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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석 Jun 28. 2022

#15. “인생에서 거둔 성취라곤 결혼밖에 없는 게”

결혼이 뭐 별거냐

(1)


“인생에서 거둔 성취라곤 결혼밖에 없는 새끼가 ㅋㅋㅋㅋㅋ”


얼마 전, 온라인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논쟁에서 본 댓글이다.

이 댓글을 쓴 사람은 분명 상대방을 낮춰 무시하기 위해 쓴 말이었는데, 이 한 마디가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았다.


마치 내 가슴에도 비수처럼 꽂히는 말이라, 한참을 생각해보게 됐다.


내가 인생에 있어서 남들에게 거뒀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성취는 무엇이었을까?


(2)


초등학교 5학년 때, 패미콤으로 ‘캡틴 츠바사’를 접했다.


이 게임은 몇 가지 상황별로 행동을 선택해 이기는 시스템이었다. 예를 들자면 수비수와 마주하곤 패스를 할지, 드리블을 할지, 슛을 쏠지 등을 정하고 수비를 할 땐 태클을 할지, 블록을 할지, 인터셉트를 할지를 정해 이기는 쪽이 공을 몰고 가는 방식이었다.



일본어를 몰라도 게임을 하는 데는 사실 별 무리가 없다. 게임 자체가 최대한 직관력을 발휘하게끔 만들어지다 보니,  ‘シュート’가 반복되면 결국 이게 슛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만큼 단순한 게임이다 보니, 사실 콘텐츠는 만화가 원작인 이 게임의 스토리를 따라가는데 치중돼 있었다. 일본어를 모르다 보니 무슨 말을 나누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등장인물의 이름조차 알 수가 없어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러다 일본어 글자에서 한 가지 특이점을 발견하게 됐는데, 영어식 표현을 옮겨놓은 글자는 일반적인 일본 글자와 생김새가 다소 다르다고 느낀 것이다(카타카나와 히라가나의 차이점은 관찰만 하더라도 다름이 분명하니).


그래서 사람 이름이라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에 아빠의 책장에서 ‘초급 일본어’라는 책을 꺼내 들고 일본어 글자를 공부했다.


어느 날, 게임에 열중하는데 엄마가 과일을 깎아 내 방에 들어오셨고 게임하는 모습을 보곤 무슨 글자인지도 모르는데 그게 재미있냐고 물으셨다.


“나 글자 아는데? 얘는 ‘휴우가’, 얘는 ‘로베르토’라고 읽는 거야.”


그날, 우리 부모님은 애가 혼자 일본어를 독학해 읽을 줄 안다며 난리가 났고, 집에 수재가 나왔다며 온갖 친척들에게 전화를 돌리셨다.


(3)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렸다는 나의 뿌듯함,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궁금하면 혼자 알아보고 공부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내가 12살에 이뤘던 성취.


이후로도 나는 부모님을 만족시켜드리기 위해 열심히 학생의 본분을 다했고, 꼼꼼한 성격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계획적인 삶을 살 수 있게 스스로를 가다듬어 나갈 수 있었다. 나태하고 놀기 좋아했지만, 계획을 세워서 되도록 미루지 않는 생활의 습관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 정도라도 할 수 있던 게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그런데 나 스스로 성취를 떠올릴 때 이 12살의 성취만 떠올려진다는 사실은 한심하게만 느껴졌다. 물론, 고등학교 시절의 서클활동과 대학 입학, 대학 시절의 동아리, 학회 활동을 하면서 소소하게나마 ‘해냈다’라는 기분이 들곤 했지만, 이게 내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줬는지를 따져보면 사실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평범한 수준이다.


어디 가서 이걸 성취라고 들이밀었다간 “누군 대학 못 나왔나, 학회 활동 안 해본 사람 있어?”라는 힐난이나 듣겠지.


왜 그럴까 곰곰이 따져보니 이유는 이랬다.


나의 성취는 누군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는데서 내재화된 성취감이었기 때문이다. 스펀지에 나와 영재로 인정을 받은 것도 아니고, 학회 활동 열심히 했다고 누가 상을 준 것도 아니다.

