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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 Vianney Jan 07. 2023

몬테 올리베토 마조레 대수도원VII

중세 수도원 이야기

전편에 이어서...


33. 너희들의 혀를 단속하여라

그림 속 장면은 미사를 드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중앙 제대 쪽 한 명의 사제와 두 명의 부제가 미사를 드리고 있고 오른편 한 무리의 사람들은 입을 크게 벌리며 성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미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미사에 집중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루한 모습이 엿보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얀 털이 많은 강아지를 가지고 노는 아이, 그리고 그 모습이 부러운 듯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숨어 보는 또 다른 아이, 그리고 이런 아이들을 바라보며 한 마디 하려는 어른의 모습 등 성당 안의 다양한 사람들의 행동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뒤쪽의 흰옷을 입고 있는 한 여인이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왼손을 들어 올리며 놀란 모습으로 왼쪽을 쳐다보고 있고, 그곳에는 성당 바닥에 묻혀있던 두 명의 수녀가 무덤에서 나와 성당 밖으로 쫓기듯 나가고 있습니다. 이 수녀들은 살아생전 자신의 집에서 베네딕도의 규칙을 따르며 수도 생활을 하던 귀족 부인이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 수도 생활까지 선택을 하였지만 귀족 신분이라는 자만심으로 자신들에게 시중들던 사람들에게 막말을 하고 괴롭히는 나쁜 습관은 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막말과 괴롭힘을 참다못한 시종은 성인에게 자신이 받은 고충을 고하였고, 성인께서는 즉시 집에서 수도 생활을 하던 두 수녀를 불러 다음과 같이 말을 하였습니다. "당신들의 입에서 나오는 나쁜 말들을 단속하시오. 만약 그릇된 생활을 바꾸지 않는다면 나는 당신들을 파문 (excomunicatio, 공동체 밖으로 추방하다) 할 것이오!" 하지만 그들은 성인의 말씀이 겁을 주려는 것으로 생각하였고 끝내 아랫사람들을 무시하는 습관을 고치지 못하고 죽어 성당에 묻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미사 전례에 따라 부제가 “파문당한 사람은 성당을 나가시오”라는 말을 외칠 때마다 무덤에서 나와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베네딕도는 그들을 위해 미사 예물을 봉헌하였고 (그림 오른편 끝) 그 후부터는 미사 중에 무덤 밖으로 나오지 않게 평화롭게 있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잘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성인의 말씀은 경고가 아니라 자신들에 행동에 대한 결과를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34. 수도원에서 도망친 젊은 수도자

베네딕도 규칙서 58장에는 수도회 입회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입회하기 전 일정 기간 동안 수도원 생활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수도 생활을 하며 맞을 수 있는 어려움을 알려주어 쉽게 입회를 허락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자신의 원의에 따라 입회를 하게 되면 오랫동안 숙고하여 이 규칙을 거절하거나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을 준 것이기 때문에 규칙서에 정해진 대로 그날로부터 수도원을 떠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하느님과 앞에서의 서원이 사람 간의 약속과는 다른 얼마나 엄중한 것인지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족으로부터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한 젊은 수도자가 수도원장의 허락도 없이 규칙을 어기며 자기 뜻대로 집으로 도망치듯 가버렸고 며칠 후 집에서 죽음을 맞게 됩니다. 부모는 자신의 아들을 땅에 묻었으나 다음날이 되면 땅 밖으로 나와 있었고 다시 묻으면 또다시 나와 있기를 반복하였습니다. 부모들은 성인에게 찾아가 엎드려 아들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청하였고 성인은 예수님의 성체를 내어주며 아들의 가슴에 얹고 묻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더 이상 땅이 수도자의 시신을 밖으로 밀어내지 않았습니다. 베네딕도의 규칙은 사람만이 알고 있던 것이 아니라 자연들도 하느님의 법으로써 알아들었던 것입니다.


