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수도원 이야기
9.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과 기도를 하신 후 사탄의 유혹을 이기십니다. 그리고 복음 선포를 위해 당신과 함께할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베네딕도 성인도 3년간의 기도 속의 은수 생활과 마음에서 일어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친 후, 자신이 부른 것은 아니지만 은수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수도자들이 자신들이 모시던 수도 원장이 죽자 베네딕도의 명성을 듣고 찾아와 성인에게 새로운 수도 원장이 되어주기를 무릎 꿇고 간절히 청하고 있습니다. 성인은 그들의 생활 방식이 자신을 따라오기에는 부족한 점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재차 거절하였지만 그들의 간곡한 요청으로 결국은 허락을 하였습니다. 성인께서 수도자들과 함께 그들의 수도원으로 함께 가는 장면이 그림의 중앙 오른편에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은수 생활을 마치고 공동체 생활로 들어가려는 성인에게 하늘에서 내리는 한 줄기 빛은 마치 세례를 받고 물 밖으로 올라오시는 예수님에게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마르 1,11)라고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10. 베네딕도를 수도원장으로 모신 수도자들도 나름대로 수도 규칙이 있었지만, 사실 수도자의 신분으로 맞지 않은 오래된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베네딕도는 자신이 3년 동안 은수 생활에서 얻은 경험으로 새롭게 가르치려 하였지만 성인의 규칙을 따르는 데는 버거움을 느꼈고, 결국 자신들의 원래 생활로 돌아가기 위해 베네딕도를 독살할 음모를 꾸밉니다. 그림의 중앙 오른편에 그려진 복도 끝에는 세 명의 수도자들이 성인을 죽일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이미 주님께서 알고 계시는 것처럼 복도의 문 위에는 예수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문 아래 하얀 고양이는 그들이 배신자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동물입니다. 그림 왼편에서는 결국 모든 수도자들이 동의하여 성인에게 독이 든 잔을 드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인께서 식사 전 십자 성호를 긋자 마치 돌에 맞은 것처럼 잔에 깨져 버리며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하게 됩니다. 십자 성호와 함께 깨져버린 잔속에 독이 들었다는 것을 성인은 곧바로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십자 성호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림 오른편에 성인은 그들의 생활에 맞는 수도 원장을 찾으라는 말을 남기신 채 그들을 떠나 다시 원래 있었던 은수처로 향하고 계십니다.
11. 은수처로 돌아와 예전의 생활을 하였지만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주님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며 기적을 통해 주님의 현존을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성인의 이름은 주변에 널리 퍼져 성인처럼 전능하신 하느님을 따르려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였고 자신의 은수처 주변으로 12개의 수도원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각 수도원마다 수도 생활을 하기에 가장 적당한 숫자인 열두 명의 수도자와 수도원장을 뽑아 생활하도록 하였습니다. 열두 개의 수도원 중 지금까지 남아있는 곳이 베네딕도의 거룩한 동굴에서 1킬로 정도 아래에 있는 성 스콜라스티카 수도원입니다. 그림 중앙의 베네딕도 성인은 오른손으로는 막대기를 잡고 왼손으로는 수도복 자락을 걷어올리면서 직접 수도원 건축을 지휘하고 있습니다. 천장 공사를 하던 작업자는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성인에게 몸을 기울여 성인이 하는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있고, 성인 뒤편에 있는 두 명의 수도자는 성인을 따르고는 있지만 약간은 당황스러운 손짓을 하고 있습니다. 기둥의 받침돌을 쪼고 있는 석공의 팔 근육은 현실적이며 왼편에 흙손으로 일하며 찾아온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대답하는 수도자는 노동의 중요성과 이웃의 중요성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12. 베네딕도 성인을 찾아온 사람은 수도자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로마의 귀족들도 자기의 어린 아들들을 성인에게 맡겼고 그중에 거룩한 품성을 갖고 있던 마우로 (성인의 왼편)와 아직 나이가 어린 플라치도 (성인이 오른손으로 축복)가 입회하고 있습니다. 베네딕도회에서 수도자 양성을 위해 어린아이를 받는 것은 전통적인 것이었고 베네딕도 규칙서 37장과 59절에는 아이들의 수도원 입회하는 방법과 어떻게 배려를 해야 하는지를 적어놓고 있습니다. 소도마는 이 그림에 자신과 동시대 사람들의 얼굴을 그렸다고 하는데 마우로에게는 산드로 보티첼리의 얼굴을, 플라치도의 얼굴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리고 베네딕도 왼편으로 검은 옷을 입고 얼굴만 보이는 사람은 루카 시뇨렐리입니다. 루카 시뇨렐리를 이 그림에 그려 넣음으로써 자기보다 앞서 이곳에 그림을 그린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시키고 있습니다.
13. 성인이 세우신 열두 개의 수도원 중 한 곳에는 젊은 수도자가 한 명 있었습니다. 이 수도자는 공동체 기도 중 마음을 잡지 못하고 성당 밖으로 여러 번 나가 수도원장이 충고를 하고 혼을 내도 (그림에서 중앙 오른편 뒷부분의 작은 모습의 수도자들) 쉽게 고치 지를 못하였습니다. 결국 베네딕도 성인에게도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되고 성인께서 이 수도원에 오시어 또다시 밖으로 나가는 젊은 수도자에게 검은 그림자 같은 것이 이 수도자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곳의 수도원장도 베네딕도 성인의 애제자인 마우로도 그 그림자를 볼 수 없었습니다. 다음날 성인께서는 또다시 공동 기도 중에 나오는 젊은 수도자를 붙잡아 막대기로 때리니 어둠의 사탄은 먼 하늘로 도망치고 다시는 그런 분심이 이 수도자에게 들지를 않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성인이 때린 대상은 젊은 수도자이기도 했지만 그를 둘러싼 사탄이기도 하였습니다. 수도자 마음 안에 있던 사탄이 베네딕도의 회초리의 아픔을 기억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것입니다. 성인께서는 그의 규칙서 2장에서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의 죄를 묵과하지 말고 그 싹을 뿌리째 뽑아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먼저 한두 번 말로 타이르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네 아들을 매로 때려라. 그러면 그의 영혼을 죽음에서 구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14. 성인이 세운 열두 개의 수도원 중 세 개는 산꼭대기에 위치해 있어서 물을 길으러 산 밑 호수까지 매일 내려와야 했습니다 (그림에서 맨 윗부분을 보면 세 개의 수도원과 물을 길으러 내려오는 두 명의 수도자가 표현되어 있다). 이곳의 수도자들은 성인에게 찾아와 어려움과 위험함을 고하며 수도원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 안 되겠냐고 성인에게 청하였지만 (그림 아래 수도자의 무리), 성인은 그들을 위로하고 다시 수도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어린 제자 플라치도와 함께 산으로 올라가 오랫동안 기도한 후 그 자리에 돌을 세 개 놓고 내려옵니다 (그림 중앙 부분). 그리고 다음날 수도자들에게 그 돌 있는 자리를 파보라고 하니 물이 풍족하게 솟아올라왔고 (그림 중앙 부분), 그때부터 수도원 이름을 물의 성 요한 수도원 (San Giovanni dell'Acqua)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물은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뜻하고 있고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곳에 항상 찾아오십니다.
다음 편에 계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