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In Plato's Cave
For many decades the book has been the most influential way of arranging (and usually miniaturizing) photographs, thereby guaranteeing them longevity, if not immortality—photographs are fragile objects, easily torn or mislaid—and a wider public.
사진들을 책의 형태로 담거나 출판하는 것이 그 사진들의 보존에 있어서나 독자들의 접근성에 있어서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The photograph in a book is, obviously, the image of an image. But since it is, to begin with, a printed, smooth object, a photograph loses much less of its essential quality when reproduced in a book than a painting does.
그림을 책에 싣는 경우 원본의 중요한 성질이 상실되지만 원본이라는 개념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사진은 그렇지 않다.
이와 같은 책에 담긴 사진의 특성은, 내가 단순히 사진 작업자가 아니라 사진‘책’ 작업자인 이유 중 하나다. 모든 사람에게 책의 형태가 사진을 감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러하다.
사진을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1) 전시
2) 스마트폰이나 모니터 등의 스크린
그리고 3) 책.
전시는 한 장 한 장의 사진을 감상하는 데 최적화돼 있지만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크게 받는다. 즉 전시 기간은 정해져 있고 내가 직접 그곳에 가야지만 볼 수 있다. 반면에 디지털 기기의 스크린 상에서의 사진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은 없지만 사진을 감상하는 데 최적화되지 않았다.
책은 이 중간 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사진을 감상하는 데 충분히 좋은 환경을 제공하면서도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덜 받는다. 사진책은 해당 사진 프로젝트를 가능한 가장 잘 보여주는 형태로 디자인된다.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공간과 시간에 감상할 수 있다.
특히나 전시와 다르게 낱장의 사진이 아닌 그룹 혹은 시리즈로서 사진 프로젝트를 감상하는 데 적합하다. 사진전에서 한 장의 사진과 다음 사진의 관계에 비해 사진책에서 한 페이지에 있는 사진과 다음 페이지에 있는 사진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는 훨씬 더 가깝다. 이에 대한 내용은 나의 전문 분야이므로 다른 브런치 책에서 더 자세히 다룰 것이다.
수전 손택은 책이 이러한 ‘그룹으로서 사진’을 보관하는 것에 대해서 자기 생각을 밝힌다. 물론 비판적인 시각으로.
Still, the book is not a wholly satisfactory scheme for putting groups of photographs into general circulation.
저자가 지적한 문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책에서 페이지를 따라 사진을 배열하더라도 독자가 그 순서대로 사진을 보도록 강제할 수 없다는 것과 각각의 사진에 대해 같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독자는 사진책을 감상할 때 반드시 페이지 순서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내키는 순서대로 볼 수도 있고 어떤 사진을 다른 사진보다 오래 감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은 장면의 순서를 바꿔서 보거나 특정 화면을 더 오랜 시간 볼 수 없는 영화와 대비된다. 컴퓨터로 영화를 보는 것이 보편화된 지금 상황에서는 물리적으로는 가능한 일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관람자는 영화를 보면서 그 장면의 순서를 바꿔서 보거나 특정 장면을 더 느리게 혹은 빠르게 감상하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영화를 컴퓨터로 보는 지금은, 결말이 궁금해서 중간 부분을 2배속으로 보거나 결말부터 보고 돌아와 보던 부분을 볼 수도 있다.)
수전 손택이 사진책의 이러한 특성을 지적하는 목적은 사진을 통한 이야기가 저자의 의도대로 전달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진실은 커녕 특정 주제를 전달하기에도 무리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손택의 관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그러나 이것은 특성일 뿐, 문제나 단점은 아니다. 오히려 독자가 자신이 원하는 순서대로, 그리고 각 사진마다 원하는 시간을 할애하여 사진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독자에게 사진 이야기를 감상할 수 있는 폭을 열어 주는 것이다.
일반적인 글이나 영화의 이야기와 달리 사진은 그 작가가 그의 의도를 꽉 짜여진 형태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낱장이 되었든 책에 담긴 그룹의 사진이 되었든 간에 사진의 의미와 그 안에 이야기는 언제나 충분히 열려 있어서 관객이나 독자가 그 빈 공간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채워 넣을 수 있는 매체다.
이러한 점은 모더니즘적인 관점에서 보면 문제가 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적인 관점에서 보면 사진 매체만의 강력한 특성이 된다. 읽다 말았지만 손택의 다른 책 『타인의 고통』에서도 저자는 사진에 대해 비슷한 입장, 즉 사진을 통해 고정된 메시지나 의미를 전달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취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기회가 될 때 해당 책을 다시 꼼꼼하게 읽어 보고 별도로 다룰 것이다.
수전 손택은 이 문단의 앞의 내용에서, 사진에 대한 '전유 appropriate' 즉, '어떤 물건이나 문화, 지식 등을 허가 없이 혼자 차지하거나, 다른 맥락에서 가져와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행위'에 대해서도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겼었다. 즉, 사진은 그것을 다루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확대하거나 축소하거나 조작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건데, 이것 역시 사진의 문제라기보다는 좀 더 다양한 표현을 가능하게 해주는 사진의 고유 특성으로 볼 수 있다.
수전 손택이 이러한 사진의 특성을 문제 삼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은 이 부분의 주제로, 당시 사진은 글이나 그림에 비해 사실을 밝히거나 전달할 수 있다는, 당시의 보편적인 생각을 반박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수전 손택이 보고 있는 사진은, (표현이 아닌) 사실을 전달하는 수단으로서의 사진이다. 사실 전달 매체로서의 사진은 글이나 그림에 비해서 하등 나을 것이 없다는 논조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수전 손택의 논조에 대해 동의하면서 사진은 진실이나 사실을 전달하기보다는 오히려 표현에 더 적합한 매체가 아닌가,라는 생각이다. 애초에 나는 사진을 진실을 다루는 매체가 아닌 내 표현의 매체로 다루어 왔기 때문인지 저자가 사실을 전달하는 데 적합하지 않은 사진의 특성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표면적으로는 중립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사진은 그 애매한 중간자적 위치, 즉 (해석이 열려 있으므로) 완벽히 사실을 전달하는 것도 아니고 (있는 대상을 촬영한 것이므로) 완벽히 표현이라고도 볼 수 없는 모호한 위치에 있다. 이것은 어느 쪽인지 구분지으려고 하는 태도에서는 문제가 되지만 그것 자체를 하나의 별도 특성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오히려 사진을 ‘사진적 photographic’ 으로 만드는 고유의 특성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