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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 Vianney May 28. 2022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위층 성당 II)

중세 수도원 이야기

위층 성당 Basilica superiore

위층 성당  평면도
A 제대  B 교황 좌  C 수도자 기도석  D 설교대  E 아래층 성당과 연결된 출입구  F 위층 성당 정문  1~28번 조토의 성 프란치스코 생애


아시시 남쪽 근교의 리보토르토 성당 정면
사진 설명 : 리보토르토 성당 내부에 있는 프란치스코와 초기 형제들이 거처했던 장소인 투구리오 (Tugurio). 성당 정문 흰 돌 위에 '여기가 작은 형제들의 시초 (HIC PRIMORDIA FRATERUM MINORUM)'라는 말처럼 1208년에서 1211년까지 3년 정도 이곳에서 생활하였고, 1209년 프란치스코는 인노첸시오 3세 교황에게 수도회 인준을 받기 위해 리보토르토에서 로마로 출발했다.


08. 리보토르토에 있는 형제들에게 불마차에 탄 모습으로 나타난 프란치스코

이날 프란치스코와 형제들은 서로 다른 장소에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루피노 성당 정원의 움막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고 형제들은 아시시 성 밖의 리보토르토의 투구리오에 있었습니다. 두 장소 간 거리를 보여주기 위해 형제들이 있던 투구리오와 프란치스코가 있던 루피노 성당의 건물은 위아래로 그려 넣어 원근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밤중 프란치스코는 불마차를 타고 리보토르토의 형제들에게 나타납니다. 깨어 있던 형제들은 그것을 보고 서로 이야기하며 하늘의 프란치스코를 가리키고 있고, 그중 한 형제는 잠자고 있던 형제들을 깨우고 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어떤 형제는 눈을 떠 하늘을 바라보고 있고 어떤 형제들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신비적인 프란치스코의 모습 앞에서 다양한 형제들의 행동은 이 사실이 꿈이 아니라 현실적인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두 마리의 말은 힘차게 하늘로 오르려 하고 있고 밝은 빛으로 둘러싸인 프란치스코는 하늘을 바라보며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열왕기에 나오는 엘리아의 승천을 연상시킵니다.


'그들이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걸어가는데, 갑자기 불 병거와 불 말이 나타나서 그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그러자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에 실려 하늘로 올라갔다.' (2열왕기 2장 11절)


형제들 위를 번쩍이며 돌던 불마차는 성령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성령강림과 함께 칠성사 중에 하나인 견진성사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엘리아는 예수님 이전에 승천을 보여주고 있고 프란치스코는 예수님 이후 살아있는 동안에 승천을 보여줍니다. 엘리야가 그랬던 것처럼 프란치스코도 자신의 설교와 예수님을 따르는 완전한 삶으로 세상의 빛이 되었음을 가리킵니다.


09. 천국에서 프란치스코가 앉을 자리를 보여주는 한 천사

어느 날 허름한 한 성당에서 프란치스코는 파치피코 형제와 무릎 꿇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천사가 탈혼 중에 있는 파치피코 형제에게 나타나 천상의 가장 아름다운 자리를 가리키며, 이 자리는 원래 타락한 천사의 것이라고 하며 지금은 겸손한 프란치스코를 위해 비워져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의자는 원래부터 겸손한 자에게 부여된 고귀한 자리였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 있던 천사 또한 원래는 겸손한 자였을 것입니다. 타락한다는 것, 하늘에서 떨어진다는 것은 겸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겸손하지 않다는 것은 교만일 것입니다. 첫 인간 아담과 하와가 하늘에서 떨어진 이유는 바로 하느님처럼 되고 싶어 하는 (참조, 창세기 3장 5절) 교만한 마음이었습니다. 선악과의 이야기는 사람을 시험하는 하느님이 아니라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마리아에게도 하느님은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아들을 잉태할 사실을 먼저 알려주십니다. 처녀가 임신한다는 사실이 이성적으로 맞지는 않지만 마리아는 겸손한 응답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하늘의 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다시 열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장 38절)


