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일반 사람(대중)과 사진 (3)

In Plato's Cave

by 테오

이 글에서는 손택이 책에서 말한, 사진이 일반사람(대중)들에게 미치는 영향 중, 앞서 언급한 '1.가족 단위에서 사진의 활용'과 '2. 관광과 사진'에 이어 사진 촬영이 가지는 의미와 영향에 대해서 살펴본다.


3. 사진 촬영과 참여


3-a.


Photography has become one of the principal devices for experiencing something, for giving an appearance of participation.


사진 촬영은 어떤 사건에 참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다음은 본문에 묘사된 라이카 카메라의 광고다. 다른 관찰자와 달리 카메라를 들고 있는 한 사람만이 뭔가 벌어지고 있는 사건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된 것처럼 보인다.


책에 언급된 라이카 광고. 다른 관찰자와 달리 라이카를 든 사람은 침착해 보인다.



이 절의 주요 내용은 아니지만 손택은 이 광고가, 사진은 무게가 갖지 않은 서로 다른 사건을 같은 선상에서 바라보게 한다고 지적한다.


손택은 이 광고의 카피, 지명들 “Prague … Woodstock … Vietnam … Sapporo …”을 각각 “무너진 희망—prague , 젊음의 소란—woodstock, 식민 전쟁—vietnam , 그리고 겨울 스포츠—sapporo”를 은유로 해석했는데, 솔직하게 말해서 감탄했다.


여기서 손택이 언급한, 사진이 다른 사건이나 대상을 같은 선상에서 바라보게 한다고 지적한 것은 나중에 디안 아버스의 사진책을 리뷰하면서 좀 더 자세히 다루게 된다.


아무튼 이 부분의 요점은 사진 촬영을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하여, 현재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어떠한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그래 어디 그게 무엇이든 한 번 해봐, 내가 사진으로 찍어 보겠어. 어디 보자고. 과연 사진으로 찍을 만한 사건인지 아닌지. 이런 식이다. 그리고 다른 관찰자는 그 사건을 바라보면서 딴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카메라를 들고 있는 촬영자는 그 사건에 집중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게 된다.



While the others are passive, clearly alarmed spectators, having a camera has transformed one person into something active, a voyeur: only he has mastered the situation.


손택은 일반 관찰자를 ‘spectator’라고 표현했고 촬영자는 ‘voyeur’라고 표현했는데 일반적으로 spectator는 구경꾼으로, voyeur는 관음자, 즉 남을 훔쳐보는 사람,으로 번역된다. 하지만 여기서 voyeur는 좀 더 높은 위치에서 마치 영화를 연출하는 감독과 같은 위치에서 상황을 장악하고 있는 듯이 바라보는 주체의 의미가 강하다.



3-b.


A photograph is not just the result of an encounter between an event and a photographer; picture-taking is an event in itself, and one with ever more peremptory rights—to interfere with, to invade, or to ignore whatever is going on.


한 장의 사진은 단순히 사건과 촬영자가 만난 결과가 아니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사건이다.


여기서 손택은 사진 촬영 행위를 대단히 강력한 힘을 사용하는 행위로 보았는데 이는 일면 설득력이 있다. 예를 들어 한창 재밌게 놀고 있는 와중에 누군가, 잠깐 우리 여기서 사진 한 장 남기자, 라든가, 아니면 심지어 그러한 말을 하지 않고 촬영을 하려고 카메라를 들이데면 갑자기 모든 사람이 놀고 있던 것을 중단하고 사진 촬영에 협조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이것은 사실 대단히 흥미로운 행위다. 단지 카메라를 들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 촬영자에게 재밌게 놀고 있는 행위를 중단시킬 수 있는 일종의 권한을 준 것인데 보기에 따라서 이것은 촬영자가 그들의 행위를 방해한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무시한 것이 되기도 한다. 쉽게 말해서, 너네들이 아무리 중요한 것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나는 상관하고 싶지 않고 어쨌든 나는 사진을 찍어야 겠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촬영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사건이 된다. © 테오



3-c.


Photographing is essentially an act of non-intervention.


사진촬영은 본질적으로 비개입적인 행위다.


그러니까 사진 촬영을 하는 동안 그 촬영의 대상이 되는 사건에 개입하지 않고 관찰자로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극단적인 예는, 어떤 한 사람이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사진가는 그 사람을 구하거나 그것을 촬영하거나 둘 중에 하나만 할 수가 있는 상황이다.


이것은 사진가의 윤리나 철학과도 관련된 주제다. 만약에 사진가가 그 현장을 촬영하지 않고 그 사람을 구하면 그 사람은 한 명의 사람은 구하겠지만 그것을 촬영해서, 예를 들면 언론을 통해 알리는 책임은 다하지 못하게 된다. 반대로 촬영을 하고 그 사람을 죽게 내버려두면 한 명의 인간으로서 죄책감은 피할 수 없게 된다. (당신의 선택은?)


아이가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사진을 찍은 것으로 (잘 못) 알려져 논란이 됐던 사진 by Kevin Carter



사진가가 현장의 사건이나 행사에 함께 어울어져 참여함과 동시에 간간히 촬영을 하는 것도 가능하고 실제로 그런 방식으로 작업된 사진 프로젝트들도 존재한다. 예를 들면 노부요시 아라키의 『Tokyo Lucky Hole』인데 도쿄의 윤락가를 사진으로 작업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작가는 사진 촬영을 하면서도 이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즐기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다소 예외적이며 촬영을 하는 그 순간과 그것에 쏟는 에너지 만큼 덜 개입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노부요시 아라키 『Tokyo Lucky Hole』




3-d.


Even if incompatible with intervention in a physical sense, using a camera is still a form of participation.


물리적으로 개입하지는 않지만, 사진촬영은 여전히 참여의 한 방법이다.


사진촬영을 하는 동안 사람들은 사진가를 투명인간 취급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존재를 다른 참여자보다 더 분명히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해당 상황이 촬영되고 있다고 하는 것을 인지한 사람들의 행동은 좋든 나쁘든 변하게 된다. 심지어 사진을 찍는 것을 허락하기 위해, 아니면 사진에 찍히기 위해 하던 것을 계속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생일 날 촛불 부는데 사진을 못 찍었다고 다시 하는 경우. 사진촬영이 하나의 참여로 해당 사건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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