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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 Vianney Oct 30. 2022

몬테 올리베토 마조레 대수도원V

중세 수도원 이야기

전편에 이어서...


이번 글에 나오는 여덟 장의 그림은 루카 시뇨렐리가 그린 것입니다. 이 그림들은 몬테카시노에서 새 수도원을 건설하며 겪는 사탄의 방해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드러내고 있고 베네딕도의 예언자적 은사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21. 수비아코를 떠나는 성 베네딕도

수비아코의 수도자들을 위해 성인은 은수처를 떠나 몬테카시노로 향합니다. 하지만 피오렌조 신부는 자기가 쫓아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되고, 그로 인해 기쁜 마음으로 높은 발코니 위로 올라가 떠나가는 베네딕도를 바라보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교만한 피오렌조 신부에게 벌을 내려 발코니가 무너지며 그 밑에 깔려 죽고 맙니다. 무너진 벽돌 사이에 피오렌조 신부의 얼굴이 보입니다.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마우로는 성인에게 달려가 손가락으로 사고 난 지점을 가리키며 더 이상 수비아코를 떠나실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인을 따르던 수도자의 무리는 가던 길에서 몸을 돌려 주님이 벌하신 사실에 놀라거나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겸손한 성 베네딕도는 감사의 기도를 드린 것이 아니라 본당 신부의 죽음에 기뻐한 마우로를 오히려 책망하며 벌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할 일은 기도와 용서이고 심판은 하느님의 몫이며 벌 또한 하느님께서 직접 내린 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늘에는 사탄의 무리들이 보이고 있고, 그중 오른편 두 명의 사탄은 피오렌조 신부의 영혼을 붙들어 가고 있고 다른 한 사탄은 몽둥이로 매질을 하고 있습니다.


22. 몬테카시노에 도착한 성 베네딕도

베네딕도 성인이 도착한 까시노 마을의 사람들은 여전히 우상을 숭배하며 이교도의 신들을 섬기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산인 몬테카시노에는 그들이 모시던 아폴로 신을 위한 신전이 있었습니다. 성인께서는 두 제자의 시중을 받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던 마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지만,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여인도 있고 고개를 숙여 딴짓을 하는 노인의 모습, 그리고 이해를 못 하겠다는 듯 눈을 감고 머리를 기울인 사람의 모습 속에서 아직까지 온전하게 베네딕도 성인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나머지 제자들은 아폴로 신전 내부에 있던 아폴로의 석상을 밧줄로 묶어 끌어내리려 하고 있지만, 꼿꼿이 서 있는 아폴로의 석상과 하늘의 먹구름은 새로운 수도원을 세우는 일이 쉽지 않음을 예견하고 있습니다.


23. 움직이지 않는 바위와 허상의 불

먼저 그림에서 예견한 것처럼 새로운 수도원을 세우는데 사탄들의 방해와 장난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중앙 아래 있는 그림은 세 명의 수도자들이 힘을 합쳐 수도원 세울 자리에 있던 바위를 드러내려고 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수도자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한 사탄이 바위 위에 걸터앉아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베네딕도 성인의 눈에는 사탄의 장난이 훤히 드러나 보였고 성인께서는 기도하신 후 오른손을 들어 축복하자 사탄이 도망쳐 버렸고 제자들은 바위를 쉽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인께서는 계속해서 바위를 드러낸 땅바닥을 파보라고 하였고 제자들은 깊숙한 지점에서 이교도의 청동 신상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림 왼편 위에 그려진 장면). 제자들이 그 신상을 부엌으로 옮겨 일단 보관하기 위해 던져 넣자 불길이 치솟으며 부엌 전체를 모두 태울 기세로 번져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양동이로 물을 날라 계속해서 뿌렸지만 불은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불은 진짜가 아니었고 제자들의 눈에만 보이는 허상의 불이었기 때문입니다. 성인께서 머리 숙여 기도하자 그들의 눈에만 보였던 가짜 불이 사라지며 사탄의 또 다른 장난임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24. 돌담에 깔린 젊은 수도자

하루는 성인께서 자신의 독방에서 기도를 하시던 중 사탄이 성인 앞에 나타나 마치 내기를 청하는 것처럼 밖에서 일하고 있는 베네딕도의 제자들에게 나가보라고 하였습니다. 성인께서는 제자를 급히 공사장으로 보내 사탄이 그들에게 가고 있음을 경고하였지만 사탄은 건물을 허물어트리며 위에서 일하던 수도자 한 명을 함께 추락시켜 죽음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부서진 벽돌에 깔린 이 수도자의 몸은 장기뿐만 아니라 뼈까지 부러진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성인은 죽은 수도자를 천에 감싸 자신의 독방으로 옮기도록 하였고, 그 시신 옆에서 더욱더 간곡하게 기도하자 다시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제자들이 그 시신을 무덤으로 옮겨, 천으로 감싸 놓은 예수님이 부활한 사실을 연상시킵니다. 성인은 다시 살아난 그 수도자를 축복하며 다시 공사장으로 보내며 형제들과 원래 하려던 일을 끝마치게 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은 사탄이 자신의 능력으로 성인을 시험하고 놀리려는 시도였지만, 성인은 늘 겸손되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도움을 청하였고, 사탄으로 하여금 오히려 예수님의 전능하심을 보여주는 계기로 만들었습니다.


25. “너희들은 어디서 식사를 하였느냐?”