교만은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무기가 되지만 겸손은 많은 사람들을 보호하는 방패가 됩니다. 마치 한 사람의 의인이 한 동네를 살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프란치스코의 겸손은 스스로를 위한 것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를 염원하는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10. 아레쪼에서 프란치스코의 기도로 악마를 쫓아냄

한 번은 프란치스코가 아레쪼에 왔을 때 일입니다. 아레쪼시의 사람들은 당파싸움으로 서로를 헐뜯고 갈라질 위험에 처해 있었습니다. 아레쪼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에 있는 두 개의 문은 자기의 생각만 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갈라진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보다 그들의 마음을 둘로 가르고 있는 사탄의 무리를 그 속에서 보았습니다. 사탄이라는 의미는 영적으로 나쁜 존재를 가리키지만 어원적으로 볼 때 '분열시키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자신과 동행했던 단순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실베스트로 형제를 아레쪼로 보내어 하느님의 이름으로 사탄을 쫓아내라고 명령하였고 프란치스코의 말에 절대 신뢰한 실베스트로는 단순하고도 강력하게 하느님과 프란치스코의 이름으로 마을에서 모든 사탄들을 쫓아내 버립니다. 그리고 아레쪼 마을은 다시 평화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림에서 왼쪽에 있는 주교좌성당은 기도하는 집이며 영적인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옆에서 프란치스코는 실베스트로가 사탄을 물리칠 수 있도록 무릎을 꿇고 겸손하게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반대로 오른편 아레쪼 마을은 혼란스러운 세속을 상징합니다.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은 자신의 구원을 위해 성스러운 교회에만 머무는 사람들이 아니라 세속 안으로 들어가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고 평화를 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장면에서 연상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복음을 선포하라고 보내시기 전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는 권한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주게 하셨다.' (마태오 10장 1절)


프란치스코 또한 형제들을 둘씩 짝지어 선교를 보낸 후 항상 뒤에서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11. 술탄 앞에서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는 프란치스코

프란치스코는 형제들만 선교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선교하기 위해 일루미나토 형제와 함께 5차 십자군을 따라 이집트까지 가게 됩니다. 이 당시 십자군은 다미에타의 나일강이 범람하며 홍수가 나고 역병이 돌면서 그리고 양쪽 지휘자의 능력 부족으로 교착 상태에 빠진 상태였습니다. 서른일곱의 프란치스코는 십자군 교황 대리 펠라조의 특사로 서른아홉의 이슬람 술탄 알 카밀을 만나 평화의 필요성을 이야기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술탄과 그 백성들이 개종할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말과 신앙을 증명하기 위해 불을 피워 이슬람의 제사장과 함께 불속으로 뛰어들겠다고 합니다.


물론 이것은 하느님을 시험하는 행위는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불에 타 죽으면 자신의 죄로 벌어지는 일이고 자신이 살아있으면 모든 이의 주님이신 하느님의 힘이니 개종의 이유가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의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림 왼편의 제사장들은 두려운 얼굴을 하며 불을 등진 채 도망을 쳐버렸고 술탄 알 가밀은 손을 뻗어 프란치스코가 불속으로 뛰어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프란치스코가 죽든 살든 자기에게 유리할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술탄 알 카밀을 프란치스코의 용기에 보물을 주려 하였지만 모든 사람의 구원을 갈망하고 청빈 서약을 한 프란치스코는 먼지인 양 재물을 무시하였고, 그것을 본 알 카밀은 프란치스코에게 더 큰 존경심을 가지게 됩니다. 비록 알 카밀이 개종은 하지 않았지만 프란치스코와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자신의 땅에서 생활하는 것을 허락하였고 프란치스칸은 지금도 예루살렘 성지를 지키며 하느님의 평화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12. 탈혼 상태에서 주님을 만나는 프란치스코

성 보나벤투라의 대전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습니다.


