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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 Vianney Jun 12. 2022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I

성 프란치스코의 시작과 끝 | 중세 수도원 이야기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Basilica Santa Maria degli Angeli) (C) 2022. Roma Vianney all rights reserved.


성 프란치스코의 시작과 끝


자동차로 아시시 가까이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대성당입니다. 그리고 성당 위에 모셔진 황금빛의 약 8미터의 성모 마리아 상으로 이 성당이 마리아에게 봉헌된 성당임을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이름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이 성당은 천사들과 관계된 성당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오상을 받으셨던 라베르나에서 기도 중에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발현하신 성모님을 보았고, 그 자리에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라는 기념 성당을 봉헌하였습니다. 이 성당은 바로 라베르나 산에서 있었던 이 사건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에게 성모님은 늘 든든한 보호자이셨고, 프란치스칸들이 미국으로 선교를 갔을 때에도 이 성모님을 기억하며 지은 도시 이름이 로스앤젤레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장소에서의 주인공은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 아니라 성당 내부에 있는 포르치운콜라 (Porziuncola)라는 경당과 성인께서 선종하신 장소입니다. 포르치운콜라 경당은 프란치스코회의 시작으로써 성 프란치스코와 초기 형제들이 1209년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의 수도회 인준 후 공식적인 가난의 수도 생활을 시작한 곳이고, 예수님께서 성모님과 함께 발현하시어 회개한 사람들의 완전한 용서 (Indungenza)를 약속해 주신 거룩한 장소입니다. 성인께서 선종하신 지나감 (Transito)의 경당은 이 세상에서 삶을 마치시고 하늘나라의 삶을 시작하신 곳입니다. 지상에서 예수님을 따른 프란치스코의 처음과 끝이 있는 곳이고 천상에서의 영원함이 시작된 곳입니다. 또한 포르치운콜라는 글라라 성녀가 1212년 집에서 도망쳐 머리카락을 자르고 수도 서원을 함으로써 글라라회의 씨앗이 뿌려진 곳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거룩한 장소들을 보호하기 위함이 대성당 건축의 첫 번째 목적이었고 여기에 덧붙여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많은 순례자들을 맞이하기 위해 비오 5세 (1566-1572) 교황의 원의에 따라 대성당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건축가 갈레아초 알레시 (Galeazzo Alessi, 1512-1572)에 의해 시작되어 100년 넘게 (1569-1670) 공사를 하였고 처음 시작한 이 건축가의 뜻대로 순례자들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웅장하게 만들었지만 성 프란치스코의 단순함과 가난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화려함의 대명사인 바로크 양식을 가지고 있지만 조각과 장식을 절제한 특별한 성당입니다.


(C) 2022. Roma Vianney all rights reserved.

라틴 십자가의 평면도를 가지고 있는 이 성당은 길이 126미터 넓이 65미터의 크기이고 중앙에 2열 기둥으로 나누어진 세 개의 회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당 내부로 들어가면 대성당의 주인공인 포르치운콜라가 대성당 가장 중심인 쿠폴라 (돔) 아래에서 특별한 보석처럼 하지만 겸손한 여인처럼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포르치운콜라 (Porziuncola)

포르치운콜라 입구에서 바라본 내부 (C) 2022. Roma Vianney all rights reserved.
입구 바닥에는 라틴말로 '여기는 거룩한 장소이다'라고 적혀있다. (C) 2022. Roma Vianney all rights reserved.

이 경당은 프란치스코와 너무 잘 어울리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탈리아 말로 1인분의 파스타를 포르치오네 (porzione)라고 하며 농사라는 말은 아그리콜라 (agricola)라고 하는데, 이 두 단어를 합성해서 만든 말이 이 경당의 이름인 포르치운콜라입니다. 즉, 1인분의 파스타를 만들 수 있는 밀이 심어져 있는 땅이라고 할 수 있으니 아주 작은 장소를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6세기경부터 있었던 이 경당은 수바시오 산의 베네딕도 수도원 소유였고 수도원 농장에서 일하던 수사들이나 사람들이 기도 시간에 사용하였던 곳입니다. 프란치스코와 그의 형제들이 수도 생활을 시작한다고 하자 무상으로 주려고 하였으나 성인은 작은 이 경당마저 소유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베네딕도 수도원에 1년에 한 번 물고기 한 바구니의 세를 내며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경당 정면에는 세 번의 시기에 걸쳐 복원된 프레스코화가 있었으나 지금의 것은 1829년 나자레노 페데리코 오버벡이 다시 그렸고, 성모님의 중재로 포르치운콜라의 완전한 용서를 예수님으로 받는 프란치스코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1206년 다미아노 성당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들은 프란치스코는 다미아노와 베드로 성당 수리를 한 후 1208년에 이곳 포르치운콜라에 와서 수리한 세 번째 성당입니다. 그래서 내부의 돌들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손길을 느끼려 했던 많은 순례자들의 손길이 더해지면서 거친 돌은 사라지고 하느님의 사랑처럼 부드럽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1209년 마티아 사도 축일에 들은 복음 말씀 (루가 9,1-6)은 자신의 소명이 무엇인지를 깨달으며 이때부터 설교를 하기 시작하였고 더 많은 형제들을 받아들이며 세상 곳곳에 파견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형제들은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 돗자리 총회를 통해 자신들이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포르치운콜라는 프란치스코 형제들에게 영적인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마라."... 제자들은 떠나가서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 주었다.
루카 복음 9장 3절, 6절


