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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 Vianney Jun 06. 2022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위층 성당 Ⅳ)

중세 수도원 이야기

24. 프란치스코의 시성

성인께서 임종하신 지 채 2년도 지나지 않은 1228년 7월 16일 그레고리오 9세 교황이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던 조르조 (Giorgio) 성당에서 많은 성직자와 신자들과 함께 시성식을 하는 장면입니다. 죽은 후 순교자가 아닌 이상 기적이 있어야만 복자가 되고 성인품에 오를 수 있지만 성 프란치스코는 살아생전에 이미 많은 기적을 보여주며 하느님의 사람임을 증명하였기에 누구보다도 빠르게 성인품에 오르셨습니다. 물론 1231년에 선종한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는 이례적으로 같은 교황으로부터 1년도 지나지 않은 11개월 만에 성인품에 오르면서 가장 빨리 성인품에 오른 사람으로 기록됐습니다.


25. 오상의 진실을 그레고리오 9세 교황 꿈에서 확실히 함

성인이 선종하신 후 많은 사람들이 프란치스코의 오상을 믿었지만 미사 중에 빵의 성변화를 의심하듯 곳곳에서 의심의 소리는 계속되었습니다. 심지어 프란치스코의 열렬한 후원자이고 시성식까지 주례했었던 그레고리오 9세 교황에게도 이 의심은 가시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성 프란치스코가 그의 꿈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오른팔로 피가 흐르는 옆구리 상처를 보여주며 왼팔로는 교황의 팔을 들어 유리잔을 가져와 흐르는 피를 담아 믿으라고 하였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후 교황은 누구보다도 성 프란치스코의 오상을 확신하였으며 교회에서는 처음 공식적으로 예수님 오상의 상처임을 선포하게 됩니다.


26. 환자를 치유하기 위해 나타난 프란치스코

28편의 그림 중 지금부터 등장하는 마지막 세 편은 천상에 있는 성 프란치스코가 세상 사람들의 일에 관계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그림은 하나의 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침대에는 온몸에 상처를 입고 붕대를 감고 있는 환자가 있고 그 옆에는 성 프란치스코와 두 천사가 있습니다. 왼편에는 환자의 가족과 함께 머리에 초록색 모자를 쓰고 있는 의사가 등을 돌려 집 밖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의사가 환자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치료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뜻하고 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 옆에 두 천사가 있다는 것은 성인께서 이 세상이 아닌 저세상에서 왔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성 프란치스코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환자는 성 프란치스코를 매우 존경하던 요한이라는 사람이었고 의사가 나간 후 성인에게 의지하며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요한은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성인과 같은 수도복을 입은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았고 그는 자신이 프란치스코라고 말하며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하느님께서 치유의 은총을 주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상처가 있는 곳의 붕대를 풀고 약을 바르듯이 성인의 거룩한 오상의 손이 닿는 순간 요한은 자신의 몸이 새로워지듯 고통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움을 얻었습니다.


27. 죄의 상태에서 죽은 여자의 부활

이탈리아 남부 캄파냐 (Campagna) 지방의 마라노 산 근처에서 성인을 존경하며 닮으려고 했던 한 여인이 임종을 하였습니다. 가족들과 본당 신부는 그녀의 시신 옆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가 죽은 여인이 벌떡 일어나 앉아 옆에 있던 신부님을 불러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죽기 전 알고 있던 큰 죄를 고백하지 않아 지옥으로 갈 처지였는데,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로 다시 깨어나 고백성사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을 허락받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통회한 여인은 신부에게 총고백을 하였고 그녀의 영혼을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했던 사탄은 천사에게서 쫓겨나고 있습니다. 그림의 왼편 위에 무릎을 꿇고 여인이 다시 깨어날 수 있도록 예수님에게 전구를 하고 있는 성 프란치스코가 보입니다. 육신에 대한 치유는 하느님의 은총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지만 천국을 가기 위한 영혼의 치유는 온전한 성찰과 반성을 통한 회개와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고백성사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28. 회개한 죄수의 해방