"그가 밤에 두 손을 십자가 모양으로 뻗치고 기도할 때 가끔 땅에서 들어 올려져 빛나는 구름으로 둘러싸인 것을 볼 수 있었다. 그의 몸을 둘러싼 광채는 그의 영혼에 넘쳐흐르는 기적적인 빛의 표시였다. 그는 혼자서 기도하는 동안 거의 완전히 변모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얼마 동안을 보내다 다시 형제들과 합할 때면 그는 다른 이들과 똑같아 보이도록 이전보다 더욱 조심하곤 했다."


그림 오른쪽 아래 나무가 심어져 있는 산은 예수님께서 변모하셨던 타볼산을 상징하거나 프란치스코가 오상을 받은 라베르나 산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서 영광스럽게 변모하신 것처럼 프란치스코도 예수님의 축복 속에 빛나는 모습을 형제들에게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그림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프란치스코의 설교는 세상의 지식에서 온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인 지혜에서 온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더 중요한 것은 지식의 충족이 아니라 주님을 만나는 기도의 충만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레쵸에 있는 프란치스코가 첫 구유 미사를 드린 장소

13. 그레쵸에서 첫 번째 구유 봉헌 미사를 드리는 프란치스코

1220년 예루살렘에서 돌아온 프란치스코에게 그레쵸라는 도시의 단순함과 풍경은 또 다른 예루살렘처럼 느껴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군이란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기 위해 가는 예루살렘보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게 해주는 그레쵸도 거룩한 땅의 일부분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1223년 성탄이 가까워질 무렵 아기 예수님을 뵙고자 하는 열망이 프란치스코의 마음속에서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당시 그레쵸와 가까운 리에티에 머물고 있던 오노리오 3세 교황에게 허락을 받아 프란치스코는 이 세상의 첫 구유를 만들게 됩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고 기쁨에 넘쳐 그레쵸의 동굴 주변으로 모여들었고 부제복을 입은 프란치스코는 목각으로 만들어진 아기 예수님을 구유에 모십니다. 제대 위에서 드리는 미사 중에 이루어지는 성체 변화의 거룩한 순간 목각의 아기 예수님은 눈을 뜨시고 프란치스코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구유 옆에 있는 소와 당나귀처럼 마을 사람들에게도 영적인 눈이 열려 아기 예수님이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당나귀도 제 주인이 놓아준 구유를 알건만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 (이사야 1장 3절)


그레쵸는 예수님이 보여준 육화의 신비로 예루살렘과 쌍둥이 도시로 불리게 됩니다.


오른쪽 사진 : 라베르나를 오르는 길

14. 샘의 기적을 보여주는 프란치스코

'이제 내가 저기 호렙의 바위 위에서 네 앞에 서 있겠다. 네가 그 바위를 치면 그곳에서 물이 터져 나와, 백성이 그것을 마시게 될 것이다.' (탈출기 17장 6절)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요한 4장 13-14절)


한 여름 프란치스코가 타고 있는 나귀를 끌고 해발 1200 미터 되는 라베르나 산을 동행하던 주인은 심한 갈증 속에 프란치스코에게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합니다. 프란치스코는 나귀에서 내려 무릎을 꿇고 누군가와 이야기하듯이 기도하였고 자비하신 주님께서 물이 솟아나게 한 바위 사이를 가리키며 갈증을 없앨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비를 베푸신 구약의 하느님을 연상시키며 영원한 생명을 주는 신약의 예수님이 주시는 물 즉, 물을 통한 세례성사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아시시 에레모 은수처에 있는 프란치스코가 살아있던 시절의 나무

15. 새들에게 설교하는 프란치스코

프란치스코는 페루자 근처에 있는 베바냐 (Bevagna)에서 새들에게 설교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새들에 대해 하느님 섭리에 온전하게 순응하며 세상 물질이나 걱정 없이 사는 동물로 성서에 등장을 시키십니다.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마태오 6장 26절)


