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를 전공하면서 나도 모르게 예의가 몸에 익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영업 일을 하면서 선한 인상을 주고 상대방이 듣기 좋은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독이 든 사과인 줄도 모르고 덥석 물었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했다. 가진 것들을 활용해 좋은 사람으로 보이게끔 나를 포장했고,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누군가를 만나면 내가 만든 이미지로 나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건 꽤나 편했다. 원치 않게 다른 사람 입에 오르내리지 않았고, 필요 이상으로 친해지지 않아도 사람들은 나를 신뢰했다. 거기서부터가 문제였다.
'나좀 도와줄 수 있지?, 봉사하러 온 거 아니야?'
해외에 살면서 정작 나를 힘들게 하는 건 현지인보다 나와 같은 한국인일 때가 훨씬 많다. 같은 봉사단원이든 아니든 몇몇 사람들은 도와주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이따금 말도 안 되는 부탁을 한다. 내 학생들인 현지 경찰을 사적으로 부리려고 하고, 평일 업무 시간이고 주말이고 할 것 없이 도움을 요청한다. 에티켓은 어디다 줘버렸는지 잘 시간에 전화를 할 때도 있다. 나는 웃고 있지만 속은 문드러졌다.
출처: urbanbrush
미덕이라 여겼던 예의와 친절은 지금의 나한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방적인 관계 속에서 나는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고, 나도 모르는 새 마음에 하나 둘 스크래치가 났다.내가 호의를 베풀면 누구에게나 호의로 돌아올 거라 생각했지만, '누구에게나'부터가 잘못된 전제였다. 관계에 지쳐 스스로를 돌아보다 이제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깨달았다. 더 이상 좋은 사람 코스프레는 그만하기로 했다.
도덕 시험이라면 오답이지만 어떤 삶에서는 정답일 수 있다.
-예의 없어 보일지라도 할 말을 삼키지 않는다.
-남의 입장 생각하기 전에 내 입장부터 다잡아야 한다.
-거짓말이 항상 나쁜 건 아니다.
-한정된 자원 속에서 욕심부리는 건 당연하다.
-동화에서처럼 착한 사람이 보상받는 건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도덕의 관점을 바꿔야 할 시대에 직면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섞다 보면 간혹 이런 말을 듣는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데 OO은 안 그래서 좋네.'
죄송하지만 나도 똑같은 요즘 젊은 사람이다. 젊은 사람들이 그렇게 된 이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온전히 사회의 몫이다. 현상을 단순히 세대 차이라 치부한다면 아마 그 이상의 대화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전히 좋은 사람이고 싶다. 내가 그렇듯 나중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 당당히 얘기해주고 싶다.
허나 옳고 그름이 모호해져 가는 세상에서 좋은 사람의 정의를 내리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