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빌꿍 Sep 14. 2020

월요일에는 로또를 사야 합니다.

오늘은 왠지 존댓말을 쓰고 싶어 이렇게 적습니다.


저는 월요일마다 로또를 삽니다. 로또를 사는 금액은 언제나 같습니다. 5,000원. 복권도 금액에 따라서는 도박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멋모르던 10대 때 100원짜리 동전으로 시작한 판치기(교과서를 손바닥으로 쳐 동전을 넘기는 도박의 일종)를 하다 한 게임에 16만 원을 걸었고, 거기에서 진 이후로 두 번 다시 그런 짓은 안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때문에 로또는 일주일에 5,000원 이상 사지 않습니다.


월요일에는 로또를 사야 합니다. 일요일을 푹 쉬고 월요일이 돌아오면 주말의 활기는 온데간데없습니다. 일을 조금 더 사랑하게 되면 활기가 생길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렇습니다. 그런 상태로 금요일 퇴근이 오기까지 무사히 보내기 위해 저는 되도록이면 월요일에 로또를 삽니다.

출처: Google

만약 1등에 당첨돼 수중에 수십 억이 생긴다면 그 돈으로 뭘 할까 조금은 행복한 상상을 합니다. 저는 그 상상 속에서 곧장 회사를 박차고 나와 지구 반대편으로 여행을 가고 한껏 사치를 부립니다. 매일 그런 상상을 꾸미려고 일주일 중 가장 피곤하고 우중충한 월요일에 로또를 삽니다. 매주 5,000원 치의 위로를 사서 한 주를 지냅니다.


최근에 돈을 모으는 방법이랍시고 글은 쓴 일이 있습니다. 아둥바둥 지내지만 돌아서면 이게 맞나 의문이 일 때가 많습니다. 매달 적금에 펀드를 더해 200만 원이 안 되게 넣고 있습니다. 1년이면 2400만 원이고 4년이면 1억 가까운 돈을 모을 수 있을 겁니다. 아무것도 안 한다면.

차를 사야 할 테고 결혼도 하고 싶고 집을 구해야 하니 대출을 받아야 할 테고, 서울의 집값을 보고 있자면 숨이 턱 막혀 계산이 잘 서지 않습니다. 얼마 전까지 경제 관료였던 어떤 이는 모든 국민이 강남에 살 필요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모든 사람이 아파트에 살 필요도, 서울에 살 필요도 없습니다. 저는 아파트에도 서울에도 살 생각이 없지만 설령 마음을 먹어도 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가진 것 없는 20대의 한 사람으로 막연함과 동시에 저런 기득권자의 발언에 조금은 역겨움을 느낍니다.


제가 사는 로또는 아마 계속해서 위로로 그치겠지만 만약에 1등이 된다면 미련 없이 이 곳을 떠날 생각입니다. 집 하나 가지려고 평생을 일해야 한다면 그 세상에서 나와 살아감의 목표를 달리 할 수 있는 곳으로 갈 것입니다. 한 번으로 끝날 이 살아감에서 저 높은 콘크리트 건물 속 조그만 공간이 목표가 된다면 저는 적잖이 역겨울 것 같습니다.

온통 떠날 곳

당산역 퇴근길에는 매일같이 사람들이 로또를 사려고 줄을 길게 서 있습니다. 퇴근 5분과도 못 바꾸는 그 줄을 보며, 이 감정은 분노도 열등감도 아니며 그냥 환멸 비슷한 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카드 긁는 게 제일 쉬웠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