공모전에 나가서 장관상이나 국무총리상을 타서 장학금을 받는다든가 하는 외적 성취가 아니기 때문에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한 줄의 이력서에 남길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닌 게다.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자격증이나 외부 포상을 위해 열심히 뛰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아마도 내가 게을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넌 뭐 내세울 만한 성취가 있느냐라고 맹공을 퍼부어대면 대체로 머뭇거림으로 점철되는 지난 삶을 반성하는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4)


그런데…


그렇다면 뭐가 인정할 만한 성취인데?

내가 사회에 나와보니, 장관상도 현업에선 그냥 돌아가며 주던데. 대통령상 정도 아니면 의미 없다고 하던데? 왜 우리은행 600억 횡령자도 금융위원장상 받았다고 하더라. 어떻게 받을 수 있었던 거냐고 물었더니 그냥 금융위에서 은행별로 한 명씩 추천받아서 주는 요식행위라고 답하더라.


취업? 최고의 기업에 다니면 그걸로 끝인가?

학업적 성취? 논문만 써내면 끝인가? 인용이 돼야 할 것 아닌가. 그리고 학계에서 인정을 받아야겠지.


커리어 스펙? 현실과 LinkedIn은 전혀 다른데.. 레쥬메만 보면 다 당장 뽑아야 하는 인재들이잖아.

과연 종이 한 장에 담는 한 사람이 걸어온 길은, 진실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을까.



외적 성취는 한 사람이 자기 계발을 위해 노력해온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고, 그 이상의 본질은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그냥 “열심히 살았구나”라는 사실 자체로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이지.


(5)


이렇게 생각해보고 나니, ‘인생의 유일한 성취가 결혼’이라는 말이 비수처럼 꼽힐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이 자기 인생 최고의 성취를 결혼이라고 말하면 정말 대단한 거 아닐까.


결혼은 마치 독학으로 일본어를 읽을 수 있게 된 내 어린 시절과 같은 거라 누군가의 포상이 주어지는 대상이 아니다. 결혼 생활 오래 유지했다고 해서 세금 혜택 따위도 없다. 국가도 아무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결혼만 하라고 종용하는 현실이 우스울 뿐이다. 누구나 나이가 차면 할 수 있는 통과의례로 치부하다 보니 결혼을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도 나오나 보다.


내가 경험한 결혼이란 나와는 30년 정도를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한 인간과 갑자기 서약을 맺은 순간부터 오늘부터 너네 둘이 한 명 먼저 갈 때까지 같이 살아봐라 하고 정해주는 일이다.


부정적인 얘기만 해보자. 나도 나를 모르는데, 배우자라고 갑자기  침대 쓰게  상대를 끊임없이 이해해보려 노력하고, 북받치는 감정을 추스르고, 동조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고 계속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토라지면 얘가  그러는지 혼자 곱씹어서 추리를 해내야 하고, 살면서 미안하다는  해본  없는 사람도 배우자에겐 선뜻 사과의  마디와 손을 내밀  있는 용기를 감내해야만 한다.  돈은 나눠 써야 하고, 자식들이라도 생길 경우엔 이날부터 나를 위한 씀씀이는 용돈 수준으로 줄어드는 거다. 스스로 이자 아내, 아빠이자 남편이라고 되뇌이며 책임감으로 매일 아침, 매일  정신 무장하며 오늘과 내일을 준비한다. 이러다 내가 꿈꿔왔던 인생이 무엇이었는지조차 잊고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러다 정신 차려보면 내가 이뤄낸 성취란 건 하나도 없다며 누군가 인터넷에서 가한 폭력에 가슴을 움켜쥔다.


이것보다 어려웠던 내 인생의 과제, task가 존재했을까? 결혼 생활이란 게 그토록 만만한 건가. 이걸 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니 인생의 유일한 성취가 결혼”이라고 힐난할 수 있는 사람은 대체 어떤 성취를 이뤘길래. 시쳇말로 나라를 구했거나, 고전으로 길이남을 영화나 소설, 노래, 회화를 일궜거나, 세상을 바꾸는 발명품을 내놨거나, 물리학 법칙을 새로 쓰거나 하는 수준이라도 되는가.


====


나는 오늘 하루도 가족품으로 돌아가 함께 식사를 하고, 다리를 주물러주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내일의 안녕을 기원하는 모든 이들이 하루하루 성취를 해내고 있다고, 존경의 마음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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