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In Plato's Cave
Humankind lingers unregenerately in Plato’s cave, still reveling, its age-old habit, in mere images of the truth. But being educated by photographs is not like being educated by older, more artisanal images.
일찍이 플라톤이 비유한 바와 같이, 인간은 여전히 대상에 대한 진실을 직접 볼 수 없고 그 이미지를 통해서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이 나올 당시 기준으로) 최근에 그러한 상황에 변화를 가져온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사진이라는 것이다. 즉 우리가 진실을 직접 확인할 수 없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 환경에는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에 대한 배경에는, 책이 나온 시점, 즉 1970년대 후반 당시 사진이라는 매체가 글이나 그림과 달리 진실을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고 있었던 상황이 있다. 티브이 보급률이 높아지기 시작하는 시점이니까 사진이 대중 매체로서는 정점을 찍었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당시의 사진은 지금의 유튜브 같은 거라고 보면 된다.
중요한 것은, 글이나 그림은 저작자의 해석이 강하게 개입하지만 사진은 있는 그대로 찍는다, 는 생각이 강했다는 것이다. 사진을 한자로 베낄 사 寫에 사실 진 眞을 쓰는데 사진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을 드러낸다. 참고로 영어로 사진, 즉 photography는 ‘빛 photo’의 ‘이야기 혹은 그림 graphy’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1장의 제목이, In Plato's Cave, 즉 플라톤의 동굴에서, 이다.
(혹시나 플라톤의 동굴의 메타포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 설명을 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러기엔 주요 논지를 너무 벗어날 뿐만 아니라 이 브런치 북을 읽는 독자의 수준을 무시하는 거라는 생각에 하지 않기로 했다.)
1장의 주요 내용은, 사진이라고 하는 것이 과연 글이나 그림과 같은 기존 매체에 비해 진실을 더 드러낼 수 있는가, 즉 인간은 사진을 통해서 드디어 플라톤의 동굴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가, 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한 수전 손택의 대답은, 아니오, 다. 심지어 동굴 속 더 깊은 곳으로 밀어 넣는다는 느낌까지 있다.
나는 많은 사진가들이 이 책을 열심히 읽고 인용하는 것에 의아한데, 기본적으로 수전 손택은 사진을 평가절하하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수전 손택으로서는 당시 사진이 주요 매체로 떠오르는 것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고 그러한 것은 이 책에 직접적으로는 아니지만 행간에 충분히 드러나 있다. 쉽게 말해서 수전 손택의 뉘앙스는, '사진, 그게 뭐가 그렇게 대단한데? 나 같은 작가가 쓴 글 없이 사진 혼자서 뭘 할 수 있을 것 같아?'와 같은 식이다.
하지만 수전 손택은 고상하거나 최소한 고상한 척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마치 사진이라는 매체에 대해서 아주 냉철하고 중립적인 분석을 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일정 부분에 있어 중립적으로 분석한 측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1970년에 비하면 현재 2026년은 천지개벽이 열두 번도 더 할 정도의 변화가 이루어졌다. 그래서 수전 손택이 주장한 내용 중 일부는 더 이상 적용되기 어렵다. 그럼에도 수전 손택은 사진이라는 매체가 현대 미디어의 변화의 시작이자 끝이라는 그 의미를 알아차렸다. (그 의미를 처음으로 이해한 것은 발터 벤야민이었고, 수전 손택이 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 깊은 감명을 받은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따라서, 수전 손택이 이 책을 통해 사진에 관해서 말한 많은 내용은 지금의 시점에서도 곱씹어 볼 만하고 일부 통찰력은 너무 예리해서 50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도 충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