35. 수도자와 검은 용

이번 그림에서도 하느님 앞에서 수도자의 삶을 선택한 사람의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수도원에 성격이 변덕스러운 젊은 수도자가 있었는데 하루는 세상에 다시 나가 살겠다고 성인을 찾아왔습니다. 성인은 수도 생활을 계속할 수 있도록 권고도 하고 용기도 주었지만 이 젊은 수도자는 성인의 말씀을 들을 생각도 없이 귀찮을 정도로 수도원을 나가겠다는 말만 하였습니다. 결국 성인은 불쾌함과 함께 수도원에서 나갈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그런데 수도원 정문을 나가자마자 검은 용이 뒤를 쫓아다니며 잡아먹으려 하였고 피할 곳이 없던 젊은 수도자는 결국 도와달라고 소리를 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수도원에 있던 형제들은 그 소리에 놀라 젊은 수도자를 보았지만 혼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만 보일 뿐 그를 쫓는 괴물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결구 수도원으로 다시 돌아온 젊은 수도자는 하느님과 약속한 서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으며 성인에게 용서를 청하였고 죽을 때까지 규칙을 지키며 수도원 밖으로는 나갈 생각은 다시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림 속 다시 돌아온 젊은 수도자를 맞이하는 형제들의 모습 속에서 사랑과 기쁨의 모습이 얼굴과 손짓에서 충분히 묻어나고 있습니다.


36. 성인의 눈길만으로 풀리는 결박과 잘라 (Zalla)의 완고한 마음

고트족의 잘라 (Zalla)는 325년 1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결정된 아리우스 신경을 굳게 믿었던 사람이었고 포악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톨릭 정통 교리를 따르던 사제나 수도자들 마저도 그 사람 앞에서는 목숨을 부지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어느 날 잘라는 들판에 있던 농부를 칼까지 휘두르며 괴롭힘과 함께 고문까지 하였습니다 (그림 속 멀리 들판에서 말을 타고 칼을 휘두르며 농부를 괴롭히는 잘라의 모습). 참다못한 농부는 목숨은 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자신과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베네딕도 성인에게 속한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잘라는 굵은 끈으로 농부를 단단히 묶어 말을 타고 성인이 있는 수도원으로 찾아와 농부의 것을 내놓으라고 소리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수도원 정문 앞에서 책을 보던 성인은 책에서 눈을 들어 먼저 잘라를 쳐다보고 다음으로 노끈으로 꽁꽁 묶인 농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성인의 눈길 만으로 농부의 묶여있던 끈을 누구보다 빨리 풀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 모습을 눈앞에서 목격한 잘라는 타고 온 말에서 뛰어내려 성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와 함께 기도를 청하였습니다. 성인은 수도원을 찾아온 사람을 예수님처럼 맞이하라는 규칙서 대로 축복한 수도원 음식을 먹이고 밖으로 내보내었고, 그 후로 잘라는 온순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어 더 이상 농부들을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성인께서는 묶여있던 농부의 결박을 눈길 하나만으로도 풀어버리는 하느님의 기적을 보여주었지만 하느님께서는 잔인함과 적대감으로 마음이 사로잡힌 잘라의 마음을 눈처럼 녹여버리는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자유를 보여주셨습니다.





프란치스코 대성당에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야기를 프레스코화로 그려 놓은 것처럼 몬테 올리베타노 대수도원은 다른 베네딕도회 수도원과는 다르게 베네딕도 성인의 삶을 그림으로 알아보기 쉽게 설명하고 있는 유일한 곳입니다. 그래서인지 수도원 대정원에서 성인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그림들을 하나하나 따라가면서 1500년 전 베네딕도의 규칙으로 시작된 중세 수도원이 이곳에서 수도 생활의 기본이 다시 완성인 된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자신을 고치려 하기보다는 법이나 제도를 바꾸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면 국회가 법을 만드는 기구라고 떠들면서 매일 법을 개정하고 그 법을 행사하고 있는 사법부에 의해서 우리나라는 벌써 완벽한 나라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정이라는 미명과 더 잘 될 것이라는 희망은 결국은 너만 잘하면 된다는 불신과 네 탓이라는 갈등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음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법은 단지 거대한 사회 안에서 서로의 삶의 기본적인 방향만 제시하고 있습니다. 법은 만들면 만들수록 사람들의 자유와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득권자들만 더 자유롭게 하는 양면의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중요한 것은 법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법을 지키려는 마음입니다.


수도원 규칙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네딕도 성인이 규칙서를 만들었을 때 수도 생활의 기본 방향은 모두 완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회법처럼 개정이나 새로운 법을 추가하는 것 없이 지켜져 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올리베타노 수도원의 베네딕도 성인은 사회법처럼 규칙서를 잘 지키라고만 말하지 않습니다. 이것에 더해 규칙서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보여주고 계십니다. 무언가를 못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이 다른 것처럼 법을 지키는 것은 수동적 선택이지만, 법을 살아가는 것은 능동적 선택이고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법은 구속이 아니라 행복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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