프란치스코는 새들에게 이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더 해주며 하느님의 창조물로써 온전하게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것이 얼마나 더 중요한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른손을 들어 다시 새들에게 축복을 해주고 새들은 그 자리를 떠나 날아갑니다. 하느님 섭리에 순명하는 마음은 샌들을 신고 있는 형제 옆에 서있는 프란치스코의 맨발에서 다시 한번 더 강조가 됩니다. 형제들이 거부한 프란치스코의 첫 번째 잃어버린 회규는 엄격한 수도 생활이 쓰여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엄격함이 힘들다고 느껴지는 것은 하느님 섭리에 자신의 삶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는 수도 생활의 중심은 엄격함이 아니라 새들처럼 하느님께 온전한 의탁이라고 우리에게 다시 말하고 있습니다.


16. 한 기사의 죽음을 예언하는 프란치스코

프란치스코가 첼라노에 설교를 하러 갔을 때 그 마을에 살던 한 기사는 프란치스코의 명성을 듣고 자신의 집으로 식사를 함께하기 위해 초대를 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초대에 응하면서 자신을 초대한 기사와 친하지 않은 한 사제와 함께 갔습니다. 식사 전 기도를 한 후 프란치스코는 기사를 불러 자신의 초대에 감사를 하며 오늘 저녁식사는 이곳이 아니라 다른 세상에서 할 것이라고 예언을 합니다. 그러면서 하느님께서 자기와 같이 가난한 사람을 따듯하게 환대해 준 것에 대한 은혜를 베푸는 것이니 참된 통회와 모든 죄를 고백하라고 충고를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사제가 아니기 때문에 당신과는 친하지는 않지만 거룩한 성사의 대리자인 사제와 함께 온 이유를 말하였습니다. 기사는 프란치스코의 조언을 받아들여 옆에 있던 사제에게 자신의 모든 죄를 깊은 참회와 함께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식사가 시작되자 기사는 프란치스코의 말대로 갑자기 운명을 하였습니다.


그림 속의 모습은 기사의 집이라고 하지만 왼편 사제와 프란치스코가 있는 식탁은 제대를 연상시키고 오른편 군중들은 미사에 참여한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식탁 위에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물고기와 성체성사의 재료인 빵과 포도주가 있습니다. 고백성사를 주었던 욕심 많아 보이는 사제는 기사가 죽어 주위 사람들이 놀라고 슬퍼하지만 식욕에 빠진 듯 이미 자리에 앉아 칼까지 들고 있습니다. 사제가 죄 중에 있든 없든, 욕심이 많던 적던 성사는 사제의 성덕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고 성사 그 자체로 효과가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런 거룩한 성사를 행하는 사제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장면에서는 성체성사, 고백성사, 병자성사가 함께 일어났습니다. 거짓 예언자는 자신을 드러내지만 하느님의 사람은 하느님의 은총을 교회의 성사로 완성합니다.


17. 오노리오 3세 교황 앞에서 설교하는 프란치스코

프란치스코는 학식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무식한 사람이라는 표현이 더 맞는 표현일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수도회 안에서 설교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머리가 좋았던 형제들은 교육기관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였고 그러기 위해서는 함께 모여사는 수도원을 세워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프란체스코에게 설교를 하기 위해 중요했던 것은 학교를 통해 세상의 것을 배우는 지식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 은총을 받는 하늘나라의 지혜였습니다.


이집트의 왕 파라오에게 가서 무엇을 해야 할지 두려워하는 모세에게 하느님께서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탈출기 3장 12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프란치스코 옆에는 성령의 하느님이 함께하시어 준비한 설교와는 상관없이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동과 함께 회개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의 이야기 앞에서 지식이 높다는 오노리오 3세 교황과 고위 성직자들의 집중하는 모습은 성전에서 율법교사들과 이야기를 나누시는 어린 예수님의 모습이 겹쳐져 보입니다.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그는 율법교사들 가운데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그의 말을 듣는 이들은 모두 그의 슬기로운 답변에 경탄하였다.' (루카 2장 46-47절)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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