의 손목을 꽉 잡으며 말리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의 신앙심과 알 몸에 놀란 귀도 주교는 자신의 망토로 프란치스코를 감싸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가 옷을 벗어 알몸이 된 것은 세상을 포기하는 행동이고 그 알몸을 감싸주는 주교의 망토는 프란치스코가 교회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뜻하고 있습니다. 이런 대치되는 상황은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중심으로 왼편은 부자들인 세상 사람들이고 프란치스코를 중심으로 오른쪽 사람들은 교회의 사람들을 그려놓고 있습니다. 당시 건물들의 모습으로 현실감을 더 해주고 있고 하늘에 보이는 하느님의 손은 마치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고 올라오실 때 울려 퍼졌던 말씀처럼 하느님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프란치스코에게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마태오 3장 17절)라는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06.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의 꿈속에 나타난 라테란 성전을 떠받치고 있는 프란치스코
1209년과 1210년 사이 프란치스코는 수도회 인준을 받기 위해 로마로 내려갑니다. 십자군 전쟁을 통해 교황의 힘은 세속의 권력 위에 있던 시절이었고 교회 가난의 중요성을 외쳤던 사람은 프란치스코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교회는 그들을 이단으로 규정을 하며 죽음으로 내몰았고 프란치스코와 형제들 또한 같은 위험에 처할 수 있었습니다. 교황님을 알현하고 자신들의 수도 생활을 적은 새로운 회규에 대한 인준을 청하였지만 몇몇 추기경들은 프란치스코의 생각이 너무나 새롭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결국 교황은 생각을 하기 위해 잠시 당신의 방으로 들어갔고 깜빡 잠이 들면서 꿈을 꾸게 됩니다. 꿈속에서 모든 교회의 어머니이자 머리인 라테란 성전이 기울어져 가는 것을 보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거지 한 명이 나타나 자기의 어깨로 기울어져 가던 라테란 성전을 떠받쳐 세우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얼굴을 자세히 보니 좀 전에 자신을 알현하였던 프란치스코였습니다.
07. 프란치스코 규칙에 대한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의 구두 인준
교황의 축성 없이는 황제가 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던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은 가장 가난하고 가장 겸손한 프란치스코의 새로운 회칙을 받으며 구두로 인준하고 오른손으로 축복을 해주고 있습니다. 사실 수도회 인준은 교황이 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도회 인준 전에 먼저 증명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증명은 성령의 하느님께서 해주시는 것입니다. 창립자의 카리스마로 시작되는 수도회에 얼만큼의 회원이 늘어나는지 그리고 수도회 카리스마를 통해 얼만큼의 성령의 열매가 열려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주는지 모든 것을 오랜 시간을 두고 보게 됩니다. 교회는 새로 시작하려는 수도회 안에서 성령의 하느님께서 활동하시는 것을 보고 인준하는 것이기에 수도회 인준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에게는 그런 시간이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의 순간의 꿈으로 모든 게 증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준서를 써줄 시간도, 필요도 없이 교황은 프란치스코가 가져온 회규를 받으면서 구두로써 인정을 해줍니다. 이럼으로써 베네딕도 수도회가 탄생한 지 700년 만에 새로운 정신의 수도회가 탄생된 것이고 사람들에게 설교할 수 있는 권한과 함께 수도회 생계를 이어가는 방법으로 하느님의 자비와 섭리에 온전히 의탁하는 구걸로 결정을 합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수도회를 탁발 수도회 혹은 설교자 수도회라고 부르게 됩니다. 모두가 강력한 힘만이 교회의 평화를 가져온다고 했지만 프란치스코는 나눔의 밑바탕인 가난과 성서 안에 보여주신 예수님 삶의 재실천만이 진정한 평화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성령의 하느님께서 이것을 인준해 주신 것입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