이 그림부터 연속으로 나오는 네 장의 그림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성인의 예언자적 은사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베네딕도 성인은 규칙서 51장에서 외출하는 수도자들에 대한 식사에 대한 규정을 언급하며 자신들의 수도원장으로부터 예외적으로 허락을 받지 않는 한 하루 만에 다시 수도원으로 돌아올 경우, 외부 사람들의 간절한 청이 있어도 식사를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만약 이것을 어기면 공동체에서 한 번의 용서도 없이 쫓아내도록 하는 파문의 벌을 받도록 하였습니다.


하루는 두 명의 수도자가 자신들이 예상한 시간보다 외출이 길어지자 수도원 근처에 있던 한 식당에서 규칙을 어기고 음식을 먹고 마셨습니다. 그리고 수도원으로 돌아와 평소처럼 성인에게 축복을 청하자, 식당의 장소와 음식의 종류 그리고 몇 잔의 포도주를 마셨는지도 이미 알고 계신 성인은 그들을 꾸짖으십니다 (오른쪽 식당 건물 밖 수도자의 무리 그림). 그들은 곧 성인의 발아래 무릎을 꿇고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고백하고 뉘우치며 용서를 청하였고, 성인은 이들이 다시는 똑같은 일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예언자적 은사로 이미 알아보셨기 때문에 공동체에서 쫓아내야 하는 파문의 벌이 아니라 하느님의 무한하신 자비처럼 그들을 용서해 주십니다.


이 그림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듯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왼편의 포도주를 따르는 여인의 팔의 각도와 얼굴 표정은 조심스러움이 느껴지고, 오른편 음식을 왼손에 들고 오른손으로 앞치마를 잡고 춤을 추듯 다가오는 여인은 생동감이 넘쳐흐릅니다. 그리고 계단에서 음식 주문을 받는 주방 아줌마와 문밖에서 지나가는 손님을 찾는 청년의 등 돌린 모습 등, 이 그림은 화가 시뇨렐리의 색감과 인체의 생동감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26. 발렌티니아노 수도자의 형제

비록 규칙서에는 적혀있지 않지만 수도자들이 1년에 한 번 가족을 만나는 것은 하나의 관행처럼 허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스콜라스티카 성녀도 자신의 오빠이자 스승인 베네딕도 성인을 만나러 수도원에 일 년에 한 번씩 찾아왔습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평신도였던 발렌티니아노 수도자의 동생이 성인의 축복을 받고 형을 만나기 위해서 매년 수도원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는 수도원에 가는 동안은 늘 기도와 단식을 하였습니다. 한 번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동행을 하며 자신이 가지고 온 음식으로 함께 식사를 하자고 하였으나 여느 때처럼 첫 번째도 거절하고 두 번째도 거절하였습니다 (그림의 오른편 장면). 하지만 길 위에서의 시간은 길어지고 육체적 고단함도 찾아오기 시작하는 순간 잔디밭이 펼쳐지고 시원한 샘물도 솟아나는 장소를 만나게 되고, 이곳에서 세 번째로 함께 음식 먹기를 청하자 유혹에 넘어가듯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게 됩니다 (중앙 왼편 위쪽 그림). 수도원에 도착하여 성인께 축복을 청하였지만, 길에서 벌어진 일을 이미 알고 있었던 성인은 동행한 사람의 입을 통해 나온 사탄의 세 번째 유혹에 자신의 의지를 버리고 넘어간 그 형제를 꾸짖고 있습니다. 수비아코 동굴에서 사탄의 유혹에 과감하게 맨몸으로 가시밭에 몸을 던진 베네딕도의 모습과 비교되는 장면입니다.


27. 왕으로 위장한 리죠

고트족의 왕이었던 토틸라가 성인의 예언자적인 은사를 시험하기 위해 부하인 리죠 (Riggio)에게 자기 옷을 입혀 먼저 수도원을 방문토록 하였습니다. 화려한 왕의 옷을 입고 들어오는 리죠를 본 성인은 바로 호통을 치십니다. “네 것이 아닌 것을 걸치고 있구나. 즉시 벗어던져라!” 리죠는 두려움에 무릎을 꿇고 가까이 가 보지도 못하고 되돌아갔습니다. 그림 속 윗부분의 장면은 막사에 도착한 리죠가 고트족의 왕 토틸라에게 왕의 옷에 가려진 자신의 본래 신분을 베네딕도 성인이 얼마나 쉽게 간파했는지를 보고하고 있습니다.


28. 토틸라와 만나는 성 베네딕도

리죠의 말을 들은 토틸라는 두려움 속에 성인에게 가까이 가지를 못하며 멀찍한 곳에서 이미 땅바닥에 엎드리고 있었습니다. 두 번에 걸쳐 일어나라고 하였지만 땅에 엎드린 채 일어나지 못하는 토틸라에게 성인은 직접 다가가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세상의 권위는 땅에서 왔지만 영적인 권위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마치 왕에게 하느님의 이름으로 왕관을 씌워주는 교회의 대관식을 미리 보여주는 듯합니다.


성인은 토틸라의 잘못된 행동들을 꾸짖으며 로마의 입성과 앞으로의 치세 기간 9년을 예언하십니다. 토틸라는 성인의 말씀대로 포악한 짓을 덜 하였으며 545년 로마를 점령하였고 시칠리아까지 자신의 땅으로 만들었지만 552년 죽음을 맞게 됩니다.


이 그림으로 루카 시뇨렐리의 그림 여덟 장의 벽화가 끝이 납니다. 루카 시뇨렐리는 앞으로 오르비에토의 두오모 성당에서 그릴 장면을 예행연습하듯 이 그림에서 많은 인물을 등장시키며 인체의 구도와 근육을 다양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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