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수도원 이야기
15. 상심하지 말고 일하여라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많은 이민족 사람들이 로마에 내려와 살고 있었고 수도원에도 '고트족 사람'이라는 뜻의 초심자 고토 (Goto)가 베네딕도 성인의 허락으로 입회하였습니다. 어느 날 성인께서는 낫을 주며 수풀이 우거진 땅을 밭으로 만들라고 일을 시켰고 수도원에 막 들어온 고토는 열심한 마음으로 낫질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던 중 낫이 자루에서 빠져 근처 호수 깊숙한 곳에 빠져버리게 되었고 마우로와 함께 성인에게 가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청하였습니다 (그림에서 왼편에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이 고토이고 그 뒤에서 낫을 잃어버린 상황을 설명하는 사람이 마우로이다). 성인은 낫자루를 달라고 하여 기도하신 후 잃어버린 호수에 넣다 빼내자 기적적으로 낫이 붙어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초심자인 고토에게 완벽한 낫을 주며 걱정하지 말고 다시 일하라고 하십니다. '기도하고 일하라'라는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는 베네딕도의 규칙서에서 노동은 하느님께 마음을 두는 아주 중요한 덕목입니다. 하지만 노동은 하느님을 알아가는 하나의 방법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성인께서는 규칙서 31장에 '아무도 하느님의 집에서 혼란을 느끼거나 슬퍼하지 말라'라고 쓰고 계십니다. 성 베네딕도에게 노동이란 바로 평온함과 기쁨 속에 이루어지는 자기 수행이기 때문입니다.
16. 물 위를 걷는 마우로
하루는 베네딕도 성인의 애제자이며 나이 어린 플라치도가 물을 길으러 수도원 아래에 있는 호수로 내려갔습니다. 물을 담기 위해 양동이를 호수에 넣는 순간 발을 헛디디며 호수에 빠지게 되었고 물에 휩쓸려 깊은 곳까지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같은 시간 성인께서는 당신의 독방에 계셨고 플라치도에게 닥친 위험한 상황을 환시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물에 빠진 플라치도를 구하기 위해 성인은 마우로를 보냈고, 마우로는 성인의 명령에 순명하는 마음으로 깊은 호수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물 위를 걸어가 플라치도의 머리채를 잡고 다시 물 위를 걸어 육지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플라치도는 걸어온 사람은 마우로였지만, 나를 꺼내 준 사람의 옷소매는 성인의 것이라고 하며 성인의 말씀의 힘과 마우로의 순명을 통해 이루어진 기적임을 고백합니다.
17.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성 베네딕도
베네딕도 규칙서 40장에는 과음이나 술 취함을 경고하면서도 하루에 1인당 4분의 1리터의 포도주를 마실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성인은 마을의 한 귀족에게 해마다 포도주를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는데, 한 번은 에질아라토 (Esilarato) 종이 베네딕도에게 보낸 두 개의 술병 중 하나만 성인에게 드리고, 나머지 하나는 성인이 알 수 없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집으로 가져가려고 오던 길 한 곳에 감춰두었습니다. 하지만 성인은 에질아라토의 부정한 행동을 누구의 이야기도 듣지 않았지만 이미 알고 있었고, 혼내기보다는 그를 돌려보내면서 감춰둔 포도주 병을 마시지 말고 길에 부어 버리라고 충고를 하십니다 (그림의 왼편). 에질아라토는 돌아가던 길에 감춰둔 병을 찾아 성인의 말씀대로 땅바닥에 부어보니 포도주는 온데간데없고 뱀이 나와 크게 놀라기도 하였지만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얼마나 큰 것인지 그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림의 오른편). 그레고리오 교황이 쓴 베네딕도 전기에 따르면 이 벽화의 내용은 30번 그림 다음에 나와야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림 속 뚫린 문으로 나가면 중간 정원과 수도원 식당 그리고 도서관으로 가는 입구로 향하게 됩니다.
18. 피오렌조와 베네딕도 성인 : 독이 묻은 빵
베네딕도 성인의 가르침과 명성이 주변으로 퍼지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성인을 찾아오며 수도자의 길을 택하였습니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피오렌조 (Fiorenzo)라는 본당 신부는 사탄의 속삭임으로 성인에 대한 시기심과 자신이 성인보다 더 낫다는 오만에 빠져 성인을 독살하기 위해 자신의 몸종을 시켜 독이 묻은 빵을 보냈습니다 (그림의 왼편). 몸종은 자신의 손에 독을 묻히지 않으려는 듯 수건으로 빵을 감싸 성인에게 드리고 있고 성인은 축복과 함께 감사히 빵을 받습니다. (그림의 중앙). 하지만 하느님의 섭리로 성인은 직감적으로 이 빵에 독이 묻어있음을 아셨고 식사 때마다 빵 부스러기를 먹으러 오는 까마귀에게 아무도 없는 곳에 물어다 버리라고 명령을 하십니다. 까마귀도 독이 묻어있는 빵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소리를 지르고 날개를 퍼덕이며 빵 주위만 맴돌았습니다. 성인께서 재차 삼차 명령하자 그제야 물어 멀리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세 시간 정도 지나 성인의 식탁으로 무사히 돌아와 늘 그랬던 것처럼 빵 부스러기를 먹었다고 합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성인은 피오렌조 신부의 영혼이 자신을 향해 더욱더 격분하는 것을 보고 자신을 걱정하기보다 신부를 위해 더욱더 마음 아파하였습니다.
19. 피오렌조와 수도자들 : 일곱 명의 아름다운 처녀들
성인을 죽이는데 실패한 피오렌조 신부는 이번에는 베네딕도보다 성덕이 약한 수도자들의 마음을 흔들기 위해 아름다운 여인 일곱을 속이 비칠 정도로 화려한 옷을 입혀 수도원 정원에 들여보냅니다. 여인들의 머리 위쪽 발코니에 있는 악사는 연주를 하고 있고 여인들은 수도자들이 보이는 곳에서 춤을 추며 수도원을 떠나도록 유혹을 합니다. 성인께서는 이미 마음이 아직 약한 제자들에게 이런 유혹은 위험하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고, 피오렌조 신부는 자신의 목적을 이룰 때까지 계속해서 이런 일을 버릴 것이라는 것 또한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세운 열두 개의 수도원을 위하여 자신을 따르는 몇몇의 제자들과 수비아코를 떠나기로 결심하십니다.
20. 플라치도와 마우로의 파견
이 그림은 성인께서 선교를 위하여 플라치도는 시칠리아로 마우로는 프랑스로 파견하는 장면입니다. 하지만 시간순으로 볼 때 이 그림의 전후 내용의 그림과 아무 상관이 없는 장면입니다. 왜냐하면 플라치도를 파견한 것은 약 537년이고 마우로를 파견한 것은 약 546년이기 때문입니다. 547년 경에 성인께서 몬테카시노에서 선종하시기 때문에 사실 이 장면은 성인께서 선종하시기 전인 마지막 부분에 등장할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은 소도마의 공방에서 그림을 배우고 또 그의 사위가 된 일명 리쵸 (Riccio)라고 불리던 바르톨로메오 네로니 (Bartolomeo Neroni, 1505-1571)가 그렸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성인 왼편에 있는 사람은 프랑스 왕 샤를 5세이지만, 리쵸는 왕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자화상처럼 그렸습니다. 이 그림은 1536년 이 수도원을 방문한 샤를 5세를 기념하여 그려졌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