(C) 2022. Roma Vianney all rights reserved.
그림 설명 : 1393 비테르보의 사제 일아리오 (Ilario) 그린 제단화  하단부 중심에는 주님 탄생을 예고하는 가브리엘 천사와 성모가 있고,  주위로  '아시시의 용서' 다섯 장의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오른편 아래 유혹을 이기기 위해 가시밭에 몸을 던진 프란치스코,  위에  천사와 함께 포르치운콜라로 가는 프란치스코, 상단부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발현하신 예수님과 성모님께 전대사를 청하는 프란치스코, 왼편 중간 호노리우스 3 교황에게 인준을 청하는 프란치스코, 왼편 아래 예수님과 교회로부터 인준받은  위대한 선물을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프란치스코.


1216년 성인께서 포르치운콜라에서 멀지 않은 장소에서 사탄의 유혹을 받게 되고 자신의 벗은 몸을 던져 장미의 가시가 사라지는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천사들의 도움으로 다시 이곳 포르치운콜라에 온 프란치스코는 기도 중 환시 속에 예수님과 성모님을 보게 됩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성모님을 통하여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의 전대사를 청하였고 예수님은 당신의 어머니의 청을 들어 프란치스코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프란치스코가 예수님으로부터 약속받은 이 전대사는 그전까지 있었던 교회의 전대사하고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 당시 전대사를 받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이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순례한다든가 십자군 전쟁에 참전해야 하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혹시 이런 것을 직접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십자군 전쟁에 돈이나 땅을 기부한다든가 아니면 자신의 이름으로 타인을 순례를 보내는 등 뭔가의 대가를 치러야 받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당시의 전대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조건적이고 돈이 필요한 전대사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인은 성모님의 중재를 통해 예수님께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전대사를 청하였고, 주님이 주신 '아씨시의 용서'는 은총이라는 말뜻처럼 하느님이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대가 없는 선물 즉, 공짜였습니다.


여기서 프란치스코 성인의 위대함이 나타납니다. 정확히 300년 후인 1517년에 마르틴 루터도 프란치스코처럼 돈을 치러야 하는 교회의 전대사를 반박하였고 교회를 비판하였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교회는 분열이라는 두 갈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나 마르틴 루터 모두 교회의 세속화를 경고하며 개혁을 외쳤습니다. 하지만 성인은 사람의 개혁 즉 회개를 외쳤고 마르틴 루터는 교회의 개혁 즉,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대가로 이루어지는 전대사를 둘 다 배격하였지만 프란치스코 성인은 전대사가 주님께서 교회를 통해 주시는 사랑이라고 생각하였고, 마르틴 루터는 교회가 만들어낸 장사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한 사람은 교회를 어머니라고 생각하여 순명하며 가난이 하느님의 벌이 아니라 하느님의 본성인 사랑을 찾는 최고의 선이라는 것을 보여준 반면, 또 다른 한 사람은 하느님 없는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에 대한 불만으로 하느님을 가르고 사람을 가르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러기에 마르틴 루터의 개혁은 고쳐 세운 것이 아니라 분열이었습니다. 진정한 종교개혁이 무엇이고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프란치스코 성인은 잘 보여주셨습니다.


성인이 이곳을 사랑했다는 증거는 이 장소를 죽음의 자매를 만나는 장소로 선택한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1226년 10월 3일 프란치스코 성인은 포르치운콜라 뒤편에 있던 환자들을 위한 장소에서 선종을 하십니다.





대사(大赦, Indulgentia)에 대하여

대사는 죄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죄로 인해 받아야 한 벌을 없애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신교에서 말하는 면죄부라는 말은 올바른 표현 방법이 아닙니다. 가톨릭교회 안에서 죄를 용서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고백성사를 통해서입니다. 물론 고백성사를 통해 죄는 없어지게 되지만 그에 합당한 벌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마치 사회에서 죄를 지으면 재판을 통해 합당한 형벌을 치러야만 용서를 받는 것처럼 고백성사도 보속이라는 것으로 벌을 치러야만 완전한 용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죄, 회개하지 않은 죄 등은 그대로 남아 대가를 치러야 하는 잠벌로 계속해서 남아있게 되고 이것은 죽어 연옥에 가서 치러야 합니다. 연옥에 가서 받아야 할 벌을 살아있을 때 성인들의 공로나 교회의 믿음으로 대신해서 사해주는 것이 대사입니다. 그러므로 대사는 하느님이 주시는 사랑이고 무한한 자비의 결과물이지 물질적 조건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 오래된 전통이었고 1300년부터는 보니파시오 8세 교황에 의해 제도적으로 성년 (거룩한 해)을 정하여 지금은 25년마다 받는 정기 성년과 특별한 시기를 정하여 (최근에 있었던 바오로 탄생 2000년 기념하는 해와 하느님 자비의 해) 선포하는 특별 성년이 있습니다. 또한 대사에는 모든 벌을 용서해 주는 전대사(全大赦)와 일부를 용서해 주는 한대사(限大赦)로 나누어집니다. 전대사의 조건은 일반적으로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와 사도신경 바치기. 고백성사. 미사를 통한 성체성사. 교황의 지향 기도 함께하기. 정해진 장소 순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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