그레고리오 9세 교황 시절 이단을 믿고 있던 알리페의 베드로라는 사람이 티볼리에 있는 한 감옥소에 쇠사슬에 묶여 갇혀있었습니다. 감옥소에서 베드로는 자신이 믿는 이단이 그릇된 것임을 알고 마음으로 회개하였고 성 프란치스코에게 자신을 불쌍히 여기고 도와달라고 간곡히 기도를 하였습니다. 성 프란치스코 축일 저녁 베드로가 묶여있던 감옥에 성인이 나타났고 그의 손과 발에 묶여있는 수갑과 쇠사슬을 풀어주었습니다. 티볼리의 주교는 사제들과 함께 와 간수의 증언과 베드로가 풀린 쇠사슬을 들어 성인이 어떻게 자기에게 기적을 보여주었는지를 이야기하며 자신의 회개 사실을 고하였습니다. 이 모든 사실이 성인을 통해 일어난 사실임을 알고 주교는 무릎을 꿇고 감사 기도를 드리고 있고 프란치스코 성인은 자신이 있던 하늘나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이 천사를 보내 베드로를 감옥에서 나올 수 있는 기적을 보여주신 것처럼 프란치스코를 보내 죄수 베드로를 육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이단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사냥꾼들은 원숭이를 잡을 때 한 가지만 생각하는 습성을 이용한다고 합니다. 나무에 원숭이 손이 들어갈만한 구멍을 만들어 그 안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과일을 놓아둡니다. 원숭이는 과일을 꺼내기 위해 손을 넣어 과일을 잡습니다. 하지만 원숭이는 손을 뺄 수가 없습니다. 구멍에서 손을 빼내기 위해서는 맨손이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사냥꾼이 다가와도 원숭이는 과일을 놓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과일에 대한 욕심 때문에 자유와 생명까지 잃을 수 있는데도 끝내는 놓지를 못합니다.


신앙인으로서 사는 동안 우리도 이런 덫에 종종 걸려들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놓으면 되는데 오히려 더 잡으려고 합니다. 더 가지게 되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만 오히려 더 큰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놓는다는 단순함을 버리고 더 잡는다는 복잡함을 선택합니다. 우리의 손은 잡을 수 있는 양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청하면 주실 것이라는 말만 생각하고 매일매일 '주소서'라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주님은 청하는 대로 주십니다. 다만 우리에게는 하늘에서 오는 은총의 선물을 잡을 손이 없는 것입니다.


채우려면 먼저 비워져 있어야 합니다. 받으려면 먼저 버려야 합니다. 더 좋은 것을 받기 위해 내가 가진 것을 먼저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 진리를 보여준 분이 성 프란치스코입니다. 성인은 가난하실 때 풍성해졌고 겸손해질 때 들어 올려졌습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가난은 부족함이 아니라 나눔이었습니다. 기쁨을 나누면 두 배가 된다는 말처럼 물질도 나누면 두 배가 되는 기적을 주님께서는 빵의 기적으로 이미 보여주셨습니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말은 그가 가진 재물 때문이 아니라 자기의 손에 쥔 것을 놓지 못하는 그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프란치스코도 아버지처럼 부자로 살 수 있었습니다. 부자로 살면서 나눔의 삶을 살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재물의 종으로 살지 않고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기 위해서 모든 것을 놓아버렸습니다. 우리는 놓는 순간의 두려움을 느낍니다. 두려움을 이기고 놓을 수 있는 용기가 바로 믿음입니다. 어쩌면 이 믿음은 원숭이가 바나나를 놓아버리는 것처럼 단순할 수도 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비워진 손으로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랑과 은총을 차고 넘치게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것마저도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구원만을 위해서 이 은총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형제들과 나누었고 세상 사람들과 나누었습니다. 심지어 선종하신 이후에는 자신이 받은 은총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와서 나누었습니다. 프란치스코의 유일한 희망은 주님이 원하신 것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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